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부 - 9
몇 사람이 입을 모아 답을 하였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건 8괘를 오행으로 보는 근거인데, 건괘와 태괘를 金이라 하고, 곤괘와 간괘를 土라 하며, 이괘를 火라 하고, 감괘를 水라 하며, 진괘와 손괘를 木이라고 한다는 사실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되겠군요.”
“네. 맞습니다. 사실 8괘를 외우긴 하지만 그 이치에 대해서는 갑갑합니다.
”일행들은 마치 억울하다는 듯 한 표정이었다.
“건괘를 금이라고 한 건, 하늘처럼 단단한 게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단단하다뇨? 하늘은 형체가 없는데 어떻게 단단하다는 말을 할 수 있나요?”
“그렇죠. 형체가 없으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네?”
“형체가 있는 것은 제 아무리 단단하다고 하여도 언젠가는 사라지게 돼 있지 않나요?
그러나 형체가 없는 것은 애초부터 형체가 없으니 사라질 것도 없지요.
그러니까 8괘를 물질적인 면으로만 생각하면 곤란하다는 말이지요.
곤괘를 가리켜 오행으로 土라고 한 것도 같은 이치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土는 흙인데 그걸 물질적인 흙으로만 본다면 좀 문제가 발생하지요.
왜냐하면 흙도 물론 부드러운 건 사실이지만, 부드러운 것으로만 따진다면 물처럼 부드러운 게 또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물은 감괘라고 하여 水라고 합니다.
오행에서 부드러움의 상징은 土인데, 그 이유는 흙은 모든 걸 다 받아들입니다.
물이 비록 부드럽다고는 하지만 더럽고 깨끗한 걸 가리지 않고 모든 걸 다 씻어버리는데 비해, 흙은 모든 걸 다 품어줍니다.
그것을 가리켜 土라고 한 겁니다.
모든 걸 다 품어서 새로운 생명이 나오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곤의 사명이며, 토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숫자 중에서도 5와 10을 가리켜 토라고 한 겁니다.
5가 들어가서 생수를 성수로 변화시키는 일을 하지요?
즉 새로운 생명의 형상과 질을 탄생시킨다는 말이지요.
곤괘의 형상은 곤삼절(坤三絶)이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가운데가 텅 비어 모든 걸 다 받아들이는 순수한 음의 기운으로만 구성돼 있습니다.
음의 기운은 모든 걸 감싸주고 받아주는 특징이 있지요.
그러니 땅은 모든 생물을 다 품어주는 어머니와 같다고 한 것이겠지요.
이에 비해서 감중련(坎中連)은 생명을 상징하는 1양을 상하의 껍질(음)로 감싸주고 있습니다.
물도 역시 나무에 물을 대주는 것으로 생명을 존속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물은 흙처럼 모든 생명체를 다 품어주는 게 아니라, 이리저리 흘러 다니면서 모든 형상을 공평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호수나 바닷물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을 겁니다.
그것은 물은 결코 높고, 낮은 게 없이 모든 걸 공평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곤괘가 어머니의 덕성으로 모든 생물체를 품어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곤괘는 음의 기운으로만 구성되었으니 한 쪽으로 치우친 음극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감괘와 리괘는 그 형상이 1양과 1음을 각기 속에 품고 있는 중도의 상징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감괘는 형상 있는 것들의 중도요, 리괘는 무형의 중도라는 뜻입니다.
형상이 있는 것들은 모두 감괘로부터 비롯하고, 무형인 것들, 즉 정신이나 영혼 등은 모두 리괘로부터 비롯한다는 뜻입니다.
그걸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낙서의 시작은 1감수요, 마지막은 9리화라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낙서는 물질의 시작과 마지막을 기준으로 한 변화의 원리를 가리킨다는 걸 유념해야 하겠지요. 감괘의 형상은 坎中連이라고 하여 중심에 양효가 들어갔는데, 그건 본래 사상 중의 소양(少陽 )을 바탕으로 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