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2. 상생과 상극 15 - 土生金

영부, 精山 2013. 5. 4. 09:51

                                            * 토생금(土生金)

토생금은 흔히 ‘흙은 금처럼 단단해진다’는 식으로 설명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5土와 10土에 대한 구별도 없이 막연한 건 마찬가지다. 土는 어떻게 해서 金처럼 단단해질까? 즉 어떻게 해서 火生土가 되는 걸까? 5행에서 土는 부드러움의 상징이다. 부드러움이라고 하면 東方木을 빼놓을 수 없다. 부드러움은 사실 탄력(彈力)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는 土보다는 차라리 木이 더 탄력이 있으며 부드럽다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도 대부분 土는 부드러움을 상징한다고 본다. 하지만 木의 부드러움과 土의 부드러움은 분명 차이가 있다. 土를 부드럽다고 하는 것은, 모든 걸 다 받아들이고 베풀기 때문이다. 土는 1, 6水를 받아들으면 1,6水로 나타나게 하고, 2, 7火는 2, 7화로, 3, 8木은 3, 8木으로, 4, 9金은 4, 9金의 모습 그대로 나타나게 한다.

 

土는 콩을 심으면 콩을 生하고, 팥을 심으면 팥을 生한다. 그러기 때문에 土의 맛을 ‘단맛’이라고 하였다. 단맛은 그 어느 것과도 잘 통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土는 그 어느 5행에게도 휘둘리지 않는다. 火가 비록 뜨겁다고 하여도 土를 태워서 없애지 못하며, 水가 모든 걸 떠내려가게 한다고 하여도 大地는 끄떡도 하지 않으며, 金이 아무리 단단하고 날카롭다고 하여도 전혀 土에게 피해를 줄 수 없고, 木克土를 하는 木이라고 하여도 그리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베풀면서도 아무런 변화나 동요가 없는 덕성을 지닌 것이 토다.

 

그러나 木은 모든 걸 다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을 生하는 水와 자신이 生하는 火와는 좋은 사이를 유지하지만, 金과 土와는 克을 주고받는 사이다. 그런데도 木을 부드럽다고 하는 건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木은 봄의 상징인데, 봄은 많은 생명을 품고 생장시키는 仁을 덕성으로 하기 때문이리라.

 

여하튼 土는 金을 生한다. 이때의 土는 부드러움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만물의 造化主를 가리킨다. 土는 5행의 중심이니 그것은 곧 모든 사물의 바탕을 가리킨다. 중심에서부터 모든 것이 벌어지는 법이니 土를 가리켜 조화주라고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하필 土는 金을 生할까? 다른 5행도 역시 土를 바탕으로 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유독 金만 生한다고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5행의 상생을 계절로 비유한다면 水는 차가운 겨울이요, 木은 화창한 봄이며, 火는 뜨거운 여름이다. 土는 長夏라고 하는데 뜨거운 여름과 청량한 가을 사이라고 한다. 가을은 열매를 맺고 거두어들인다. 이렇게 보면 장하는 가을의 열매를 맺게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니, 습기를 수반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그런 무더위를 거치면서 마침내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 이것을 土生金이라고 한다.

 

무더위로 비유되는 土는 어떻게 해서 단단한 金을 生할까? 따스한 것은 사물을 단단하게 하는 게 아니라 이완(弛緩)시키는 작용을 한다. 火는 1水로부터 시작한 물질을 이완시키는 일을 하는데, 그걸 계절로 말하면 여름이다. 겨울은 긴장의 극이요, 여름은 이완의 극이다. 이완이 극에 달하면 다시 긴장으로 들어간다. 겨울의 1水로 시작한 생명은 여름의 2火에 이르면 극즉반의 원리에 따라 다시 水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한 여름의 2火에 달할 무렵이면 水의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건 아주 사라진 게 아니라, 속에 도사리고 있었으니 그걸 가리켜 2陰火라고 한다. 1陽이 3목을 거쳐 7火에 이르러 극렬한 火氣를 띠게 되면 사라졌던 음이 생기게 마련이니 그것이 바로 2음화다. 음으로 양을 제어하지 않으면 양의 성질 상, 그냥 사라지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