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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부 - 1

영부, 精山 2009. 1. 13. 07:46

자부(子符)

 

 

날씨는 제법 추웠다. 산 속은 도회지보다 추위가 더 빨리 찾아오고 강도도 센 듯 했다.

 

하얗게 내린 눈이 나무 그늘에 가려 아직 녹지 않은 모습이 너무 깨끗했다.

 

정도는 연말카드에서 보았던 설경을 직접 육안으로 보고 있다는 게 꿈만 같았다.

 

새벽의 설경은 순결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거대한 우주의 동정을 혼자서 느낀다는 게 너무 호사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오늘 부터는 자부로 들어갑니다.

강좌로 들어가기 전에 다 같이 현무경 법문을 힘차게 한 번 주송합시다.”

 

매일 하는 주송이었지만 정도는 신기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같은 음식을 매일 먹으면 물리는 것처럼, 현무경 주송도 매일 똑같은 걸 암송한다는 게 물릴 법도 한데, 오히려 더 진한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그 속에는 무슨 마력이라도 들어있는 듯 했다.

 

“주송을 할 적에는 리듬을 타야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전에 천자문을 외울 적에 ‘하늘 천, 따지, 가물 현, 누루 황 … 하면서 리듬을 탔습니다. 혹시 그걸 본 적이 있나요?”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거의 젊은이들이 모였는데, 젊은이들은 사실 그런 광경을 볼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옛 사람들은 공부를 할 적에 합동으로 암송하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사실은 그런 학습방법은 매우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지금은 컴퓨터나 오디오나 비디오 등이 발달되어 시청각 교육을 하고 있는데, 사실 그런 방법은 개인적인 성향으로 흐르게 마련입니다.

좀 고리타분한 듯 하지만, 합동으로 주송을 하거나, 암송을 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체감을 느낍니다.

방금 전에 법문을 같이 외워보니까 리듬이 안 맞는다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하지만 자꾸 반복하다 보면 어느 새 묘하게도 리듬이 잘 맞아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서로 맞추려고 하다보면 일체감을 맛보게 되고, 단합심을 배가 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송이나 암송의 매력은 몸의 기를 왕성하게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주송을 할 적에 아랫배를 부풀리면서 하도록 은연(隱然)중에 습관이 들어야 합니다.”

 

운곡선생은 직접 자리에 앉아 시범을 보였다.

 

“익자도 삼우요 손자도 삼우요 … 하면서 한 음절을 발음할 때마다 숨을 내쉬게 마련이지요?

그때 일부러 아랫배를 크게 부풀리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습니다.

자, 따라서 한 번 해볼까요? 익자도 삼우요”

 

일행은 운곡선생을 따라 아랫배를 크게 부풀려보았다.

어떤 이는 잘 되고, 어떤 이는 전혀 아랫배의 근육이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운곡선생의 아랫배는 마치 풍선을 부는 것처럼 신축(伸縮)하고 있었다.

그 모양이 우스웠던지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 왜 웃나요?

아마 내 배가 요동치는 게 우스운 모양인데, 요동을 잘 칠수록 장운동도 활발하게 되고, 기도 충실해지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30분만 해보세요.

한 10분 만해도 몸이 더워지는 걸 느낄 겁니다.”

 

그날 아침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주송했다.

정도는 전에 단전호흡을 몇 년간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운곡선생이 지도하는 방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정말로 몇 분 지나지 않아 온 몸에 열기가 솟아나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