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
정도가 듣기에도 남산의 대답은 간명하면서도 시원하였다.
“이것도 전에 언급을 한 게 아닌가요?”
“맞아요. 전에 들은 게 마침 기억이 났습니다.”
남산이 긴 머리를 뒤로 쓰다듬으며 말을 하였다.
“답을 하는 걸 보니까 제대로 이해를 한 듯 보이는군요.
하늘이 텅 빈 허공이기에 상생이라고 하는 건, 형상을 기준으로 본 것이고, 만약 그걸 춘하추동의 변화를 기준으로 본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이번에는 25번이 답을 해보세요.”
25번은 옥산이었다.
그녀는 답이 궁한지 고개를 갸웃한 채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그럼 힌트를 하나 줄까요?
봄과 여름을 놓고 볼 적에 어느 것이 상생이고, 어느 것이 상극이라고 할 수 있나요?”
“당연히 봄이 상생이고, 여름이 상극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봄에는 만물이 쑥쑥 자라야 하기 때문에 서로 극을 하면 안 되지만, 여름은 뜨거운 태양 볕에 시련을 많이 받기 때문에 상극입니다.”
“오!”
이번에도 일행들은 감탄사를 쏟아냈다.
“그렇게 자연과 연결하면서 이치를 생각하는 습관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현무경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자연에서 벗어나서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그러니까 봄을 하늘이라 하고, 여름을 땅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럼 가을은 당연히 인간이라고 해야겠지요.
12지지를 나눌 적에도 봄은 인묘진, 여름은 사오미, 가을은 신유술, 겨울은 해자축이라고 하는데, 인묘진은 天, 사오미는 地, 신유술은 人, 해자축은 神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신부는 바로 人의 시절인 인존시대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자연에는 목화토금수의 오행이 있어서, 서로 상생도 하고, 상극도 하면서 열매를 맺게 마련입니다.
상생도 그렇고 상극도 그렇고 모두가 다 열매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서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걸 그대로 본받은 게 바로 인체인데, 인체의 오장(五臟)은 얼굴에 있는 오관(五官)과 서로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상생과 상극의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리고 손과 발가락의 오지(五指)를 통해서 마침내 성사(成事)시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이치를 잘 알 적에 비로소 자신을 찾았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발가락의 오지는 오장과 밀접하고, 손가락의 오지는 얼굴의 오관과 더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보면 될 겁니다.
여러분이 만일 육신이 피로할 때에는 발가락을 잘 만지는 게 좋고, 정신적인 피로가 있다면 손가락을 만져주는 것이 좋다는 논리도 성립합니다.
실제로 나는 이 방법으로 많은 임상실험을 해봤는데, 비교적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고 있습니다.”
정도는 천부동에 병원이 없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병원이 없는 곳이라면 으레 오지(奧地)나 미개인들이 사는 곳으로만 알고 있던 그에게 무의촌(無醫村)이 있다는 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만큼 그 곳 사람들은 자신의 병을 스스로 지키는 능력이 있었는데, 운곡선생의 독특한 치유법은 비교적 누구나 할 수 있으면서도 신속하고도 정확한 효과가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