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 精山 2009. 11. 9. 07:33

19절

<사월 그믐날 개벽주 구릿골로 돌아오사 하룻밤을 지내시고 형렬을 데리고 만경 광찬의 처소에 이르시니 이때에 최익현이 충청남도 흥주에서 의병을 일으킴에 가입하는 자가 날로 더하여 군세가 크게 떨치더니 개벽주 가뭄을 걱정하사 수일 동안 만경에 머무르시면서 비를 많이 내리시니 인심의 안정되어 각기 농사터로 돌아가므로 의병의 기세가 쇠하여지니라.>

 

해설

崔益鉉은 ‘최고로 이익을 주는 솥‘이다.

그는 마땅히 후천 개벽에 도움을 주어야 하거늘, 오히려 역행하는 처사를 하였다.

개벽주께서 일본을 조선의 머슴으로 36년 간 역사하는 공사를 보았는데, 그걸 최익현이 잘 모르고 의병을 모병하였으니 그 기세를 꺾지 않을 수 없었다.

최익현은 호를 면암(勉庵)이라 하는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6조에 이르는 항목으로 의병을 모병하여 일제에 항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개벽주의 천지공사로 인해 그 기세가 꺾여 일제에 잡혀 쓰시마에서 굶어 죽는다.

그의 올곧은 선비정신은 많은 사람들의 귀감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천지의 도수를 알지 못하였으니 애석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