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교실을 준비하면서
요즘 연말이 되다 보니 송년회를 자주 갖는다.
평소에는 잘 모르던 사람들도 송년회의 분위기는 금방 친해지게 만든다.
모임이 끝나면 당연히 노래방으로 가게 마련이고, 노래하고 춤을 추다 보면 어느 새 저절로 친숙해진다. 그런 면에서 노래방 문화도 긍정적인 면이 많다.
그런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진리나 도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인지라 나는 별로 대화를 하지 않는 편이다.
그저 따라주는 술이나 넙죽 넙죽 받아먹으면서 남이 하는 말이나 옆에서 주워 듣는 편이다.
그러나 가끔 도에 심취했거나, 관심이 있는 분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연말에도 그런 분을 만났다.
그는 명상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아바타라는 게 있는데, 미국에서 가서 수련도 받았다고 한다.
몇 잔의 술이 오고 가자, 그는 나에게 말을 하였다.
“사실 우리는 필요 없는 상식이나 지식이 너무 많거든요. 쓸 데 없이 많이 먹으면 뱃속에 변비가 생기는 것처럼, 사람들도 쓸 데 없는 지식들이 많이 쌓이면 정신적인 변비에 시달린다는 걸 모르고 있더군요. 알고 보면 다 뜬구름 같이 쓸 데 없는 것들인데, 골치 아프게 무얼 자꾸 공부하고 알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짐짓 내가 천부동에 매일 글을 올리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그냥 빙그레 웃고 말았다.
그가 하는 말에는 상당히 일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술이 지나쳤는지, 아예 노골적으로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도가 아니라는 식으로 매도하기 시작했다.
학식이 높은 고승일수록 말도 없고, 글도 안 쓴다고도 하였다.
그런 건 다 버려야 할 것들인데, 쓰레기만 잔뜩 싣고 있는 셈이라고 하였다.
나는 아무 대꾸도 없이 그냥 술만 마셨다.
좌석이 파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내 가슴에서는 이런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예전 물질문명에서는 열매가 없었으니 아무리 좋은 소리를 하여도 헛소리에 불과하였다.
그러니 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말과 글을 남기지 않으려고 할 게 뻔하였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예수나 석가 등이 언제 글을 남겼던가? 오직 자연의 법칙만 알려주었을 뿐, 그들은 단 한 줄의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지금이 추수기라면 과연 그때처럼 그래야 할까?
아니다.
농부는 자신이 가꾼 능금이 탐스럽게 열리면 그 누구보다 좋아한다.
그리고 그걸 같이 여러 사람과 나누어 먹으려고 한다.
자신이 지었다고 해서 자신만 먹는다면 어찌 농사꾼이라고 하겠는가?
능금이 열리지 않을 적에 능금에 대해서 말을 한다는 건, 그리 큰 효과를 보기 힘들다.
백번, 천번 말로 하는 것보다 한 조각이라도 능금을 맛보게 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굳이 말로 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능금이 열렸다면 사정은 달라져야 한다.
왜 사람들은 글이나 말이 많으면 무조건 잡식(雜識)이라고 할까?
좋은 열매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며, 더욱이 그걸 함께 여러 사람과 나누어 먹는 건 더 좋은 일이 아닌가?
선천에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요,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하였으나, 그것은 모두 참 열매가 없었기에 하는 소리일 뿐, 열매가 열리면 얼마든지 도는 언어나 문자로 전할 수 있는 법이 아닌가?
그것이 바로 개벽주께서 현무경과 영부를 전해 주신 이유이거늘. 그런 것이 필요 없다면 굳이 천지를 개벽한 분이 무엇 하러 굳이 기록으로 남겼을까?“
한자교실을 준비하면서 내가 얻은 게 있다.
그것은 용담도를 알면 알수록 한자는 물론, 우주와 인생에 관한 모든 것, 과학과 정치, 경제, 예술 등 모든 부문에 걸쳐서 온전한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을!
언어나 문자, 지식 등이 결코 깨달음을 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깨달은 자에게는 어떤 것도 다 대자유라는 것을!
실력이 없는 자가 괜히 삽이나 호미 탓을 하는 법이다.
글씨를 못 쓰는 사람이 괜히 붓을 탓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