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비우는 원리와 요령

영부, 精山 2006. 9. 18. 05:51

 비우는 원리와 요령

 

사람들은 말한다. ‘마음을 비우고 모든 걸 놓아야 한다’고. 특히 불가에서는 누천 년 간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다. 마음을 비우라고? 도대체 마음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생겼으며, 누가 조종하는 것이고, 언제, 무엇 때문에, 왜 일어나는 것인지 알아야 비우던지, 말던지 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말하는 스님들도 시정배들 못지않게 피 터지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말들은 이미 그들이 먹고살기 위한 방편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어떻게 하는 것이 마음을 비우는 요령일까? 어제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벽을 맞이하는 지금, 나는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마음을 비워야 할 텐데. 하지만 나는 그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고 한다. 앞에서 살핀 것처럼 그들이 말하는 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었고,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대중화, 보편화되지 않는 것이 분명할진대, 그것은 이미 특권층만의 점유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워야 하는 건 사실이다. 다만 어떻게 비우냐 하는 원리와 요령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아닌 가에 따라 천태만상으로 그 결과가 다르다. 어느 누가 있어 그런 걸 일러줄까? 그럴 때일수록 올바른 스승을 만나야 한다. 스승을 잘 만나는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다.

 나는 감히 말한다. 정녕 위대한 스승은 자연이라고. 동학을 창시한 수운선생은 ‘자재연원(自在淵源)’을 주창하였다. 연원은 도의 근원을 가리킨다. 선천에는 도를 스승으로부터 전수 받고, 또 전하는 사사상수(事師相授)를 하였지만, 후천에는 자재연원으로 간다. 그건 곧 사람이 자연의 모든 비밀을 스스로 알 수 있기에 가능하다. 비움의 원리와 요령을 알기 원한다면 자연을 보라. 바람은 어떻게 불고, 물은 어떻게 흐르는가? 바람과 물이 흐르는 것은 생명의 요소인 기의 흐름이다. 기의 흐름을 알고 싶은가? 그러면 바람과 물을 가만히 살펴보라. 

 물은 위에서 밑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다. 나무 꼭대기에도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 밑에서 위로도 흐른다. 그러나 이런 것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 물이 흐르는 원리는 그렇지 않다. 위로 흐른다, 밑으로 흐른다 하는 것은 물의 겉만 보고 하는 말일 뿐, 실상은 비워진 곳을 채우기 위해 옮기는 것이 흐름으로 보일 따름이다.

 바람은 어떻게 부는가? 혹자는 말하기를 바람은 위로 분다고 하는가 하면, 혹자는 말하기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분다고도 한다. 낮에는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불고, 밤에는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분다고도 한다. 이 역시 바람의 겉만 보고 하는 말일 뿐, 진실은 다른 데에 있다. 바람이 열을 받아 위로 양기가 강해지면 위로 올라가고,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찬 바람이 들어온다. 따라서 바람은 밑에서 위로 올라가게 마련이요, 낮과 밤에 바람의 방향이 달라진다. 이런 현상은 공기가 데워지면 텅 비게 되고,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이동하는 물리적인 현상인데, 이를 가리켜 바람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비우는 원리와 요령도 알 수 있지 아니한가? 비움의 원리는 깨끗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비우지 않으면 더러워진다. 물이 고이면 썩게 마련이요, 바람이 멈추면 생명체는 살 수 없다.

 그렇다면 비움의 요령은? 물이 저절로 비워지는 것은 어딘가 사용처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것이 나무이건, 흙이건 물이 들어가야 생명을 유지한다. 인위적인 방법이 아닌 자연적인 방법으로 물이 사라지는 현상은 ‘증발(蒸發)’이다. 증발은 곧 양기(陽氣)의 발현(發現)을 의미한다. 나무 꼭대기로 물이 삼투(滲透)하는 현상도 사실 알고 보면 나뭇잎이 생명의 양기를 발현하여 수분을 증발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만약 나무 꼭대기의 나뭇잎이 차가운 음기만 간직하고 있다면 나무는 수분을 증발할 수 없어 물이 흐르지 못할 건 뻔한 이치다.

 바람이 부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공기가 더워지면 위로 오르고 빈곳을 메우기 위해 차가운 공기가 이동하는 현상을 바람이라고 한다면, 그 역시 양기의 발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비우는 요령은 당연히 ‘증발’이며, ‘양기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은 비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물과 바람은 채우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덮어놓고 비우기만 하면 이내 생명을 잃는다. 사람에게도 비움과 채움! 이 두가지가 동시에 진행하는데, 이것을 가리켜‘사랑’과 ‘진리(지성)’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랑은 허다한 죄나 허물을 따스하게 덮어주는 것처럼, 양기는 냉기를 텅 비워 증발시킨다. 이를 가리켜 ‘정화작용’이라고 한다. 비워진 자리에는 다시 차가운 수분이나 공기가 채워지는 것처럼, 증발되어 텅 빈 자리에는 반드시 맑은 수분이 다시 채워진다. 비록 그것은 차갑지만 생명을 더 한층 성숙한 상태로 진화시킨다. 냉수 먹고 속 차려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냉철한 지성은 더 알찬 영혼의 진화를 가져다준다. 사랑만 있고, 지성이 부족하다면 뿌리 없는 나무와 같고, 지성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죽은 나무를 지탱하는 뿌리와 같다.

 비웠으면 채워라. 오늘날 영적인 능력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덮어 놓고 인간의 지식과 정보를 '잡념'이나, '망상'으로 규정하여 매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사람을 영의 노예, 신의 노예로 전락하게 하여 '무지한 상태'로 만드는 어리석은 짓이다. 그것은 비우기만 하고 채울 줄을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암튼 인생은 사랑과 지성이 합하여 영혼과 생명은 발전하고 진화한다.

 이런 원리와 요령을 가족 간에 적용하고, 직장과 사회에서 활용한다면 진정 행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다면 지나다님이 제시한 세 가지의 요령으로 매일 영성일기를 써 보라. 무엇을 비웠으며, 무엇을 채웠는지 꼼꼼히 기록으로 남겨 보라. 감히 단언하건대, 그러면 육적인 질병은 물론, 영적인 질병까지도 신기하게도 잘 치유된다는 걸 체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