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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첫 번 째 강좌

영부, 精山 2016. 8. 28. 11:18

하도(河圖)





1. 하도의 출현



우리나라에는 각종 도서관이 많이 있다. 그만큼 국민들의 의식상태가 중요하기 때문에 양질의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도서의 중요성은 필설(筆舌)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막중(莫重)하다. 그런데, 도서란 용어의 근원을 아는 이는 드물다. 무엇이건 근원을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곧 ‘뿌리’이기 때문이다. 뿌리 없는 나무나 샘이 없는 냇물은 그 생명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처럼, 모든 문화의 바탕인 도서의 뿌리를 밝히는 일은 중하다. 도서란 말은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하나로 합친 용어다. 하도와 낙서에 대한 기록을 사전에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하도는 복희씨(伏羲氏) 때에 황하[黃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그려져 있었다는 그림이고, 낙서는 우(禹)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 낙수(洛水)에서 나온 신귀(神龜)의 등에 씌어 있었다는 글이다. 복희는 하도에 의해 팔괘를 그렸고, 우는 낙서에 의해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낙서와 홍범구주에 대해서는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고대의 제왕들이 필수적으로 익혀야 할 통치이념이었다. 그것은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하도와 연관된 것만 언급한다. 각각 별개로 취급되던 하도와 낙서가 병기(倂記)된 것은〈사기 史記〉공자세가와〈회남자 淮南子〉숙진훈(俶眞訓)이며, 거기에는 하도와 낙서가 태평치세에 나타나는 상서(祥瑞)로 설명된다. 상서는 <복(福) 되고 좋은 일이 일어날 조짐(兆朕)>이란 뜻이다. 쉽게 말하자면, 인류에게 가장 복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크게 天상서, 地상서, 人상서로 분류한다. 천상서는 하도요, 지상서는 낙서이며, 인상서는 현무경의 정수인 용담도를 가리킨다.



상서를 문자로 살핀다면, 祥(상서로울 상, 복스러울 상)은 羊(양 양)을 示(보일 시)하는 상태이고, 瑞(상서 서)는 玉을 부수로 하여 山을 而(이을 이)한 상태다. 羊을 示한다는 건, 三(3극)을 丫(가장귀 아, 지게 아)한다는 말이니, 음양을 하나로 모은 丫로 천지인 三을 일관한다는 의미가 된다. 즉 음양과 3극을 하나로 일관한 상태를 보여주는 게 진정한 祥이다. 그걸 가리켜 가을의 열매라 한다. 가을의 열매는 미회(未會)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未는 羊이라고도 한다. 이런 이치를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대신사는 자미회(子未會)라 하였다. 자미회는 개벽의 이치를 밝힌 문구인데, 선천의 자시두(子時頭)가 후천에는 사시(巳時)로 시작해서 午를 거치면서 未에 이르러 열리게 된다는 사오미개명(巳午未開明)을 의미한다. 瑞는 玉(혹은 王)이라는 보물이 山속에 깃들게 된다는 뜻이다. 玉은 보물이요, 보물은 金이다. 이것이 선천에는 서방의 申酉(양금, 음금)이었으나 간산(艮山) 속에 깃들지 못했으니, 진정한 금맥(金脈)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후천에는 申酉가 동방으로 이동하여 8간산에서 금극생목(金極生木)을 하니, 비로소 김제(金堤)의 금산사(金山寺)로 자리매김을 한다. 이는 곧 동방의 간담(肝膽) 목기운은 서방의 폐,대장(肺,大腸) 금기운으로 동량지재(棟梁之材)가 되어 비로소 온전한 금수강산(錦繡江山)으로 인체가 거듭난다는 말이다. 인체가 거듭나면 가정과 사회도 거듭나며, 마침내 지산선경으로 화하게 된다. 3대 상서는 이와 같은 지상선경을 건설하는 키포인트이기에 필수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첫 번째가 바로 하도다.



