5는 9변, 혹은 9천의 중심 수가 되는데, 아직 十이 등장하지 못한 상태의 중심을 의미합니다. 十으로 화하지 못했다 함은 짝으로 드러나지 못했다는 뜻이므로, 물질적인 형상으로 나타난 상태가 아니라, 하늘에서 一의 상태로 있다는 뜻입니다. 一이라 함은 절대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도형으로 말한다면 평면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은 원(◯)으로 나타내며, 짝을 갖춘 十은 땅에서 방(□)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에 비해서 7은 13의 중심 수가 되는데, 천지인 3신이 겉으로 드러난 여섯 개의 十字(12)의 중심이 13입니다. 그것은 일곱 번째의 十字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3계의 음양이 합한 모든 十字의 중심이라고 하여 天有 13도라고 부릅니다.
서종과의 <익자삼우 손자삼우 기서재동>이라는 큰 글자(詩傳)이 있고, 밑에 작은 글씨(書傳)로 <언청신계용>이라는 다섯 자의 글씨가 있습니다. 시전 12자의 한 중심에 있는 천유 13도가 바로 <언청신계용>이라는 다섯 글자라는 걸 일러주는 셈입니다. 그것은 <言聽>이라는 우측 줄과 <計用>이라는 좌측 줄과 <神>이라는 한 줄이 합한 세 줄로 이루어졌으며, 그 내용은 다섯 자라는 걸 일러주고 있으니, 이는 곧 ‘삼신과 오행’을 의미합니다. <言聽神計用>의 중심에는 ‘神’이 있는데, 이것은 ‘삼신이 합일한 상태’입니다. 3신이 하나 되어 ‘언청계용‘이라는 네 가지의 작용을 하게 되면 신성한 인간, 개벽된 인간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3 × 4 = 12작용, 즉 12지와 주체자인 3신을 합한 13이 됩니다. 또한 3신은 1이 아니라 3이므로 실제 주인공은 15수가 됩니다. 이를 가리켜 ’15眞主‘라고 합니다. 이를 다른 말로 ’天行 15도‘라고도 합니다. 天有는 3신이 4방에서 형상으로 벌어진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요, 天行은 3신이 5행으로 운행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이처럼 <言聽神計用>에는 의미심장(意味深長)하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서종과의 형태를 보면 사람이 직립(直立)한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현무경이 나오기 전의 인류는 직립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말이 됩니다. 직립한다는 것은, 하늘을 향하여 머리를 두었다는 말이니, 스스로 자립(自立)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은 다 같은 동물이지만, 짐승은 머리를 땅으로 향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머리를 땅으로 향한다 함은, 의식이 땅에 속해 있다는 뜻입니다. 땅은 본질이 아닌 그림자입니다. 사물의 본질은 못 본채, 그림자에 머문 인간의 의식을 가리켜 ‘짐승’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子時頭’입니다. 지금도 세상에서는 첫 시를 子時라고 하는데, 왜 하필이면 子를 시두로 삼았을까요? 이것을 제대로 알아보려면 10천간과 12지지에 대한 것을 살펴야 합니다. 천간은 공간의 법칙이요, 지지는 시간의 법칙을 가리킵니다. 우주에는 삼간(三間)이 있는데, 이걸 우리 조상들은 ‘초가삼간(草家三間)’이라고 하였습니다. 초가는 단순하게 짚이나 풀로 지은 집을 가리킨 게 아니라, 草라는 글자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日에서 발한 十(甲의 생략형)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艹) 집을 의미하니, 한 마디로 심령신대(心靈神臺)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초가삼간은 하늘의 공간(空間), 땅의 시간(時間),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인간(人間)입니다. 間은 ‘사이’라는 말이므로, 공간은 텅 빈 사이‘가 되고, 시간은 ’때의 사이‘라는 말이 됩니다. 시간이나 인간은 그런대로 잘 이해할 수 있지만, 텅 빈 곳인 허공에 무슨 ’사이‘가 있단 말인가요? 텅 빈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속에는 무수한 알갱이가 있습니다. 그걸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인체의 세포(細胞)입니다. 무수한 세포는 텅 빈 허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포와 세포 사이는 곧 공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수한 공간이 있지만, 그것은 무형이므로 아무리 많아도 텅 빈 것처럼 보이게 마련입니다. 마음이 육신을 싸고 있는 것처럼, 육신도 또한 마음을 싸고 있습니다. 하늘은 땅을 감싸 안고, 땅은 하늘을 감싸 안고 있는 게 우주의 형상입니다. 이처럼 천지는 항상 서로 감싸 안고 사랑의 교류를 하기 때문에 생물들이 탄생하게 되는 것처럼, 인생도 남녀가 사랑을 하여 자녀를 탄생합니다.
