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으면 변통(變通)해라
모든 일을 알기만 하고 변통을 못하면 모르는 것만 같지 못하나니 될일을 못되게 하고, 못될 일을 되게 하여야 하느니라 손빈(손빈)의 재조는 방연(龐涓)으로 하여금 모지마릉(暮至馬陵)하게 함에 있고 제갈량의 재조는 조조로 하여금 화용도(華容島)에서 만나게 함에 있었느니라
사람에게는 세 종류가 있으니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고, 많이 아는 사람이 있으며, 아는 만큼 행위로 나타내는 사람이 있다.
숫제 아무 것도 모른다면 기대할 것도 없으나, 아는 체를 하면서 말만 무성하고 언행은 일치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모르는 것만 못하다.
오늘날 선천 종교인들은 입을 열면 예수나 부처를 말하지만, 실상은 예수나 부처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만 하였지, 자신의 몸이나 가정도 제대로 못 다스리면서 어깨에 힘을 주는 사람이 그 얼마던가?
모든 일에 변통을 잘 해야 한다는 걸, 이상한 방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예를 들면 성령을 보아야 한다느니, 조상 신명들의 도움을 받는 계시를 받아야 한다느니, 호풍환우를 해야 한다느니, 병을 고치고, 사업을 잘 되게 하는 기적을 연출해야 한다고 하면서 아무리 이치를 많이 알아봤자, 말 장난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그런 부류다.
그러나 윗 글에서 개벽주가 말씀하신 모지마릉이나 화용도의 사건은 그런 걸 가리킨 게 아니다.
그것은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적당히 활용하라는 말씀이다.
모지마릉은 '저물 때에 마릉에 닿게 한다'는 풀이가 나오는데, 춘추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다.
위나라 장수 방연이 한나라를 치려고 군대를 몰아갔다.
이에 위협을 느낀 한나라는 동맹국인 제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였다.
제나라에서는 손빈으로 하여금 한나라를 도와주게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방연은 황급히 본국으로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손빈은 방연의 군대가 해가 진 저녁 때에 마릉에 도달하게 한 후에 섬멸할 계획을 세웠다.
손빈은 첫 날에 10만 명의 밥을 짓헤 하고, 다음 날에는 5만의 밥을 짓게 하며, 3일 날에는 2만의 밥을 짓게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방연은 자신이 거느린 군대에 겁을 먹은 손빈의 군사들이 이탈한 것으로 착각을 하여 일거에 손빈을 쳐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그리하여 급하게 군대를 몰기 시작했다.
손빈은 그들이 해 저물 때에 마릉에 도착하도록 일부러 꾀를 냈던 것이다.
마릉에 도착한 방연의 군사들이 밤중인데도 허옇게 속을 드러내고 길 옆에 방치된 나무들을 보았는데, 거기에는 '방연이 이 나무 아래에서 죽으리라'고 써 있었다.
손빈의 신호에 맟춰 일제히 궁수들이 활을 쏘니 방연의 군대는 초토회되고, 방연은 스스로 자결하였다.
화용도의 사건은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촉과 오의 연합작전에 말려 적벽에서 대패를 한 조조가 도망가는 길에 제갈량은 미리 군대를 배치하여 타격을 입혔다.
마지막 세번째로 화용도에 나타날 걸 미리 알고 제갈량은 관운장을 시켜 조조를 잡아오도록 하였다.
아직 조조의 운명이 다하지 않는다는 걸 미리 감지한 제갈량이었으나, 운장으로 하여금 그를 죽이도록 했던 것은, 운장이 조조를 화용도에서 놓아 보내면 자신의 목숨을 바치겠다고 한 약속때문이었다.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조조를 차마 죽일 수 없어 운장은 뒤로 돌아 조조가 도망가는 걸 방치했다.
이것은 제갈량이 더욱 공고해진 운장의 충성을 받기 위한 계략이었던 셈이다.
위의 두 가지 사례를 개벽주가 실례로 든 것을 보면, 막연한 초능력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일을 도모하라고 한 것이 분명하다. 안 될 일을 되게 하고, 될 일을 못 되게 하는 게 참으로 아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진리 안에서 모든 일을 되게 하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