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는 금의 내면에서 한창 뻗어가는 음의 기운을 가리키고, 9는 표면으로 나타난 양의 노쇠한 모습을 가리킨다. 金이 그토록 단단할 수 있는 것은, 내면에 4라는 생장하는 음이 수렴하는 작용 때문이고,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것은 비록 노쇠하지만 9라는 양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양이라고 하여도 7은 양의 극성이기에 열을 수반하지만, 9는 열이 없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金은 휘황찬란하지만 결코 열은 없다.
금을 방위로 말한다면 서방이다. 그것은 태양이 지면서 달이 뜨는 곳이 서방인 것처럼, 금도 역시 양이 노쇠하면서 안에서는 음이 생장하기 때문이다. 금을 가을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니, 가을에는 싸늘한 음기가 더위를 물리치면서 세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금을 가리키는 곡물로는 벼(稻)라고 할 수 있으니, 벼는 봄에 심어 가을에 수확을 하기 때문이다. 가을에 수확 한다는 것은 봄과 여름의 기운을 두루 내포한다는 의미이니, 보리나 밀이 한 겨울을 지나면서 겨울의 기운을 지닌 냉성인데 반해, 벼는 한 여름의 온기를 지닌 곡물이다. 금이 비록 겉으로는 9라는 딱딱하게 굳은 양이 있지만, 속에는 9의 양기를 왕성하게 수용한 4음이 있어 비교적 따스한 감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벼와 같다.
금을 과실로 말한다면 복숭아(桃)라고 하는데, 복숭아는 다른 과일에 비해 물이 적다. 金에는 물이 없으니 이 역시 같은 맥락이다. 예부터 신선들이 즐겨 먹는 과일을 복숭아라고 하여 神仙桃 혹은 무릉도원(武陵桃園)이라는 말이 있는데, 복숭아가 서방금을 가리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금을 금궤진언론(金匱眞言論)에는 말이라 하였으나, 오상정대론(五常政大論)에는 닭이라고 하였다. 가을하늘처럼 맑고 드높은 양을 닮은 것으로 보면 분명 말은 금이다. 같은 양이라고 하여도 여름의 양은 습기를 동반하지만, 가을은 건조하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기 때문에 여름의 가축으로는 양이라고 하게 된 것이고, 가을은 말이라고 하였다. 말은 본래 하늘의 맑은 양기를 상징하기 때문에 하도를 지고 나왔다고 하였다.
그런데 왜 오상정대론에서는 닭을 가을이라고 할까? 앞의 3, 8목을 논할 적에 닭은 木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주장한 것은 금궤진언론의 기록이다. 오상정대론에서는 木에 속한 가축을 개라고 한다. 이 역시 그 기준을 어디에 두었느냐에 따라 견해가 엇갈린 것이지,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고기 맛으로만 본다면 개는 당연히 금에 속한다. 그러기 때문에 한 여름의 화극금으로 인해 부족한 금기를 보충하기 위한 방책으로 우리민족은 보신탕으로 개를 즐겼다. 개에는 금의 기운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풍속이 생긴 셈이다. 금은 하늘과 같이 맑은 양기를 의미한다. 그런데도 굳이 오상정대론에서 개를 木으로 분류한 까닭은, 개의 다정함이 春木을 닮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승 중에서 개처럼 정이 많고 깊은 건 드물다.
이것을 금궤진언론에서는 닭을 목이라고 본 것과 비교해 보자. 닭을 고기 맛으로 분류한다면 金으로 보는 게 옳을 듯하다. 왜냐하면 금기가 많은 고기의 특징은 비교적 잘 부서지거나 갈라지며 찢어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동태찌개를 먹으면 다른 것에 비해 잘 부서지면서 개운한 맛이 나는데, 이는 곧 동태에는 금기가 많다는 증거다.
그런 고기로는 닭고기와 개고기도 비슷하다. 다만 개고기는 닭고기에 비해서 기름기가 적다. 기름기가 적다는 것은 금기가 많다는 반증이다. 이처럼 닭은 고기 맛으로 본다면 金으로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이것은 오상정대론의 기록이다. 그런데도 금궤진언론에서 굳이 닭을 木으로 분류한 것은, 닭은 새로운 시간(소식)을 알려주는 전령(傳領)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단연 봄이요 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