하도의 출현은 지금으로부터 5475년 전에 하늘(일설에는 河水라고도 함)에서 용마(龍馬)가 내려왔는데, 그 등에 흑백의 55점이 그려졌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기록에 의하면, 송대(宋代)에 이르러 소옹(邵雍 소강절)은 그의 상수학(常數學)에 의해 하도와 낙서의 도형화를 시도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조선 초기의 성리학자인 권근(權近)이 지은〈입학도설 入學圖說의 하도오행상생지도와 낙서오행상극지도에서 <소옹이 그린 하도와 낙서는 각각 오행의 상생과 오행의 상극을 도상화한 것>이라는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다. 소옹은 기수(奇數 홀수)를 양점(陽點)으로, 우수(偶數 짝수)를 음점(陰點)으로 해서, 1~10의 모두 55점을 사방과 중앙에 배치하였으니, 오늘 날 북방에는 1점과 6점, 남방에는 2점과 7점, 동방에는 3점과 8점, 서방에는 4점과 9점, 그리고 중앙에 5점과 10점이라고 하는 것은 이를 가리킨다. 낙서는 기수인 1점을 남방에, 3점을 동방에, 5점을 중앙에, 7점을 서방에, 9점을 북방에 배치하고, 우수인 2점은 서북방에, 4점은 동북방에, 6점은 서남방에, 8점은 동남방에 배치했다.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명칭은 선진시대(先秦時代)의 전적(典籍)인 상서≪尙書≫의 고명편<顧命篇>, 논어≪論語≫의 자한편<子罕篇>, 예기≪禮記≫의 예운편<禮運篇>, 주역≪周易≫의 계사전<繫辭典> 등에 나타나는데, ≪상서尙書≫의 <고명顧命>에는 “태옥(太玉)과 이옥(夷玉)과 천구(天球)와 하도(河圖)는 적서(吊序라) - 태옥, 이옥, 천구, 하도를 동쪽에 각각 차례대로 늘어놓았다”고 하여 서주(西周)의 성왕(成王 - B.C 11세기) 당시에 이미 하도(河圖)가 국가의 보물로써 중시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논어≪論語≫의 자한<子罕>에는 “봉조부지(鳳鳥不至)하며, 하불출도(河不出圖)하니 오이의부(吾已矣夫)인저 - 봉황새가 나타나지 않으니, 하수에서 도(圖)가 나오지 않는구나! 내가 그만 둘까보다”라 한 孔子의 말씀이 실려 있고, 역시 孔子가 지은 ≪주역 계사전 周易·繫辭傳≫에는 “하출도(河出圖)하며 낙출서(洛出書)하야 성인칙지(聖人則之)라 - 河水가 도를 내고 洛水가 서를 내서 성인은 이를 본받았다.”는 말이 기술(記述)되어 있으며, 하나라에서는 홍범구주라 하여 치세(治世)의 전범(典範)으로 삼기까지 하였다.



이처럼 고대로부터 하도와 낙서는 모든 문화의 바탕이 되었으며, 지금도 음양오행, 4상, 6기, 8괘, 9궁 등의 학문으로 남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도서는 글을 쓴 책과 그림 등을 포괄적으로 내포한 것을 가리킨 것으로, 지금도 이런 도서를 통해서 인류는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여 더 나은 내일의 문화를 지향한다. 개벽주로 오신 증산께서도 부서이외별무통(符書以外別無通 - 영부와 글 이외에는 특별히 통하지 못한다), 박람박식수복희(博覽博識誰伏羲 - 박람박식하기로는 누가 복희와 같으랴!), 응수조종태호복(應須祖宗太昊伏 - 마땅히 태호 복희를 조종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을 정도이니 도서의 중요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2. 도서부(圖書符)의 명칭에 담긴 의의(意義)



하도(河圖)를 도(圖)라고 한데 대해 임천 오씨(臨川 吳氏 - 본명은 吳澄 字는 幼淸, 元代의 학자)는 말의 등에 있는 선모(旋毛 - 휘돌아 감긴 털의 모양)의 동그라미가 성상(星象 - 별의 형상)과 같기 때문에 도(圖)라고 한 것이지, 55수(五十五數) 외에 별도의 도(圖)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으며, 낙서(洛書)를 서(書)라고 한 것은, 거북 등의 무늬가 갈라진 모습이 글자의 자획(字劃)과 흡사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러나 필자(筆者)의 견해로 본다면 도서라는 용어는 그 이상의 깊고도 심오한 이치가 들어 있다. 圖(그림 도)는 鄙(시골 비, 인색할 비, 다라울 비)라는 작은 구획(區劃)과 큰 구획인 □을 합한 문자이니, 결국 크고 작은 모든 것을 다 합해 놓은 상태를 의미한다. 즉, 圖에는 모든 형상이 다 들어 있다는 뜻이니,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을 총망라(總網羅)한다. 하도는 하늘에서 내려 온 용마, 혹은 하수(河水)에서 나온 용마의 등에 그려진 그림이라고 하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애초부터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하늘과 하수는 동일한 것이다. 왜냐하면 天一生水이기 때문이다. 즉 하늘은 물의 근원이기 때문에, 하도가 하늘에서 나온다는 건, 곧 물(하수)에서 나온다는 말과 동일하다. 하늘에서 보면 땅이 보이는데, 땅은 온갖 산천(山川)과 초목(草木)이 벌어졌으니, 이는 하늘이 그린 그림이다. 하늘은 곧 물이니 하도(河圖)라고 하게 된 것이다. 물(氵)에서 모든 것이 가능(可能)한 법이니, 氵와 可를 합하여 河가 된다. 이에 반해서 書(글 서)는 땅에서 본 것이니, 땅에서 보이는 건 무형의 하늘이다. 하늘에서 보이는 건 온갖 땅의 형상, 즉 그림이지만, 땅에서 보는 하늘은 무형이기에 그림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무형은 곧 안 보이는 이치나 법을 가리킨다. 書(글 서, 쓸 서)는 聿(붓 율)과 者(놈 자)를 합한 문자요, 者는 풍로(風爐) 위에 장작(長斫)을 높이 쌓아 불을 피우는 모습이니, 밝은 의식을 위하여 여러 가지 정보와 지식을 많이 기록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런 기능을 하는 게 붓(聿)이기에 洛書라는 명칭이 붙었다.



