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
그것이 좋은 면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진리와는 상관이 없이 출세와 사회적인 지위나 보장을 좇기 위한 방편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즉 이 세상을 이토록 영악하게 만든 것은 바로 여성들이었다.
따라서 여성들이 바로 깨지 못하면 이 세상은 선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여성들을 가리켜 하늘은 간음자, 혹은 우상숭배자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늘이 바라는 여자는 이런 데서 벗어난 처녀이어야 할 건 당연한 노릇이다.
그 대상이 마리아였지만, 아직 하늘이 인정하는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아들다운 아들이 세상에 출현해야 한다.
생각해 보라!
아들이 없는데 어찌 어머니가 있을 수 있는가!
예수가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어도 아버지께로 가지 못하면 아들이 아니다.
아들이 아닌 터에 어찌 어머니가 존재한단 말인가?
이처럼 예수가 아버지께로 가기 전에는 아들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성령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가 어머니를 여자라고 하며, 마리아가 예수를 아들이라고 부르지 못한 이유다.
예수가 십자가 상에서 마지막 말씀을 인용해 보자.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 요한복음 19장 25절 ~ 27절”
예수는 마지막 십자가를 지는 순간에도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하지 않았으며, 사랑하는 제자에게 ‘네 어머니’로 마리아를 모시도록 하였다.
또한 마리아에게 사랑하는 제자가 ‘아들’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가 죽으면서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에게 잘 모시라는 부탁을 한 것으로 믿는다.
그거야말로 예수를 영적이 아니라 육적인 인간으로 생각한다는 단적인 사례다.
예수는 마리아를 육적인 가족관계로 보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그는 구세주의 자격이 없다.
인간을 구원하는 방편은 육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영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마리아를 모시는 것도 영적인 차원에서 생각할 일이지, 육적인 가족관계에서 한 말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예수의 능력이라면 굳이 제자에게 마리아의 안위를 부탁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굳이 제자와 마리아에게 母子(모자)의 관계를 맺어주지 않으면 안 됐던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육신을 죽이고, 영으로 부활하며, 아버지께로 가서 성령을 보내주기 때문이었다.
성령으로 맺어지지 않은 관계는 참다운 모자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령 안에서 태어나고 성령 안에서 함께 생활하면 저절로 부자지간, 모자지간이 된다.
예수가 아버지께로 가지 않은 상태에서 어찌 어머니가 있고, 아들이 있단 말인가?
예수의 제자도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는 참다운 제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곧 제자들도 참다운 어머니가 없었다는 얘기다.
물론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각자의 육신의 어머니가 있겠지만, 하늘이 바라는 모자지간은 그런 게 아니었다.
예수가 성령을 보내줄 적에 비로소 영적인 모자지간이 형성된다.
그때에야 비로소 ‘어머니’도 있고, ‘아들’도 있으며, '제자‘도 존재한다.
비록 육신은 다를 지라도 제자들에게 성령이 들어가면 그 몸은 곧 예수의 몸이기에, 제자에게 마리아는 어머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