공간은 무형으로 이루어졌으니, 그것은 곧 一로 이루어졌다는 증거입니다. 一은 상대가 없는 절대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하늘은 절대적인 속성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시간은 땅에서 벌어지는 현상이고, 땅은 상대적인 음양으로 이루어졌으니, 시간은 상대적인 모습으로 벌어집니다. 시간은 어떻게 해서 생길까요? 그것은 해와 달이라는 음양의 순환에서 비롯합니다. 만약 해와 달이 없다면 결코 시간은 발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공간은 해와 달에 의해 만들어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공간 속에서 해와 달이 움직입니다. 시간은 해와 달을 통해서 변화를 야기(惹起)하지만, 공간은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즉 공간은 불변(不變)이요, 시간은 항변(恒變)합니다. 인간은 불변과 항변 두 가지를 다 지닌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영원성을 사모하는가 하면, 끊임없이 변화하려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공간은 절대무등(無等)이지만, 시간은 상대적인 세계이므로 다양한 차등(差等)으로 벌어집니다. 차등은 변화를 가리키고, 변화는 반드시 3단계로 벌어지는 법입니다. 3음 3양은 여기에서 나온 용어입니다. 3음과 3양을 합하면 6기라고 하는데, 모든 변화의 기본입니다. 즉 시간의 기초는 6수입니다. 그러나 공간의 기초는 5수입니다. 5라는 숫자는 3음과 3양의 변화를 가리킨 게 아니라, 4상과 그 중심을 합한 5행을 의미합니다. 즉 공간은 5행을 기초로 하는데 반해, 시간은 6기를 기초로 합니다.
공간에는 절대적인 一이 있다고 하여, 음양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곤란합니다. 그것은 1태극에는 이미 음양이 있다고 본 조상들의 탁월한 지혜를 이해하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절대적인 一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무형이기 때문에 절대무등이기 때문에 하는 말일 뿐, 그 속에는 무형의 음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유형으로 드러난 곳이 땅이기에 땅을 하늘의 그림자라고 하는 것이며, 그런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가 시간입니다. 따라서 하늘과 땅, 공간과 시간은 본래 같은 것입니다.
비록 형상은 없어도 그 속에는 장차 형상으로 나타날 음양이 있으니, 그것을 가리켜 상(象)이라고 부릅니다. 상은 4상이 기본입니다. 그것이 그대로 유형으로 드러나면 동서남북과 춘하추동이 됩니다. 그러므로 공간은 4방과 그 중심을 합한 5를 기본으로 하는데, 음양으로 나누어지므로 10천간이라고 하게 된 겁니다. 시간은 6을 기본으로 하는데, 역시 음양으로 나누어지므로 12지지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공간은 5를, 시간은 6을 기본으로 한다는 건 매우 중요한 도수입니다. 초가삼간을 지어놓고 양친(兩親) 부모 모시고 효를 행하자고 한 것이 우리 조상들의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3신이 거하는 곳은 5행이요, 변화는 6기를 바탕으로 한다고 하는 게 바로 5와 6의 이치입니다.
사람이 머리를 하늘로 향한다는 것은, 자신의 근본을 발견했다는 신호입니다. 사람 뿐 아니라, 모든 만물의 근본은 하늘입니다. 그러나 하늘은 무형이기에 그 존재 자체가 불투명해 진 것이 현실입니다. 오직 눈에 잘 보이는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채, 살고 있는 게 인생입니다. 그러나 물질은 항상 변하는 것입니다. 변하는 것은 결코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영원히 불변하는 대상만이 진정한 믿음을 줄 수 있는 게 아닌가요? 하늘은 무형이기에 영원히 불변합니다. 땅에는 비록 변화무쌍한 온갖 만물이 들어 있으나, 그런 것은 무상(無常)한 것이기에 그림자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