河와 洛은 같은 물이지만, 河가 강이나 내와 같이 많이 모인 물을 가리키는데 반해, 洛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을 가리킨다. 즉 하늘에서 보이는 물은 땅으로 떨어져서 흐르는 강이고, 땅에서 보이는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다. 즉 河는 땅에서 많이 모인 전체적인 물이라면, 洛은 각기 갈라진 물이다. 그래서 洛은 落(떨어질 낙)이라 하며, 氵가 各(각각 각, 낱개 각)한 상태를 가리킨다. 하도는 5행의 전체적인 관계(1에서 10)를 나타내는 상생(相生)을 가리키고, 낙서는 5행이 각기 개체적인 걸 위주로(1에서 9) 하는 상극(相剋)을 가리킨다. 書는 洛書의 줄임말이요, 洛(강 이름 낙)도 역시 氵(水)와 各(각각 각, 서로 각, 여러 각, 마찬가지 각)을 합한 문자이다. 河가 만물의 탄생을 可하게 하는 물이라면, 洛은 만물이 각각 변화하는 상태를 가리킨 물이다. 따라서 하도는 모든 만물의 형상을 가리킨 것이고, 낙서는 개개의 속에 숨어 있는 변화의 이치를 나타낸 것이다.



궁극적으로 사람은 ‘깨달음’을 터득(攄得)하여 대자유를 얻는 해탈이나 부활의 경지에 도달하는 걸 이상으로 삼고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이 있어야 한다. 아무 것도 보거나 들을 수 없다면, 어찌 그런 경지에 달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먼저 보이는 형상을 통하여 안 보이는 이치에 도달하는 게 깨달음의 순서다. 따라서 하늘에서 보이는 만물의 형상을 위주로 하는 河圖가 먼저요, 다음에는 그 속에 숨어서 안 보이는 무형의 깨달음을 위주로 하는 洛書가 나중에 나오게 된 것이다. 이처럼 도서는 인류사에 있어 지대한 공헌을 해 온 문화유산이다.



하도 시대에는 글이 없었다. 하도 시대에는 눈에 보이는 모든 대자연의 산천과 초목과 굳이 말이 없어도 교감을 하였다. 그만큼 그 당시의 사람들은 순진무구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글과 언어가 등장하였으니, 점차 순진함에서 벗어나 탁하게 물들어 가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의 일생과 같다. 즉 어릴 적에는 말을 하지 못하였으나, 점점 자라면서 말을 배우고, 글을 배우는 것과 같다. 언어와 글을 배우기 이전의 상태를 가리켜 하도라 한다면, 그 이후는 낙서의 상태라고 보면 될 것이다. 낙서의 시대라 하여 하도가 사라진 건 아니다. 아니, 더욱 더 눈에 보이는 사물이 더 확실한 양태(樣態)로 보이게 마련이니, 낙서의 등장은 하도를 더욱 더 공고(鞏固)하게 한다. 순진무구한 면으로 본다면 어린 시절이 그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런 상태는 너무나 단순하여 복잡다단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하다. 어린 시절은 순진하지만 유치(幼稚)하다. 즉 눈에 보이는 형상, 먹고 살기 위한 본능적인 면에 치우친다면 유치하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도에서 낙서가 나온 이유다.



