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 - 12
방은 2방, 3방이라고 해서는 곤란하며, 반드시 4방 혹은 8방이라고 하는 게 옳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4방은 고정된 걸 가리킵니다.
방이라고 하는 건 바로 固定을 의미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고정적으로 휴식하는 공간을 가리켜 房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이에 비해서 원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유동적입니다.
네 개에만 국한 되지 않고 원의 지름은 어느 곳이건 다 통하게 마련이므로 대자유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둥근 원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유를 느끼는 것은 이와 같은 이치 때문입니다.
사각형을 보면 자유를 느끼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안정된 느낌을 갖게 마련이지요?
원이 비록 자유를 상징한다고 하지만, 어느 한 곳에 매이질 못하다보니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그것은 지름이 내면의 중심에서 작용을 하는 것이 원이요, 밖에서 작용을 하는 것이 방이기 때문입니다. 내면에 있는 것은 잘 안 보이기 때문에 항상 불안합니다.
밖에 나타난 것은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으므로 안심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속을 안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원은 내면의 중심에서 우러나오고, 방은 외면의 4방에서 일정한 모습(지름)을 나타내는 것이 대자연의 속성입니다.
이런 걸 본 뜬 것이 사람의 마음은 내면에서 움직이고, 육신은 겉에서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마음은 아무런 시공의 제한이 없지만, 육신은 반드시 4방과 4시의 제한을 받도록 되어 있다는 것은 이와 같은 이치 때문입니다.”
정도는 운곡선생이 대하면 대할수록 신비한 인물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원과 방을 이처럼 인간과 대비를 시킬 수 있다는 발상을 한 것부터가 신기하였다.
“이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원의 지름은 반드시 방의 대각선(e와 f, g와 h를 연결한 선)과 일치하는데, 그것은 곧 방의 대각선이 모여서 하나의 원을 이루게 된다는 걸 말해줍니다.
‘원은 무수한 점의 집합’이라고 하는 것보다, ‘방의 대각선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요?
이것은 ‘마음은 무수한 생각이나 의식, 잠재의식, 무의식의 바다’라고 하는 것보다 ‘육신의 四大의 작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라고 하는 게 올바른 정의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 되겠죠.”
정도는 전에 주비산경이라는 고전에서 주문왕과 상고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는데, 정도가 메모한 내용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주공이 상고에게 물었다. ‘나는 상고가 계산술에 숙달해 있다고 들었는데, 옛 성인 복희가 어떻게 광대한 하늘을 잴 수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도 없고, 자로 재기에는 엄청나게 큰데 어떻게 그랬는지요?’
상고가 대답했다. ‘계산하는 방법은 원과 방에서 비롯됩니다. 원은 방에서 얻어지고, 방은 곡자(曲子)에서 얻어집니다. 곡자는 구구팔십일의 계산술에서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