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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수와 강선루

영부, 精山 2009. 11. 25. 09:41

29절

 

<이 공사를 마치시고 형렬에게 일러 가라사대 허미수(許眉叟)가 중수(重修)한 成川 강선루의 일만 이천 고물은 녹줄이 붙어 있고 금강산 일만 이천봉은 겁살이 끼어 있나니 이제 그 겁살을 벗겨야 하리니 너는 광찬과 도삼을 데리고 돌아가서 조석으로 청수 한 동이씩을 길어서 스물네 그릇에 나누어 놓고 밤에는 칠성경 스물 한 번씩 읽으며 백지를 한 方寸씩 오려 한 사람이 하루에 모실 侍 자 400씩 열흘 동안을 쏘서 네 벽에 돌려부치고 나를 기다리라 하시니 형렬이 광찬과 도삼을 데리고 구릿골로 돌아와서 명하신대로 행하니라 >

 

해설

 

허미수는 본관이 양천이요 자는 목(穆)이며 미수는 효다. 선조 28년에 탄생하여 숙종 8년에 졸하였다. 나이 50이 되도록 공부만 하다가 예학의 대가가 됐으며 자의대비의 복상문제로 우암 송시열과 대립을 하였다. 그 문제로 좌천을 당하였는데 전서에 뛰어 난 문장가다.

그가 중수한 강선루는 평남 성천군 성쳔면 무산(巫山) 12봉 아래 있는 비류강이 휘감아 도는 물 위에 3층 누대로 기둥이 99개나 된다고 한다.

개벽주게서 강선루에 녹줄이 붙어 있다고 한 까닭은, 강선루가 세워진 배경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허미수가 살았던 당시 조정은 중국(명)을 상국으로 섬겼다. 그런데 갑자기 중국에서 평남 성천군 비류강에 99 기둥이 있는 정자를 만들어 시회를 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한 기간 내에는 도저히 짓기가 힘들었다. 대신들이 모여 아무리 고민을 해도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때에, 허미수가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허미수는 하인을 시켜 어느 골짝을 찾아가면 다섯 신선이 모여 바둑을 두고 있을 테니, 뒤에서 구경하는 신선에게 전하라고 글을 써서 보냈다. 하인이 시키는 대로 찾아가보니 과연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지라. 구경하는 신선에게 글을 보이니 나머지 신선들과 상의를 한 결과, 허미수의 청을 들어주겟다고 하였다.

그날부터 산 허리에는 안개가 자욱하였으며 마침내 기간 내에 화려한 강선루가 지어졌다. 이 일로 인하여 중국은 조선에 많은 원조를 하였기에 녹줄이 붙어 있다고 한 것이다.

 

허미수와 관련한 개벽주의 시구가 있는데, <步拾金剛景 靑山皆骨餘 其後騎驢客 無興但躊躇 : 금강산의 경치를 걸어가면서 걷었으니 청산에 뼈만 남았구나. 그후로 말 타고 오는 객들이 말에서 내리지 않고 흥이 나지 않고 다만 주저주저하더라>가 그것이다. 즉 허미수가 금강산의 녹줄을 걷어버려서 뼈만 남았다는 말씀이다.

 

우리나라의 지형을 보면 북방으로부터 낭림산맥이 내려오다가 추가령 밑에서 끊어졌다가 다시 산맥이 살아나 금강산 12,000봉이 솟았는데, 그것이 바로 오대산맥이다. 오대산맥은 태백산맥, 광주산맥, 차령산맥, 소백산맥, 노령산맥이다. 이것은 후천의 5행을 상징한다. 금강산의 겁살을 벗기는데 ‘조석으로 청수 한 동이씩을 길어서 스물네 그릇에 나누어 놓고 밤에는 칠성경 스물 한 번씩 읽으며 백지를 한 方寸씩 오려 한 사람이 하루에 모실 侍 자 400씩 열흘 동안을 쏘서 네 벽에 돌려부치고 나를 기다리라’고 한 이유는 무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