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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강 - 申符

영부, 精山 2013. 2. 24. 09:46

시간이나 공간은 천지나 만물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필이면 왜 하루 12시간으로 시간을 정했으며, 5방으로 공간을 나눈 것인지 하는 이치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시간은 時間이라고 한 문구에서 보는 것처럼, 日(태양)을 寺(모실 시)한 상태를 말해 줍니다. 즉 빛을 모시는 상태를 가리킨 것이 시간입니다. 빛을 모시는 일은,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지요. 인간을 비롯한 모든 만물은 태양이 없으면 다 죽게 마련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태양을 모신다는 일은 절대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알고 활용하는 몫은 오직 인간의 일입니다. 물론 만물이 다 그렇지만, 인간을 제외한 만물은 오직 본능에 의해 살아갈 뿐, 인간처럼 적재적소에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은 없습니다.

 

태양을 모시는 일은 ‘빛’을 모시는 일입니다. 빛은 ‘깨달음’을 가리킵니다. 성경에도 말하기를 첫 날에 깨달음을 상징하는 ‘빛’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전의 상태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나님의 神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늘’의 상태를 가리킨 것이 아니라, ‘땅‘의 상태를 가리켰다는 점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였는데, 하늘의 상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면서, 오직 땅의 상태가 혼돈하고 공허하다고 한 사실은 무얼 의미할까요? 하늘은 본래 무형이기에 혼돈이나 공허하다고 하는 표현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하늘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늘은 어떤 상황으로 있었을까요? 그것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고 한 것과 같은 상태였습니다. 본래 하늘과 땅은 일체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불안하면 몸도 그렇고, 마음이 밝으면 몸도 밝은 편입니다. ‘빛이 있으라!’고 한 첫 날의 말씀처럼, 우리의 의식에도 빛이 있어야 합니다. 그 순간부터 시간은 시작하게 마련입니다. 빛이 없으면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분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곧 죽음인데 이를 가리켜 혼돈(混沌)이라 합니다. 이를 성경에서는 혼돈하고 공허하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은 어째서 수면에 운행을 할까요? 하나님은 물 뿐 아니라, 모든 사물에 다 운행하는 게 아닌가요? 그런데도 왜 유독 수면에서 운행한다고 했을까요?

 

이것은 곧 왜 우리 조상들은 시간의 시작을 자시(子時)로 삼았을까 하는 의문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물에서 운행하는 것이나, 시간의 머리가 子時라고 한 것이나 같은 원리라는 걸 아는 분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子는 5행에서 1水라고 합니다. 1은 모든 출발의 시작을 가리키는 것처럼, 만물의 시작은 물에서 비롯한다고 하는 이치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는 데서 갑자기 물이 나온 것으로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이 나오기 위해서는 5행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이걸 수리로 말한다면 1은 1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0(十)이 먼저 있었다는 말이 되겠군요. 1은 1을 낳을 수 없습니다. 즉 빛은 빛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어둠에서 나온다는 말입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양은 음에서 나오고, 음은 양에서 나온다’는 말이겠군요.

 

一 이전에 0(十)이 있었다는 말은, ‘빛이 있기 전에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다’는 것과 같습니다. 혼돈과 공허를 가리켜 0(十)이라고 합니다. 0을 가리켜 十이라고 하는 이유는, 0에는 비록 무형이지만 1水, 2火, 3木, 4金이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1, 2, 3, 4를 다 합하면 10이 나옵니다. 이처럼 1, 2, 3, 4는 十을 이루는 가장 기초인데, 이를 가리켜 四象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도 4일째에 일월성신이라는 4상을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이런 이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四라는 문자가 4방의 8괘를 모두 담고 있다는 사실을 보아도 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4상은 두 개의 土(음토, 양토)를 지니고 있으니 하나는 1 + 4요, 다른 하나는 2 + 3입니다. 1 + 4나 2 + 3은 홀수와 짝수의 합인데 5土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처럼 5는 음양의 합이기 때문에 음이 될 수도 있고, 양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5라는 숫자는 애초부터 음양을 두루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5는 음이건 양긴 두루두루 行할 수 있다고 하여 五行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흙’이라고 하였으니, ‘흙으로 사람을 지었다’고 하는 말씀은 이를 가리킨 것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5만 음양을 갖춘 게 아니라, 10도 마찬가지입니다. 5는 1과 4, 2와 3이라는 음양의 합이지만, 10은 4상의 합이기 때문에 더 온전한 土입니다. 그래서 5土를 地土라 하고, 10을 天土라고 합니다.(반대로 天土를 5, 地土를 10으로 볼 수도 있음. 그것은 天生地成으로 본 것임)

 

이처럼 4상에는 이미 5행이 들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모두 혼돈과 공허를 상징하고 있는데 숫자로 0이라고 했습니다. 0에서 최초의 物形이 나타나는데 그걸 가리켜 1水라고 합니다. 水는 그 성질이 무거워 밑으로 흘러내리게 마련입니다. 가볍고 맑은 양기는 위로 올라가고, 무겁고 탁한 음기는 밑으로 내려가게 마련입니다. 이런 사실은 모든 물질 중에서 가장 탁하고 무거운 음기는 물이라는 걸 일러줍니다.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물이라고 하면 맑고 가볍고 깨끗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을 가리켜 음이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데에 있습니다. 이와 같은 물의 성질을 그대로 상징한 것이 바로 1水이며, 하나님의 신은 최초에 수면에 운행한다고 하였으며, 시간의 머리를 子時로 삼게 된 근거입니다.

 

물만 있게 되면 한 없이 밑으로 내려가지만, 0속에는 물만 있는 게 아니라 그 반대 되는 불도 있었습니다. 0은 본래 무형이었으므로 그 속에서 나타나는 형체는 당연히 유형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1水입니다. 그러나 유형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무형의 속성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2火입니다. 물은 형체를 만들어내지만, 불은 그것을 태워서 본래의 모습인 무형으로 되돌리려고 합니다. 이처럼 1水는 형상을 생성하는 역할을 하는데 비해, 2火는 그것을 본래의 모습인 十으로 되돌리려고 합니다. 1이 다 하면 2라는 형체로 변하는 사실을 일러준 것이 하도의 북방1水와 남방 2火이고, 1이 2까지 변화하는 과정을 일러준 것은 낙서인데 북방 1감수와 남방 9리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즉, 1水에서 2火라는 형체로 변하기 까지는 9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원리를 이해한다면 왜 하필이면 申符에서 수화금목이 대시이성하여 천하에 무상극지리가 된다고 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은 子에서 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게 申이기 때문입니다. 4상은 각기 ‘시 - 중 - 종‘이라는 변화를 거치는 법이므로 4 × 3으로 12시간(12지지)으로 나타난다고 본 것이 조상들의 깨우침이었습니다. 12시간은 각기 9변을 하는 법이므로 9 × 12 = 108변을 하게 되었으니, 이를 가리킨 것이 108번뢰라고 하는 108염주였으며, 기를 잊지 말라고 하는 의식이 108拜였습니다. 이처럼 물질의 시작을 머리로 삼으면 子時가 되고, 그것을 태초의 十으로 되돌리려는 정신을 머리로 삼으면 巳時가 됩니다. 이렇게 하면 子가 있던 곳으로 巳가 들어가게 마련이므로 水生於火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