하도의 문화를 봄이라 한다면, 낙서의 문화는 여름이다. 어린애가 글이나 말을 배우기 전에는 순진무구하여 호생지덕(好生之德)이 충만하게 마련이니, 이는 혹한에서 모든 생물들이 풀린 상태와 같다. 말과 문자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사람은 생존경쟁에 뛰어들게 마련인데, 마치 꽃들이 서로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과 같다. 이를 가리켜 여름문명이라 한다. 한 여름의 태양은 모든 형상을 만천하에 드러내며, 뜨거운 열탕으로 숙성하게 하니, 봄과 달리 여름의 문명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러기 때문에 수시로 전쟁이라는 참변을 벌이면서도 입으로는 아름다운 사랑과 평화를 반복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여 온 것이 작금(昨今)의 여름문명이다. 이것이 바로 낙서판이다.



하지만, 가을이 오면 화려한 꽃들도 낙엽으로 전락(轉落)하고, 오직 튼실한 열매만 남게 마련이다. 열매는 만물의 결실(結實)이다. 결실은 結(맺을 결)이란 문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十무극과 一태극을 하나로(吉) 겹친 구체적인 형태인 □로 모든 개체를 糸(가는 실 멱)하게 한 상태를 가리킨다. 무형으로 있던 겨울을 지나 형상이 생장하는 봄을 지나, 화려한 꽃을 만개하는 여름에 이르러 형상의 극치를 뽐내면 형상은 서서히 사라질 준비를 하니, 이것이 가을이다. 형상이 사라지려면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것은 열매 속의 무수한 씨앗이다.



열매에는 봄의 씨앗과 여름의 꽃이 다 들어 있다. 땅속으로 들어가 안 보이던 봄의 씨앗과 낙엽이 되어 사라진 여름의 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열매라는 형태, 정확히 말하자면 열매 속의 씨앗으로 변했을 따름이다. 봄의 하도는 만물이 형상(圖)을 싹 틔우는 과정이요, 여름의 낙서는 그런 형상들이 각기 화사한 꽃(書)을 자랑하는 과정이라면, 가을의 용담은 도서(圖書)를 하나로 묶은 열매를 맺는다. 하도는 천도(天道)요, 낙서는 지덕(地德)이라면, 용담은 인사(人事)에 해당한다. 인사는 천지의 도덕을 적재적소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니, 이를 상징하는 게 바로 부(符)다. 환단고기의 영부(靈符)나 천부경의 천부(天符)는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열매가 등장하면 잎새와 꽃이 떨어지지만, 생명력을 지닌 씨가 몇 백 배로 불어난다. 튼실한 열매에는 하도와 낙서가 비록 그 형태는 사라지지만 영원히 살아 있다.



형상이 사라지는 형태를 가리켜 낙엽(落葉)이라 한다. 낙엽은 문자 그대로 ‘떨어진 잎사귀’이다. 잎사귀가 떨어지는 이유는 더 이상 그것이 나무에 붙어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잎사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까닭은, 나무에 자양분을 공급하기 위함이다. 봄과 여름에 걸쳐 푸른색을 띄우게 되는 이유는, 엽록소(葉綠素)가 있기 때문이다. 식물은 동물과 달리 음식물을 먹지 못하고, 광합성 작용으로 자양분을 보충한다. 엽록소는 광합성에 가장 중요한 색소로서 녹색의 빛을 제외한 모든 다른 파장의 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잎사귀는 녹색으로 보인다. 잎사귀는 밑의 뿌리에서부터 올라 온 물과 위에서 내려 온 태양 볕을 함께 합성하여 음양의 조화를 하고 있으니, 수리로 표기하면 1(물)+2(불)=3, 6(물)+7(불)=3(13에서 10은 제외), 1(물)+7(불)=8, 6(물)+2(불)=8이 되니, 이것이 곧 3,8木의 근거다.



