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을 하는 필자 역시 아직 그런 경지에 도달한 건 아니지만, 그 문고리는 붙잡았다고 봅니다. 문고리를 잡았으니 언젠가는 문을 활짝 열 날이 오겠지요. 복희도에서는 5행의 개념이 아닌, 형상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1건천이 8곤지에 달하기까지는 7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걸 가리키고(나머지 괘도 마찬가지로 7단계를 거친다), 문왕도에서는 1감수가 9리화에 달하기까지는 8단계를 거쳐서 9변을 해야 하며(나머지도 마찬가지), 용담도에서는 2곤지가 10건천에 달하기까지 역시 8간계를 거쳐서 9변을 하는데, 문왕도는 陽變을 위주로 하고, 용담도에서는 陰變을 위주로 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처럼 7단계를 거쳐서 8괘에 이르는 걸 지부경에서는 ‘七八化像’이라고 하였습니다.
문왕9변도와 황극9변도의 가장 큰 차이라면, 문왕도는 마주 보는 괘가 합하여 10을 이루지만, 용담도(황극도가 용담도임)는 합하여 12를 이룹니다. 본래 문왕도는 9변을 하지만 그 본체 一을 합하여 10에 달한 것이며, 용담도는 음양이 합한 11귀체에 본체 一을 합하여 12가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문왕도는 하늘에서의 변화를 기준으로 삼은 반면, 용담도는 땅에서의 변화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하늘에서의 변화는 5행을 중심으로 하는데 반해, 땅에서의 변화는 6기를 기준으로 합니다. 그래서 문왕도의 중심에는 5가 들어가고, 용담도의 중심에는 6이 들어갑니다. 용담도는 비록 2에서 10까지 아홉 개의 9궁을 표방(標榜)하지만, 실은 이미 그 속에 문왕도의 1에서 9까지의 모든 陽變이 다 포함 된 것이므로 실제로는 19적멸이 충만한 상태입니다.
1, 2, 3, 4, 5, 6, 7, 8, 9 - 十 - 2(11), 3(12), 4(13), 5(14), 6(15), 7(16), 8(17), 9(18), 10(19)
문왕도(陽9變) 용담도(陰9變)
이처럼 3도를 동시에 보는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것만 제대로 다루려고 해도 엄청난 분량이 될 것이므로 부득이 여기에서는 간략하게 소개하는 선에서 그칠 수 밖에 없겠군요.
예를 들어 건괘를 동시에 보려 한다면, 복희도의 1건천과 문왕도의 6건천, 용담도의 10건천을 한꺼번에 보아야 합니다. 1건천은 모든 사물의 근원인 순양의 상태를 가리킨 것이며, 6건천은 만물의 형체를 해산하는 어머니와 같은 6陰水의 기능을 하늘이 한다는 뜻인데, 낙서9궁 변화도에서 본 것처럼, 6, 9, 8, 3, 5, 7, 2, 1, 4의 과정을 통해 6水는 4金을 만나 金生水로 天一生水의 역할을 다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걸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볼까요? 문왕도의 서북방 6건천은 복희도의 7간산과 합하는 것으로 순양인 하늘로서의 변화를 시작합니다. 그냥 제일 높은 곳에 있는 형상적인 허공을 가리킨다면 복희도의 남방 1건천이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물질적인 변화를 주도하는 순양을 가리키려고 하다 보니 서북방 6건천에 배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순양이 물질의 변화를 주도하려면 당연히 마지막 음과 함께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음을 살리는 것은 양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음이라면 3陰之間인 서북방 戌亥之間이기에 그리로 옮길 수밖에 없습니다.
