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 뚫어줘" 관리소장 달려가니 거실엔...
아들들 놔두고 관리직원 하인 취급...'정여사'식 민원 "관리비에 '욕값'있나"
- 머니투데이 박진영 기자 입력 : 2013.01.16 10:20 조회 : 350078
A씨는 새해를 맞이해 4년 여간 일해오던 아파트 관리소장 자리를 그만뒀다. '소장'이라는 직함이 무색할 정도로 아파트 관리일은 '감정노동'(은행원·전화상담원 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서비스해야 하는 직업 종사자) 자체였다. 지난해 여름 예비전력 부족으로 정전이 됐을 때 관리소측의 잘못도 아닌데 "김치가 상했다" "작업하던 파일이 날아갔다"며 갖은 욕설을 들어야 했다. 그 날 근무자는 결국 정전 이유를 바로 몰랐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도로 건너편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는 차량이 시끄러우니 가서 못하게 하라고 윽박지르는 경우도 있었다. 일을 관리하는 것을 넘어 관리소장과 경비를 하인 부리듯 했다. 집의 '변기가 막혔으니 뚫어달라' '형광등을 갈아달라'고 호출하는 세대도 많다. 일이 더 복잡해지는 것이 싫어 처리하러 가보면 집에 건장한 아들들이 당당하게 TV를 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 A씨는 "웬만한 일들은 해봐서 사람 상대하는 게 힘들어도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파트 사는 것이 그렇게 큰 벼슬인 줄 이제야 알았다"며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결국 그만두기로 결정했다"고 토로했다.
16일 대한주택관리사협회에 따르면 아파트 입주민과 갈등으로 인한 관리직원이나 경비원 등 현장 근로자의 고충은 해마다 정도를 더해 심각한 수준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과도한 스트레스와 높아진 권리 의식도 '정여사식 민원'에 한몫 한다는 지적이다. 협회는 "현장 근로자들의 고충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관리값에 '욕값'도 들어 있다고 생각하며 화를 삭힐 따름"이라고 설명했다. 협회 측은 아파트 관리업 종사자들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관리자를 채용하는 결정권이 입주자 대표회의에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관리소장을 채용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한 가지는 입주자 대표회의가 '자체 관리' 방식으로 직접 소장 및 직원들을 채용하는 방식. 다른 하나는 건물관리 업체에 위탁해 관리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위탁업체의 선정 권한도 입주자 대표회의에 있기 때문에 채용의 결정은 주민 손에 달려있는 셈이 된다. 관리노동자는 최소 1년 단위의 계약을 맺는 계약직 근로자가 대다수다. 협회 관계자는 "주민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은 관리노동자에게 직업을 담보로 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며 "특히 관리노동자들은 주민과 위탁업체 고용자 사이에서 이중고를 겪으며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충해결 '창구' 없어…체계적 관리도 전무 지난해 1월 창원지법에서는 입주민의 폭언과 폭행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창원지법은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모씨(66)의 가족들이 입주민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입주민 J씨는 이씨가 숨지기 일주일 전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시끄럽게 하는데 막지 않는다"며 욕설과 함께 이씨의 가슴을 수차례 때려 전치 2주 상해를 입혔다. 이씨는 유서에 "아무 잘못이 없는 내가 왜 폭력을 당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며 "차후 경비가 언어폭력과 구타를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또 2011년 경기도 부천시의 한 아파트에서는 관리소장 조모씨(60)가 아파트 부녀회와 다툰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파트 관리노동자들의 사망 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지만 산재로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체계적인 관리 주체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주택관리사들로부터 민원을 접수하긴 하지만 아파트 관리 및 운영 관련 법적 자문을 구하는 민원이 대부분"이라며 "별도의 고충관련 민원 창구는 없다"고 설명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의 관계자는 "산재로 인정되는 사고사의 경우에만 통계로 관리하고 있는 수준"이라며 "심장마비, 자살 등 현장에서의 안타까운 죽음을 듣는 경우는 많지만 관리되고 있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