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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자에 담긴 民天主義(민천주의)

영부, 精山 2009. 10. 2. 15:40

民자에 담긴 民天主義(민천주의)

 

유명 서점에 들러 새로 나온 한자풀이 책들을 조사해보았다. 하나 같이 民(백성 )의 자원에 대해 “뾰족한 바늘이나 칼 따위로 눈을 찌르는 모양으로 눈을 찔린 포로 또는 노예를 나타낸다.” 식이다.

이번엔 야후(YAHOO) 한자사전을 살펴보니, 民자를 “象形. 눈동자가 없는 눈을 바늘로 찌르는 모양을 본뜸. 눈을 찔러 사물을 볼 수 없게 된 노예를 나타냄.”이라 적고 있다. 네이버(NAVER)도 ‘눈먼 사람... 노예’라고 하여 별 차이가 없다.  

분명히 백성은 하늘이요 민심은 천심이라 배웠는데, 하다못해 주인도 아니고 노예라니... 대세를 따라야 하는가?

이번에는 6백여 년 전, 조선 세종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세종 29년(1447)에 간행된 용비어천가 120장을 펼쳐본다. “民者王所天(민자왕소천)”, 백성은 왕의 하늘이라는 뜻이다. 지금과 너무 다르다. 달라도 하늘과 땅만큼 현격하게 다르다.

民은 노예라는 말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찾기 위해 다시 시간여행을 했다. 청나라 말을 지나 중화민국 초기 유명한 계몽 사상가였던 梁啓超의 저서 『太古及三代
載記』(1922)가 보인다. 거기 스스로 주석을 단 부분에 “民의 본뜻은 노예이다(民之本義爲奴虜)”라고 적은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民奴說의 실마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저명한 고문자연구가인 郭沫若(이하 ‘곽’)이 갑골문자연구(1931)에서 民자에 대한 자신의 풀이를 발표한다. 그의 논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周代 금문의 民자들



“民자는 은나라 갑골문이나 금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주나라 때의 청동기 盂鼎과 克鼎 등에 民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의심컨대 주나라 사람들이 民人의 제도를 만든 것 같다. 民자는 왼쪽 눈이 칼붙이에 찔린 모양으로 노예의 총칭이다.”

이러한 곽의 民奴說은 좀 더 시간이 흐른 뒤, 고문자전문가인 李孝定에 의해 옳다고 지지를 받았고, 于省吾 또한 그의 명저『甲骨文字詁林』에서 “가히 一說을 갖추었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대가들의 인정 이후 民奴說은 이제 거스르기 힘든 대세가 되었다.  



周代 금문의 十(십)과 五十(오십)


그러나 民의 주대 금문에서 目(눈 )자 밑에 있는 부분은 위 도표에서와 같이 十(열 )자이지 결코 ‘칼붙이[刃物]’가 아니기 때문에 곽의 주장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盂鼎의 '民'자에 대해 칼붙이로 눈을 찌르는 모양이라 했으면, 같은 盂鼎의 '五十'에 대해서도 五와 十의 합문이라 하지 말고 당연히 칼붙이로 五를 찌르는 모양이라 했어야 한다. 한마디로 모순이다.

위에서 증명되는 바와 같이, 民은 十과 目으로 구성된 글자이다. 그렇다면 十目은 무엇일까? 大學에 “
十目所視(십목소시)"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의 十은 숫자 10에서 나아가 ‘수많은’을 뜻하니 十目所視는 많은 눈들이 지켜보는 바이다. 따라서 民은 왕과 관리들을 주시하는[目] 다수[十]의 사람들, 곧 백성을 의미한다.

주시자는 백성이자 곧 하늘이다. 이처럼 民자에는 백성을 하늘로 보고 두려워할 줄 아는 고대 왕들의 동양철학적 인식인 民天主義 사상이 담겨 있다. 경제는 經世濟民의 준말이니, 현 시국처럼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民主主義에서 民天主義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2008년 12월초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朴大鍾 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