가을이 되어 열매가 생기기 시작하면 더 이상 광합성 작용은 필요하지 않게 되어, 잎사귀는 스스로 수분의 공급을 차단한다.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겨울을 이겨내는 에너지가 모두 잎에서 나오기 때문에 잎을 그대로 버린다면 나무로선 엄청난 에너지 손실이다. 이를 막기 위해 나무는 주요 양분을 낙엽이 지기 직전 잎에서 줄기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무는 추운 겨울 식물세포가 얼어붙는 피해를 막기 위해 수분이 공급되는 걸 막아야 한다. 그래서 잎과 가지를 잇는 잎자루에 ‘떨켜층’과 ‘보호층’을 만든다. 떨켜층은 잎이 나무에서 분리되는 부분으로 얇고 약한 세포벽이 좁은 띠를 이루고 있는 곳이며, 보호층은 잎이 지기 전 잎의 흔적을 만들어 세균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은 이치는 하도, 낙서, 용담에서도 알 수 있으니, 하도는 물의 작용을 위주로 하는 상생의 법을 일러 주고, 낙서는 불의 작용을 위주로 하는 상극의 법을 일러 준다. 水火의 광합성 작용이 극에 이르러 열매가 맺기 시작하는 가을의 용담이 되면, 상생과 상극이 합덕한 열매를 맺게 마련인데, 이는 곧 水火를 갈무리 하는 것과 같다. 이런 상태를 가리켜 열매라 하며, 열매는 새로운 생명인 씨앗을 품는다. 열매는 4,9金이라 하는데, 水火의 합작인 3,8木을 안에 품어야 하므로, 서방에서 동방으로 이동을 한다. 반대로 동방의 목은 서방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 水火가 하나 되는 것처럼, 金木도 서로 일체를 이루는 것이 진정한 개벽이다. 격암유록이나 정감록, 성경이나 불경, 천부경 등등 모든 비결과 경전의 이치는 이와 같은 개벽의 이치를 일러준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符는 竹(대 죽)과 付(줄 부, 청할 부, 붙일 부)를 합친 문자다. 竹은 속을 텅 비우면서도 일정한 마디를 이룬다. 대나무가 속을 비우는 까닭은, 그래야만 빨리 자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냥 속을 비우기만 한다면, 얼마 가지 않아 힘이 없어 휘어지거나 꺾어지게 마련이다. 대나무는 일정한 마디를 이루기 때문에 비록 속을 텅 비우면서도 단단한 힘이 있다. 불가에서 흔히 말하기를 마음을 비우라 하며, 종교인들도 ‘욕심을 버리라’고 하지만, 대나무처럼 일정한 마디인 절도(節度)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언어와 문자가 끊어진 불립문자(不立文字), 언어도단(言語道斷), 직지인심(直指人心), 교외별전(敎外別傳) 등은 절도를 세운 다음에라야 가능한 일이다. 절도를 세운다는 건, 度(법도 도)의 마디를 세운다는 말이다. 度는 庶(여러 서)와 又(또 우, 오른 손 우)를 합한 문자이니, 오른 쪽에서 여럿이 모인 상태를 의미한다. 모든 것의 근원은 도(度)이지만, 그것은 본래 무형의 씨를 가리킨다. 무형이기에 道는 무시무종이요, 무소부재하지만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건 度다. 동지기도야(冬之氣道也)하고 춘지기방야(春之氣放也)하며, 하지기탕야(夏之氣蕩也)하고, 추지기신야(秋之氣神也)라고 한 것이 예부터의 정설(定說)인데, 가을의 열매는 신(神)이 관장을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신이 활용하는 것은 道가 아닌 度다. 가을은 서방의 金이요, 서방은 오른 쪽이기에 又가 있고, 한 개의 씨앗은 여러 개의 열매를 맺기에 庶를 합하여 度라 하였다. 진정한 도인(道人)이나 신선(神仙)은 度에 밝은 법이요, 度는 수리(數理)로 표현하므로, 인존시대는 도수(度數)를 활용하게 마련이다.



가을 문명이 오면 어쩔 수 없이 영부문명으로 들어가게 마련이다. 화려한 여름의 옷을 아무리 벗지 않으려 해도 가을이 오면 벗어야 하는 것처럼, 도서문명이 아무리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남아 있으려 해도 결국은 영부로 갈아입는다. 이런 소식을 전해 주신 분은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水雲) 최제우 대신사이다. 수운께서는 서기 1,860년 음 4월 5일에 천상으로부터 ‘영부를 받아 포덕(布德)하라’는 명을 받으면서 21자 주문(呪文)도 동시에 받는다. 그러므로 동학의 실체는 영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지금의 천도교는 영부가 아닌 문자로 포덕을 하고 있으니, 그 본래의 취지가 무색(無色)하다.



그 이유를 삼역대경(三易大經)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으로 남겼다. <그러므로 낙서는 큰 우임금(大禹)이 받았으나, 문왕 무왕 주공에 이르러 비로소 판단하시고, 영부는 천일생수(天一生水)하시는 수운선사(水雲先師)가 받으셨으나, 지이생화(地二生火)하는 화운후사(火雲後師; 증산)에 이르러 비로소 그리시니 이는 어쩜이냐? 천운이 木에 있는 고로 포태지수(胞胎之數)를 다시 정하여 수운선사께서 갑목(甲木)으로 申을 세우사 갑신(甲申)년(서기 1824년)에 탄강(誕降)하시니 이는 음중에서 양이 생(生)하는 이치이니라. 삼역대경 서문 중에서>



수운께서 甲申생(서기 1,824년)으로 오신 것도 다 천명에 의한 것임을 밝히면서 화운후사에 의해 영부가 구체적인 모습으로 그려질 걸 일러주고 있는데, 화운후사는 개벽주로 오신 증산을 가리키고, 영부는 증산 친필 경전인 현무경에 도합 17개로 그려져 있다. 물론 화운후사를 증산이라고 하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건 다른 기회에 언급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영부에 관한 것만 언급하려고 한다.



