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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 익자삼우 손자삼우1

영부, 精山 2013. 1. 13. 09:52

② 益者三友 損者三友

서종과의 형태는 사람이 직립한 상태라고 하는데, 머리는 두 줄로 된 <益者三友損者三友>이며, 복부는 한 줄로 된 <其瑞在東>이고, 사지는 <言聽神計用>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사항은 神이 천지에 머리나 복부에 있는 게 아니라, 사지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머리는 天이요, 복부는 地로 본다면 사지는 人입니다. 따라서 서종과의 직립한 형태는 천지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셈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중에서도 신은 인간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전에는 신은 인간의 중심에 있지 못하고, 천지에 있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하늘에 신이 있는 걸로 믿으며, 죽은 후에 천당이나 극락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이런 건 고급종교라 하고, 하급종교는 나무나 바위, 강이나 산에 있는 신이나 정령(精靈)들을 믿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모두 인간의 중심에 삼신이 회좌(會座)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3신이 회좌한 상태를 천간과 지지로 나타낸다면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냥 막연하게 ‘내 맘에 신이 있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은, 객관성도 없고, 일반화, 보편화 된 상태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은 그냥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무경 첫 장에는 그것을 ‘己酉正月一日巳時’라고 정확하게 명기했습니다. 이에 대한 상술(詳述)은 곧 이어 나올 것이지만, 인존시대에서는 3신이 인간 속에 자리를 잡고 거주하게 마련입니다. 그걸 일러주는 것이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지기금지원의대강’이라는 3·7자 주문(呪文)입니다. 이것도 역시 상세하게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사람이 직립하는 것은 ‘온전한 깨달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앞에서 말한 바 있습니다. 그것은 곧 시간과 공간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직립을 하게 되면 멀리 보고 크게 볼 수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원대(遠大)하고 심오(深奧)하다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5관중에서 눈이 제일 높은 곳에 달려 있게 된 것입니다. 만일 눈이 제일 낮은 발바닥에 달렸다면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둡고 좁아터진 것에 국한되게 마련이겠죠. 본래 무형인 하늘에서 시작한 인생이라면 당연히 무형인 시공의 법칙을 아는 일로부터 모든 깨달음의 출발을 삼아야 합니다.

이런 원리에 따라 서종과의 시작은 굵은 글씨가 ‘익자삼우손자삼우기서재동’이라는 12자로 출발합니다. 즉 12지지로 시작을 했습니다. 지지는 시간의 법칙을 가리킵니다. 또한 머리에 해당하는 부위의 글자만 따진다면 <익자삼우손자삼우>라는 여덟 글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8괘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8괘와 12지지로 출발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서종과입니다. 12지지가 시간을 가리킨다면, 8괘는 만물의 형상을 가리킵니다. 12지지와 8괘를 아는 일이야말로 손익을 계산하는 첩경이라는 무언의 가르침을 현무경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익자삼우와 손자삼우는 본래 대학경에 등장하는 공자의 가르침입니다.

 

(季氏編 제4장)

益者三友 : 友直 友諒 友多聞 益矣

* 直은 솔직하여 남에게 잘못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직선적으로 말하는 것을 말하며

* 諒은 본인의 소신을 가지면서도 남의 의견도 살피는 것을 말하며

* 多聞은 견문이 넓고 많아 아는 것이 많은 것을 말한다.

損者三友 : 友便辟 友善柔 友便佞 損矣

* 便辟은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아첨하는 것을 말한다

* 善柔는 본인의 소신이나 줏대가 없이 남의 눈치를 살피는 것을 말한다

* 便佞은 말로는 모든 것을 잘할 것같이 하나 실상이 없고 아는 것이 없는 것을 말한다

 

 

대학에 등장하는 문구를 인용한 까닭은, 서종과와 이조장(以詔章)이 大學經 右經 一章이기 때문입니다. 대학경은 유교의 경전이지만 후천 대학인 현무경을 상징하는 그림자였습니다. 선천에도 무수한 경전이 있지만, 크게 선, 불, 유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仙은 天이요, 佛은 地이며, 儒는 人을 가리킵니다.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민족의 역사도 처음에는 선도가, 다음에는 불도가 맨 나중에는 유도가 흥했다는 사실은 천지인 3신의 순서로 역사가 진행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