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부(申符)
두 번째의 영부는 신부(申符)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그간 선천을 주름 잡았던 상극지리(相克之理)가 사라진다는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선천의 모든 부조리를 역학에서는 한 마디로 ‘상극’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인간의 원한과 피눈물이 맺히게 되었으니 그것을 그대로 두고서는 온전한 개벽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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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에는 ‘水火金木 待時以成 水生於火故 天下無相克之理’라는 20개의 문구가 있습니다. 20은 4상이 5행으로 충만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水火金木이라는 4상이 때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굳이 ‘水火金木’이라는 순서로 나열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수극화, 화극금, 금극목이라는 상극의 순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즉 선천에 상극으로 치닫던 문명이 때가 되매, 水生於火를 하게 되어 온 천하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상극이 없어지는데, 하필이면 왜 굳이 水生於火라고 했을까요? 상극이 사라지는 데에는 金生於木이나 火生於金도 있지 않나요? 그 이유는 4상 중에서도 水火가 중심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木과 金은 水火의 변형이며, 水火는 모든 사물의 중도에 해당합니다. 水生於火와 같은 맥락으로 일부 선생은 水極生火, 金克生木, 火克生金 등으로 정역에 표기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水極生火는 ‘물이 다하면 불이 나오다’는 뜻이지만, 水生於火는 ‘물은 불에서 나오다’는 뜻입니다.
이 둘 사이에 있는 차이점을 발견하는 일은 증산개벽주께서 정역을 보시더니 ‘한 수가 미진하다’고 하신 것이 무언가를 알 수 있는 길입니다. 물이 불에서 나온다는 것과 물이 다하면 불이 나온다는 것은 서로 정반대입니다. 하나는 물이 나오는데 반해, 다른 하나는 불이 나온다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런 것은 상생과 상극을 잘 살펴야 온전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상생에서는 수생목 - 목생화라고 하여 水에서 火에 이르는 중간에 木이 들어 있습니다. 즉 1水에서 2火에 이르는 중간에 3木이 있다는 말인데, 1과 2 사이에 3이 들어간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3은 1과 2를 합한 셈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木은 水와 火의 양면을 다 지녔기에 水와 火의 중간에서 연결고리가 된다는 걸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1水는 2火에 도달하게 되니, 이는 곧 1이 2에게 바통을 넘겨준다는 말입니다.
1이 다하면 2가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정역의 水極生火입니다. 이렇게 1水에서 주도권을 넘겨받은 2火는 모든 형상을 생육하고 양육하던 水氣와는 다르게 형상을 열매로 바꾸는 일에 주력을 하게 마련입니다. 본래 불은 건조하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물은 형상을 생육하는 일에는 적합하지만 열매를 맺게 하는 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열매는 형상을 가장 작게 한 핵(核)이기 때문입니다. 즉 물은 핵을 풀어지게 하여 형상으로 드러나게 하는 반면, 불은 다시 형상을 수렴하여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일을 합니다.
생장(生長) ------------- 수렴(收斂)
1水 2火
이런 식으로 반복하면서 순환하는 것이 대자연의 섭리입니다. 水極生火로 생긴 불은 다시 수렴의 과정을 거치면서 火極生水로 가게 마련인데, 이를 가리켜 水生於火라고 합니다. 즉 정역에서 말하는 水極生火를 뒤집은 것이 현무경의 水生於火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선천의 子時에서 巳時로 시두가 나오는 걸 가리킵니다. 이것은 이미 앞에서 장황한 설명을 하였으므로 여기서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걸 좀 더 심층적인 면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두가 바뀐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무엇일까요? 선천의 자시가 후천의 사시로 바뀌어진다고 해서 우리한테 달라지는 게 아무 것도 없다면 굳이 무엇하러 시두를 바꿀 필요가 있을까요? 오히려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지내던 것을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어 혼동만 가중 시키는 게 아닐까요? 그것은 증산 개벽주께서 하늘과 땅을 개벽했다고 하지만 아무 것도 세상은 변한 게 없기 때문에, 오히려 지축이 바로 잡히는 게 개벽이라는 등, 허무맹랑한 소리만 난무하게 된 원인이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요?
2,000년 전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세상의 범죄와 질병은 더욱 증가하였습니다. 그러면 예수가 거짓말을 했을까요? 아니면 성경이 거짓말을 했을까요? 예수도, 성경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개벽주도 또한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겠다고 하신 말씀이나, 개벽을 단행하신다고 하신 개벽주의 말씀은 한 치의 틀어짐도 없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처럼 된다면 죄를 짓지 않으니 죄에서 벗어난다고 하는 말씀은 진실입니다. 그런 것처럼 현무경의 원리를 깨달으면 개벽된 마음과 몸, 사회에서 살 수 있으니 어찌 개벽이 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있나요?
하지만 현실은 그걸 수긍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하여도 본인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시두가 子時이건, 巳時이건 천지자연은 별로 변하는 건 없습니다. 하늘은 항상 그 하늘이요, 땅은 항상 그 땅이지, 결코 천지가 바뀌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시두를 바꾸고, 세수를 바꾸며, 태세를 바꾸는 건가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