한 마디로 영부를 통달하면 선천의 모든 도서에 능통하게 된다. 그러므로 도서부 셋을 가리켜 삼단(三端)이라고 삼역대경에서는 일러주고 있으니, 천지인 3극을 바로 잡아주는 해인(海印)이다. 端은 ‘바를 단, 곧을 단, 끝 단, 시초 단’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처음과 끝을 바르게 관통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耑(시초 단, 구멍 천)과 立을 합한 것이 端인데, 耑은 물건이 세워 진 모습인 山과 그것이 밑으로 벌어진 뿌리인 而(말 이을 이)가 합했으니, 물건이 생긴 시초를 가리킨다. 立은 六이 一을 발판으로 하여 서 있는 모습이라 하여 ‘설 립’이라 하였는데, 六은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이라는 기본적인 3극을 합한 6을 가리킨다. 즉 모든 물체는 6각수라는 물을 통해서 그 형체가 생기며, 피라밋도 6각형의 구조에서 막강한 파워가 생긴다.







3. 하도의 의의(意義)





(하도)



















① 하도의 음양과 5행



하도는 흑점과 백점으로 구성되었으니, 이는 곧 음양을 가리킨다. 우주만물이 방대하다 하지만 근본은 음양이다. 이런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실상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게 없다. 하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흑점 다섯 개(2,4,6,8,10)와 백점 다섯 개(1,3,5,7,9)가 있다. 이것은 음과 양은 각기 5행으로 이루어졌음을 말해 준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음 5, 양 5를 왜 굳이 5행(五行)이라는 표현을 하느냐이다. 대부분 예로부터 그렇게 불렀으니, 그렇게 부르는 게 당연한 것처럼 믿는다. 그러나 5원(五元, 五原)이라 할 수도 있고, 5물(五物), 혹은 5극(五極), 5형(五形)이라 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비슷한 듯하지만, 그 의미는 다르기 때문에 굳이 五行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五元은 만물 중에서 으뜸이 되는 다섯 가지를 가리키고, 五原은 만물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의 바탕을 가리키며, 五物은 다섯 가지의 물질을 가리키고, 五極은 무한한 다섯 가지라는 뜻이며, 五形은 다섯 가지의 모양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五行은 무슨 뜻일까? 行은 ‘다닐 행’이라 한데서 알 수 있듯이, 무언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상태를 가리킨다. 行의 왼 편은 彳(조금 걸을 척, 자축거릴 척)이요, 오른 편은 亍(자축거릴 촉)이다. 즉 왼 발과 오른 발을 번갈아가면서 움직여 걷는 모습을 그렸다. 왼 편의 양과 으른 편의 음이 서로 번갈아가면서 이합집산을 하는 것이 만물의 운행(運行)인데, 그것은 다섯 가지로 이루어졌음을 일러주는 용어가 바로 五行이다.



5행이 군대처럼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걸 가리켜 運(움직일 운)이라 하는데, 軍(군사 군)이 辶(갈 착)하는 상황이다. 그러기 때문에 5행과 5운은 다른 뜻이 되는데, 5행은 기본적인 음양(좌우, 상하, 전후)의 변화를 발생하는 요소임에 반해, 5운은 각 5행이 72일 씩의 운기를 주관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5운은 6기를 수반하기 때문에 ‘오운육기’라는 명칭이 생겼는데, 지금은 5행을 주로 언급하는 중이다.



5행이라고 하면 대개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라고만 달달 외울 뿐, 그 뿌리에 관한 깨달음은 생각조차 않는다. 5행을 제대로 알려면 먼저 5에 관한 의미를 선명하게 해야 한다.



