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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도 이야기 7

영부, 精山 2013. 3. 28. 08:28

그러나,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지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음과 양은 경우에 따라서 얼마든지 자리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陰根於陽하며 陽根於陰으로 互根하는 것이 본래 음양이다. 그것은 하도를 보면 자세히 알 수가 있다. 예를 들면, 북동방의 1, 3이란 홀수는 내면에 있지만, 남서방의 7, 9는 외부에 있으며, 북동방의 짝수인 6, 8은 외부에 있지만, 남서방의 2, 4는 내부에 있다.

 

陽이 生할 적에는 북동방의 내면에 있고, 成하면 남서방의 외부로 드러난다.

陰이 生할 적에는 남서방의 내면에 있고, 成하면 북동방의 외부로 드러난다.

 

이런 현상은 무얼 의미할까? 하루 중 새벽과 오전은 양(1, 3)이 음(6, 8)의 품안에서 자라며, 오후와 밤은 양(7, 9)이 음(2, 4)을 호위한다고 볼 수 있으며, 1년으로 친다면 겨울과 봄은 음(6, 8)의 품안에서 양(1, 3)이 생육하며, 여름과 가을은 반대로 양(7, 9)이 음(2, 4)을 보전하는 형국이다. 이걸 사람의 일생으로 비유한다면 胎中과 幼少年, 靑年期의 전반에는 음이 양을 생육하며, 靑年期의 후반과 壯,老年기에는 반대로 양이 음을 보전하는 형국이다.

 

이런 이치에 밝아지면 하필이면 남성이 아닌 여성의 몸에서 생명이 태어나는지 이해하게 된다. 여체는 음의 본체(本體)다. 생명은 본래 음이 아닌 양이다. 물론 생명은 음과 양이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음은 스스로 발광(發光)하지 못하지만, 양은 스스롤 빛을 낸다. 인체의 빛은 정신에서 나온다. 몸이 방광(放光)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정신을 반조(返照)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생명이라 함은 ‘정신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여체는 생명을 품고 키워내는 밭이다. 언젠가는 열매를 맺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육신을 내고 키워야 한다. 영과 육은 동시에 존재하지만 항상 6(肉)에서 1(태극 : 정신)이 보호를 받으면서 성장하는 법이다. 6은 坤道인 여체를 가리키기 때문에 생명체는 여체를 통해 탄생하게 마련이다. 즉, 태양은 어두운 밤의 음기를 먹으면서 새벽 동산에 솟는 법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 보다 어머니의 품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북동방은 어머니의 품을 가리킨다. 그것을 계절로 친다면 겨울과 봄이다. 이때에는 생육을 위주로 하며, 그것은 곧 氣가 주도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易書에 이르기를 ‘기는 동북에서 고수한다(氣東北而固守)’고 하였다. 사실 기는 동북에만 있는 건 아니다. 그것은 없는 곳이 없다. 그런데도 굳이 동북에서 그 자리를 고수한다고 하는 것은, 그곳은 생육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창 자랄 적에는 심오한 理보다는 풍족한 氣의 공급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氣를 앞세우면 안 된다. 성인은 힘보다는 이치나 경우를 앞세워야 한다. 그러기에 어린 아이들에게는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지 못하지만, 성인은 누구나 엄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이치에 의해 ‘이서남이교통(理西南而交通)’이라고 하였다. 즉, 하도의 서남방에는 7과 9라는 양이 더 이상 은밀하게 숨지 않고, 겉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이는 곧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밝아진 理로 사물을 대한다는 뜻이다. 대신 그 속에는 2와 4라는 음을 싸고 있으니, 밝은 이치는 부드러움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걸 가르쳐준다.

 

무엇이건 생장기(生長期)에는 6과 8로 상징되는 부드러운 음으로 품어주어야 하는데, 그 속에는 1과 3 같은 양을 간직해야 한다. 이때의 부드러운 음이라 함은 감성(感性)을 의미한다. 초창기에는 딱딱하고 엄격한 이치나 의리를 내세우는 것보다 끈끈한 감성으로 맺어지는 게 자연의 섭리(攝理)다. 왜냐하면 그 시기는 무엇보다 형체가 어느 정도 굳건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도 몸이 어느 정도 자라야 스스로 자립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되기까지는 엄한 법의 잣대보다는 따스한 어머니의 품이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