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탄금(對牛彈琴)
거창한 약속과 비전만으로는 힘들다.
후한(後漢) 말기에 모융(牟瀜)이라는 학자가 있었다.
그는 불경에 밝아 많은 사람이 불경을 공부하러 그를 찾아왔다.
그런데 찾아온 사람이 유학자일 경우에는
유학자들에게 불교를 설명할 때면 불경을 설명하면서
늘 불전(佛典)이 아니라 《시경(詩經)이나 《서경(書經)》등 유학의 경서를 많이 인용했다.
이에 대하여
이를 지켜보던 어떤 이가 '왜 당신은 불교에 능하면서
불교의 사례를 들지 않는 가'라며 이유를 묻자 모융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당신들은 불경을 읽은 일이 없을 것이오.
그래서 나는 당신들이 잘 알고 있는 유교 경전을 인용하는 것이라오.”
그러고는 송(宋)나라 때 목암(睦庵)이 지은
선집 조정사원(祖庭事苑)에 보이는 공명의(公明儀)의 일화를 이야기하였다.
“옛날 노(魯)나라에 공명의(公明儀)라고 하는 어진 사람이 있었오.
하루는 소를 보고 그 하는 일에 고마움을 느껴 거문고를 켜 주었는데
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풀만 뜯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소가 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청각(淸角)이라는 고상한 곡조가 소 귀에는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모기와 등애의 울음소리,
젖을 먹고 있는 송아지 울음소리를 흉내냈습니다.
그러자 소는 발굽소리를 내며 꼬리를 흔들기도 하고,
귀를 세운 채 거문고 소리를 다소곳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소리가 소의 마음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유학자들에게 불전이 아닌 시경(詩經)을 인용하는 이유입니다.”
'눈높이 교육'은 아이들을 가르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 신뢰와 믿음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잡히지도 않고 증명할 수도 없다.
그저 '믿을 수 밖에 없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따라서 신뢰야말로 눈높이를 제대로 맞춰야 한다.
상앙의 '나무 옮기기'도 결국에는 백성의 눈높이를 맞추는 방법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들은 법은 못 믿어도 최소한 '50금'이라는 상금은 믿었기 때문이다.
회사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거창한 약속이나 비전만으로 직원을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그보다 그들의 상황과 처지, 즉 '눈높이'에 맞는 신뢰를 이끌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상대방의 수준과 처지, 상황에 맞는 ‘눈높이 신뢰’야말로
당신의 신뢰를 확산시키는 유력한 방법이다.
[참고]
▲‘이목지신(移木之信)’이라는 위정자와 관련된 중국 고사가 있다.
진(秦)의 효공(孝公)에게는 상앙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하루는 상앙이 백성들의 불신을 없애기 위해
3장(약 9m) 높이의 나무를 남문 저잣거리에 세우고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십금(十金)을 주겠다”고 말했다.
옮기려는 사람이 없어 상앙은 다시 오십 금을 주겠다고 공표했고,
옮기는 사람이 나타났다.
상앙은 즉시 오십 금을 주어 나라가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상앙은 백성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자신이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여 먼저 모범을 보인 것이다.
‘이목지신(移木之信)’은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들을 믿게 한다는 말로,
위정자가 백성과 맺는 신의(信義)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