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답은 간단하다. 형체는 4상으로 나타나는 법이기 때문이다. 즉 사물은 1, 2, 3, 4라는 生의 4상과 6, 7, 8, 9라는 成의 4상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5와 10은 왜 4상에 들어가지 않을까? 그것은 生의 4상은 5에서 나간 것이고, 生成의 4상도 十에서 나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생수 1과 생수 4의 합은 5이고, 생수 2와 생수 3의 합은 5이며, 이 네 개의 생수를 합하면 10이 나오고, 또한 생1과 성9, 생2와 성8, 생3과 성7, 생4와 성6의 합은 모두 10이다. 이처럼 5와 10은 생수와 성수의 어느 한 쪽에 속한 것이 아니라, 생성의 근원이기 때문에 하도의 중심에 배치를 하게 된 것이다. 또한, 成의 합은 15라는 사실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6 + 9, 7 + 8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5, 10, 15라는 세 가지의 형태로 土가 전개되는데, 이를 달리 말한다면 5는 一이요, 10은 十字요, 15는 大十字로 표기하였다는 사실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1은 생수의 시작이요, 6은 성수의 시작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1과 6은 3변을 통하면서 나타난다. 그런 것은 낙서에서 다룰 것이므로, 일단 생략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1과 6의 형체적인 면으로 부각(浮刻)시키기로 한다. 그것은 이미 앞서 수박을 가르면서 언급한 것처럼, 1은 수박의 내면에 생긴 3극의 합치점이요, 6은 수박의 표면에 생긴 여섯 개 十字의 중심점을 가리킨다.
大十字라는 커다란 十字에서 여섯 개로 벌어져 나간 小十字가 6이다. 숫자를 형체로 본다면 홀수는 모두 하늘의 무형을 가리키고, 짝수는 모두 땅의 유형을 가리킨다. 天1, 地2, 天3, 地4, 天5, 地6, 天7, 地8, 天9, 地10이라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본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면 무형으로 있던 天1이 땅에서 유형으로 나타난 것이 地6이라는 뜻이 된다. 즉, 하늘의 1陽水는 땅에서 6陰水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기 때문에 물을 볼 적에는 반드시 하늘의 양과 땅의 음이라는 두 가지 면으로 보아야 제대로 그 실상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다른 5행도 마찬가지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수박의 내면은 하늘을 가리킨 것이요, 표면은 땅을 가리킨다는 사실이다. 즉 하늘의 중심에 3극이 모여서 무형의 중심이 1로 서게 되고, 땅에서는 음양의 중심이 6기를 발생함으로 인해 유형의 중심이 서게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물을 검은색이라고 하는 것은, 6음수를 가리킨 것이요, 부드럽다고 하는 것도 역시 6음수를 가리킨 것이며, 차갑다고 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반대로 물을 투명하다고 하는 것은 1양수의 속성이며, 쉬지 않고 흐르려고 하는 것도 1양수의 속성이고, 물을 얼지 않게 하는 것도 1양수의 속성이다.
물의 맛을 짠맛(鹹味)이라고 하는데, 鹹은 鹵(소금 로)와 咸(다 함)을 합친 글자다. 즉, 물은 소금처럼 짠맛을 주관한다는 말인데, 소금을 잘 살펴보면 물과 같은 속성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물은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기능이 있는데, 짠맛도 역시 그런 기능이 있다. 부정(不淨)한 것을 씻거나, 재수 없는 손님이 오면 소금을 뿌린 하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이다. 소금은 불에 잘 녹지 않지만, 물에는 잘 녹는다. 바다에 소금이 없으면 물이 썩기도 하며, 얼음이 얼어서 물고기들이 살지 못할 것이다.
본래 ‘짜다’는 말은 ‘옷을 짜다, 계획을 짜다, 머리를 짜다’ 등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치밀(緻密)하게 무언가를 준비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이 바로 겨울의 이미지이며, 물의 속성이다. 또한 ‘기름을 짜다, 약물을 짜다 ’등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무언가 정성을 다 하면서 자신을 희생하는 상태를 가리키기도 한다. 생선에서 기름을 짜내려면 당연히 생선은 죽어야 한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인데,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인류의 죄를 대속(代贖)하기 위한 십자가를 짊어진 자! 그가 바로 그리스도라고 하지 않는가? 이처럼 水의 맛을 가리켜 짠맛이라고 하는 데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