문왕도에서는 모든 사물의 변화를 양을 위주로 하다 보니 1水 ~ 9火의 순서로 정한 겁니다. 이것은 水火의 관계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나머지 모든 괘도 마찬가지입니다. 1水는 8곤지라는 순음의 중심에서 생기는 1양이니 그걸 1감수라 한 것이요, 그 마지막은 1건천이라는 순양의 중심에서 1음이 생기는데 그걸 9리화라고 한 것입니다. 앞에서 건괘를 예로 들었으니 계속하여 문왕도에서 하늘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6之1 |
6之2 |
6之3 |
6之4 |
6之5 |
6之6 |
6之7 |
6之8 |
6之9 |
천수송 |
천지비 |
천뢰무망 |
천풍구 |
건위천 |
천택리 |
천산둔 |
천화동인 |
6之1 |
천수송 |
6之2 |
천지비 |
6之3 |
천뢰무망 |
6之4 |
천풍구 |
6之5 |
|
6之6 |
건위천 |
6之7 |
천택리 |
6之8 |
천산둔 |
6之9 |
천화동인 |
건위천을 비롯한 모든 괘는 반드시 경위(經緯)로 짜여지기 때문에 위의 경우처럼 종횡으로 표시를 하였습니다. 문왕도에서의 하늘은 天水訟으로 변화를 시작하고, 반대로 땅은 2之1 地水師로 시작을 합니다. 지수사는 8곤지 속으로 1감수가 들어간 상태이니, 순음 속에서 1양이 시동을 건 모습입니다. 온통 어둠으로 싸인 세상의 중심에서 한 줄기 빛을 비추는 존재가 바로 스승 師입니다.
이처럼 1감수는 양의 시작을 의미하는데, 땅에서 시작을 하면 지수사라고 하지만, 하늘에서 시작을 한다면 천수송이라고 합니다. 하늘은 순양인데 새로운 양이 시작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어두운 땅에서는 양의 시작이 태양과 같은 스승이지만, 밝은 하늘에서는 대립과 분쟁으로 가지 않을까요? 이처럼 같은 1감수이지만, 어느 곳에 있느냐에 따라 그 성격은 전혀 달라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수송은 말 그대로 소송(訴訟)의 의미가 있습니다. 서북방 6건천은 본래 7간산의 높은 산악지대를 감싸는 6水의 기운이 충만한 곳인데, 그곳으로 얼음을 상징하는 1감수가 들어가면 대립과 갈등을 야기하여 결국 분쟁과 소송으로 치닫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용담도와 비교한다면, 10之3 천수송에 해당합니다. 문왕도에서는 6之1 천수송인 것과 비교를 해 보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같은 천수송이라고 해도 용담도에서는 하늘을 10으로 보았다는 게 다릅니다. 즉, 용담도의 하늘은 정북방의 1水를 克한(土克水)한 10토입니다. 이에 비해 문왕도의 하늘은 서북방에서 金生水 하는 6水였습니다. 같은 하늘이라고 하여도 水를 위주로 하는 것은, 물질문명에서의 활용법이요, 土를 위주로 하는 것은 후천인존문명에서의 활용법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문왕도의 천수송은 극심한 대립과 분쟁을 야기하지만, 용담도의 천수송은 그것이 평정되는 상황에 더 방점(傍點)을 두고 있습니다.
이처럼 6之1 천수송으로 시작한 문왕도의 하늘은 마지막 6之9 天火同人에 도달하는 것으로 양적인 변화를 마칩니다. 이는 그간 외형으로만 하늘이던 것이, 9리화 태양을 만나니 비로소 본래 하늘의 형상인 양이 크게 빛을 발하니 이를 가리켜 同人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용담도로 본다면 10之2에서 시작한 天地否가 10之10 乾爲天으로 되었으니, 이는 곧 하늘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문왕도의 하늘이 비록 태양으로 인해 밝게 되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물질적인 형상의 빛일 따름이니 실상이 밝아진 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다시 본래의 하늘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것을 가리켜 건위천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낙서는 물질적인 형상의 변화를 위주로 한데 반해, 용담도에서는 본질적인 상태를 위주로 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머지 괘들도 그 의미를 살펴야 합니다. 그러면 현행 주역의 해설이 더욱 선명해질 것입니다. 현행 주역은 위에서 살핀 것처럼, 복희, 문왕, 용담이라는 3도와 견주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필연적인 문제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주역은 64괘의 괘상만 언급하였을 따름이요, 문왕도와 용담도의 괘상에 붙은 숫자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바뀐 방위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등등에 대한 기본적인 고찰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역은 점술로 굳어져 버린 것이 저간(這間)의 형편이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본다면 현무경에서 말하는 참된 개벽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괘상에 대한 것을 일일이 열거하려면 그 자체만으로도 방대한 분량이 되겠기에, 나머지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서 이런 취지의 글을 써 주실 분이 나오기를 고대하면서 다음 장으로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