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원리에 따라 건곤은 각기 음과 양이라는 두 개의 오행을 취한 것이요, 감리는 오직 유일한 水火만 있게 된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水火는 모든 형상 중에서 오직 유일하게 음양으로 분류되는 게 아니라는 말도 된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도에서는 1, 6水라는 음수와 양수가 있으며, 2, 7화라는 음화와 양화가 있을까?
그건, 하도는 만물의 형상을 가리킨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도는 이미 몇 번이나 언급한 것처럼, 만물의 형상을 가리킨 게 아니라, 그 내면에 들어 있는 5행을 가리켰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 숫자의 나열로 본다면 4가 먼저이고 다음에 5가 나온다. 이렇게만 본다면 4상을 먼저 보여주고, 다음에 5행을 보여주는 게 순서다. 그러나 하늘은 하도를 먼저 보내주고, 다음에 복희씨를 통하여 4상(8괘)을 보여주었으니, 이는 무슨 연유(緣由)일까?
물론, 무형의 5행을 알게 하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4상(8괘)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이해를 돕기 위한 방편에서 나온 말이다. 4상과 5행중에서 어느 것이 먼저일까? 그건 당연히 5행이다. 왜냐하면 5행은 만물의 중심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어느 것이건 중심에서 표면으로 부풀어져 나온다.
이런 관점에서 다시 하도에는 수화가 음양으로 나누어지지만, 복희도에서는 수화가 한 개씩만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하도에서의 水火는 상하(남북)로 벌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복희도에서의 水火는 좌우(동서)로 벌어졌는데, 이런 것과 어떤 연관성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하도에서의 水火는 형상적인 물과 불을 가리킨 게 아니라, 음극(6水) 속의 양을 1水라 하고, 양극(7火) 속의 음을 2火라고 했을 따름이다. 그러나 복희도의 불은 하늘에서 발생한 막강한 음기(☳)가 마지막 미약한 음기(☱)로 화하는 중간의 상태인 ☲라고 한 것이며, 물은 땅에서 발생한 막강한 양기(☴)가 마지막 미약한 양기(☶)로 화하는 중간의 상태인 ☵이라고 한 것이다.
하도에서는 水火가 상하로 벌어져 음극과 양극을 이루는 반면에, 좌우에는 木金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모든 5행의 중심에는 토가 조화를 이루지만, 복희도는 金 과 土가 각기 상하의 극을 이루고, 木이 4震陽木과 5巽陰木이 되어 각기 천지의 꼬리와 머리를 연결시키는 조화를 한다. 즉 하도에서의 土에 해당하는 것이 木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은 용담도에서 3, 8木이 실질적인 우주의 중심이 된다는 걸 암시하는 셈이다.
그럼, 왜 복희도에서는 상하에 걸쳐 金(건, 태)과 土(곤, 간)라는 5행이 있다고 하였을까? 그것도 역시 복희도는 형상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니 형상 중에서 가장 단단한 것은 金이요, 가장 부드러운 것은 土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木은 왜 복희도의 5, 10土에 해당하는 것으로 배치하였을까? 그것도 역시 형상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니, 木은 金과 土의 중간에 해당한다. 이것은 나중에 문왕도의 동북방과 서남방에 2곤지와 8간산이 들어가는 근거가 된다.
괘상의 형태를 보아도 이런 사실은 명백하게 알 수 있으니, 다른 괘상들은 전부 건곤(천지)의 상하에서 변하고 있으나, 물을 가리키는 ☵과 불을 가리키는 ☲은 둘 다 천지의 한 중심을 변화시킨다. 이로써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건곤은 형상의 중심이요, 감리는 변화의 중심이다. |
지금 우리는 ‘5행과 8괘의 숫자’에 대한 걸 면밀히 검토하는 중이다. 그것은 5행과 8괘의 간지를 통해서 좀 더 확실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