첫째, 0+5



0은 無(혹은 空, 虛)의 상태를 가리키는데, 본래 그 바탕에 비록 무형이지만 5행이 들어 있었다. 흔히 기독교에서는 ‘아무 것도 없는 중에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셨다’고 하지만, 아무 것도 없으면 아무 것도 창조를 할 수가 없다. 무엇인가 있기 때문에 창조도 가능하다. 풍속통의(風俗通儀 - 한(漢)나라 때 응소(應劭)가 찬한 글)에는 ‘여화(女禍)가 오색 흙을 반죽하여 인간을 짓다’고 하였다. 구약의 ‘여호와’와 복희와 남매인 여화의 발음이 같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며, 더욱이 여호와나 여화나 다 같이 흙으로 인간을 지었다는 것도 단순한 우연일까? 아무튼 여호와는 ‘흙’으로 인간을 지었다고 하였으나, 여화는 ‘오색 흙’으로 인간을 지었다고 하였으니, 이치로 본다면 당연히 여화가 더 진보한 셈이니, 창조의 출발은 5행임을 선명하게 해준다.







둘째, 1+4

북방의 흰점 한 개(◯)와 서방의 흑점 네 개(●●●●)의 합을 가리키는 것으로, 흰 점 한 개는 生水(水의 시작)를 가리키고, 흑점 네 개는 生金(金의 시작)을 가리킨다. 즉 1+4는 金水의 시작을 의미한다. 金은 만물을 단단하게 열매를 맺는 가을의 상징이며, 水는 가을에 추수한 것을 상하지 않게 저장하는 상징이다. 그러기에 가을과 겨울을 가리켜 수렴(收斂)이라 한다. 수렴은 주로 내면에서 벌어지는 정적인 음을 가리키고 있으니, 1+4=5는 5행중에서도 음적인 변화를 가리킨다. 1은 음중의 양이며, 4는 음중의 음이 된다. 음중지양(陰中之陽) 1은 한 겨울에 발생하는 동지의 양(陽)과 같고, 음중지음(陰中之陰) 4는 가을에 발생하는 추분의 음(陰)과 같다.



또한, 1+4를 도형으로 그리면 十字로 된다. 십자의 중심은 1이요, 표면은 4다. 즉 내면에 있는 무형의 중심과 표면의 4상을 합한 것이 5행이다.







셋째, 2+3

모든 형상은 분열을 하게 마련인데, 그것은 반드시 중심이 있기에 가능하다. 2는 하나에서 갈라지는 분열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 중심의 1까지 합하면 3이다. 앞의 1+4도 4방(4상)과 그 중심을 합한 셈인데, 같은 중심이라 해도 4의 중심과 2의 중심은 그 의미가 다르다. 4는 가을의 음기를 가리킨데 반해, 2는 여름의 음기를 가리킨다. 가을의 음기는 뜨거운 한 여름의 열기를 상징하는 7火의 중심에 자리 잡은 4(7의 중심수는 4)인데 반해, 여름의 음기는 한 여름의 양기가 다하면서 시작하는 음의 상징이니 2가 된다. 양의 시작은 한 겨울의 1이요, 음의 시작은 한 여름의 2다. 2와 4는 다 같이 음수이지만, 음의 시작은 2요, 그보다 더 발전한 것이 4다. 즉 한 여름의 음기보다 한 가을의 음기가 더 수렴하는 작용력이 강하다. 사실, 가을에 열매를 맺는 까닭은, 이와 같은 강력한 4의 음기에 의한다. 즉 극렬한 7火의 중심을 휘어잡는 게 4金이다. 만약 4금의 기운이 없다면 7火의 화기(火氣)는 산일(散逸)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튼실한 열매는 맺을 수 없다. 이와 같은 4金의 기운은 4방에 있는 기운을 단단하게 수렴하여 중심으로 모이게 하니, 그것이 바로 4+1이다. 이걸 상생의 이치로 표현한다면 金(4)生水(1)가 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3+2=5는 木(3)生火(2)가 된다. 계절로 말한다면 봄과 여름의 합이다. 가을과 겨울은 정적인 음이라면, 봄과 여름은 동적인 양이다. 음은 수렴을 위주로 하기에 4금이 1수를 金生水 하지만, 양은 발산과 분열을 위주로 하기에 3木이 2火를 木生火한다. 즉 수렴하는 것도 5행이요, 발산하는 것도 5행이라는 걸, 4+1과 3+2가 보여준다. 봄과 여름은 양의 계절이요, 가을과 겨울은 음의 계절이다. 따라서 3은 양중의 양이요, 2는 양중의 음이 된다. 양중지양(陽中之陽) 3木은 봄의 양기를 가리키고, 양중지음(陽中之陰) 2火는 여름의 음기를 가리킨다. 물론 봄의 음기는 8木이요, 여름의 양기는 7火라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2는 1이 둘로 갈라지는 분열을 상징한다. 그러기 때문에 1은 내면에 있지만 2는 표면에 나타난다. 표면으로 갈라지기 이전의 중심을 가리켜 1이라 하지만, 표면에서 2로 갈라진 중심은 3이라 한다. 따라서 3+2=5는 표면으로 벌어진 음양과 그 중심까지 합한 셈이다. 1이 형상으로 나타나면 반드시 상대적인 짝으로 맺어져야 하는데 그걸 2라 하고, 1이 그 중심까지 다 벌어지면 3이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2+3=5는 형상이 변화하는 양태(樣態)를 내포한다는 걸 알게 된다. 앞의 4+1=5와 3+2=5는 다 같이 사물의 형상과 변화라는 양면을 내포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4+1=5는 주로 만물이 수렴하는 정적인 면을 맡은 5행을 의미한다면, 3+2=5는 주로 만물이 발산하는 이적인 면을 맡은 5행을 의미한다. 이처럼 5행에는 만물의 기본적인 형상과 변화라는 양면을 두루두루 내포한다. 보다 상세한 5행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는 장(場)을 달리하여 살피도록 하겠다.





