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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秋夕)

영부, 精山 2009. 9. 29. 07:57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성큼 다가섰다.

함허동에서의 원우회 사진을 보면서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청명한 하늘 아래 나눈 우정들은 외로운 허공을 머금는 함허(含虛)동을 그날 만큼은 온갖 것들로 채우고도 남았으리라.

그날 나는 토요일에 시행하는 정기 강좌의 강사이기에 어쩔 수 없이 불참할 수밖에 없었으며, 또한 20년 간 종로에서 지속하고 있는 21세기 신문화연구회의 회장으로 추대받는 날이었기에 더더욱 불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사진과 동영상으로나마 여러 원우들을 볼 수 있으니 감사를 드린다.

 

추석을 맞이하여 추석이란 말의 의미를 새겨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추석은 오랫동안 민족의 미풍양속으로 전통을 유지했다.

어느 것이건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추석도 역시 마찬가지다.

 

추석의 秋는 가을 추요, 夕은 저녁 석이다.

그러니까 그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이라는 말이 된다.

그것은 <가을 = 저녁>이라는 등식을 가리킨다.

가을이 저녁이라면 봄은 새벽(인시, 묘시, 진시)이요, 여름은 한낮(사시, 오시,  미시)이며, 가을은 저녁(신시, 유시, 술시)익이고, 겨울은 밤(해시, 자시, 축시)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가을은 하루로 치면 석양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한낮의 뜨거운 열정도 물러나고, 포근한 음기가 찾아드는 저녁무렵은 어딘가 인생의 온갖 맛을 다 맛본 원숙한 경지를 연상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고 한다.

사색은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니다.

그럴 만한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가능한 법이다.

 

가을을 가리키는 秋를 보면 禾(벼 화)와 火(불 화)가 합한 글자다.

벼가 불을 품고 있는 형국인데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일까?

 

벼는 봄에 태어나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이겨야 한다.

그걸 가리켜 불시험이라고 하는데, 과학적으로는 광합성 작용이라고 한다.

태양의 열을 적게 받으면 곡식이 단단하게 여물지 못한다.

가을의 벼는 비록 뜨거운 여름의 태양은 사라졌지만, 고스란히 태양의 불기를 지니고 있다.

즉 불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그래서 튼실한 열매를 맺는데, 사람들은 그걸 가리켜 '쌀'이라고 한다.

 

가을은 날씨가 쌀쌀하다.

쌀이라는 말은 '싸다'에서 왔다.

싸다는 말은 흐트러진 것을 한꺼번에 "싸 안는다'는 말이다.

즉 벼가 태양 볕을 싸안아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과 상통한다.

그것이 쌀이다.

우리는 매일 태양의 양기를 먹고 산다.

그래서 생의 활력소를 챙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