② 흑점과 백점의 형태는 왜 둥글게 했을까?



하도의 흑점●과 백점◯은 그 모양이 둥글다. 굳이 둥근 모양으로 그리지 않으면 안 될까? 네모진 모습이나 다른 형태로 그리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을까? 하도는 최초의 상서(祥瑞)다. 그러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나타낸 게 아니다. 굳이 원의 형태로 그리게 된 까닭은, 그것이 영원함과 불변하는 절대적인 이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원의 모습은 막힘이 없이 굴러가는 ‘영원함, 무궁함’을 의미한다. 또한 절대적인 이치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은, 원의 형태야말로 오직 유일한 지름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서 네모진 방(方 □)은 모든 걸 담아 두는 방(房)을 가리킨다. 원이 절대적인 상징이라면, 방은 상대적인 상징이다. 하도, 낙서, 용담의 3대 상서는 절대적인 우주변화의 원리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반드시 ◯과 ●이라는 원의 형태로 나타내야 한다.





③ 흑과 백의 의미



3대 상서는 둥근 모양의 흑점과 백점으로 이뤄졌다. 보통 흑점은 음이라 하고, 백점은 양이라 하는데, 그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대개의 경우, 흑점은 어두우니 음이고, 백점은 밝기 때문에 양이라 한다. 물론 그것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흑색은 색의 집합이요, 백색은 빛의 집합이기 때문에 각기 음양이라고 한다는 게 나을 듯하다. 색(色)은 탁하며 부동(不動)한 것인데 반해, 빛은 맑고 유동(流動)적인 것이기에 각기 음과 양으로 본다.





④ 하도와 오칠일묘연(五七一妙衍)



하도는 보통 상생의 법칙만 들어 있는 줄로 알고 있다. 상생이라고 하는 까닭은, 1,6수 - 3,8목 - 2,7화 - 5,10토 - 4,9금 - 1,6수로 이어지는 순환의 고리가 하도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2,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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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8목 5,10토 → 4, 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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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수

(5행으로 본 하도)





이것은 5행상으로 본 것이니, <水生木生火生土生金生水>로 이어진다. 그러나 숫자로만 본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홀수는 1-3-5-7-9로 흐르고, 짝수는 2-4-6-8-10으로 흐른다.





2,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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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8목 → 5,10토 → 4, 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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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수

(數列로 본 하도)





오행의 배열로만 본다면 <2,7화 → 5,10토 → 4,9금>의 순서가 맞지만, 숫자의 배열로만 본다면 <5,10토 → 7,2화 → 9,4금>의 순서가 된다. 이처럼 <화-토-금>과 <토-화-금>이라는 서로 다른 배열은 무얼 의미할까? <화-토-금>은 상생의 관계를 가리키는데 반해, <토-화-금>은 상극의 관계가 된다. 자세한 것은 낙서와 상극을 거론한 적에 나오겠지만, 이와 같은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바로 ‘상극의 법칙’이다. 물론 하도에는 그런 도형이 없지만, 이미 그 내면에는 장차 상극으로 돌아갈 개연성(蓋然性)이 충분하다.



<1-3-7-5-9>와 <1-3-5-7-9>에서 알 수 있듯, 7→5가 되느냐 아니면 5→7로 되느냐에 따라 생극(生剋)이 결정된다. 이것은 천부경의 <五七一妙衍>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즉 7이 남방에 있느냐, 아니면 서방에 있느냐에 따라 상생과 상극이 결정된다. 자세한 것은 차츰 차츰 언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