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신명 해원
48절
<공사를 마치시고 경석과 광찬과 내성은 대흥리로 원일을 신경원의 집으로 형렬과 자현은 구릿골로 각기 보내신 뒤에 공신과 응종과 경수에게 일러 가라사대 경석이 성경신이 지극하므로 달리 써볼까 하였더니 제가 스스로 청하니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로다 원래 동학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주창하였으나 때가 아니므로 안으로는 불량하고 겉으로만 꾸며내는 일이 되고 말았나니 후천 일을 부르짖었음에 지나지 못한 것이라 마음으로 각기 왕후장상을 바라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릇 죽은 자가 수만 명이라 원한이 창천하였으니 그 신명을 해원시키지 아니하면 후천에는 역도(逆度)에 걸려 정사를 못하게 되리라 그러므로 이제 그 신명들을 해원시키려고 그 두령을 정하려는 중인데 경석이 십이제국을 말하니 이는 자청함이라 그 부친이 동학두목으로 그릇 죽었고 저도 또한 동학총대(總代)였으니 오늘부터는 동학신명들을 전부 그에게 붙여 보냈으니 이 자리에서 왕후장상의 해원이 되리라 하시고 주지(周紙)에 글을 쓰시며 외인의 출입을 금하시니라 또 일러 가라사대 동학신명이 전부 이 자리에서 해원되리니 뒷날 두고 보라 금전도 무수히 소비할 것이요 사람 수효도 갑오년보다 훨씬 많게 되리니 이렇게 풀어놓아야 후천에 아무 일도 없으리라>
해설
경석을 다른 데 써 보려고 하였으나 스스로 동학 신명을 해원하는 데에 자청하였다는 말씀이다. 후일 경석은 스스로 차천자가 되어 보천교의 교주가 되었다. 동학 신도들은 본래 보국안민을 대의명분으로 거사를 하였으나, 대부분 의기만 충천했을 뿐, 구체적인 개벽의 도수를 알고 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많은 분들이 사람을 한울처럼 모시는 인내천 사상을 구현하려는 포부가 있었으나 그들의 상당수는 각기 왕후장상이 되는 헛된 망상을 지녔었다. 비록 그릇된 소망이라고 하여도 헛되이 죽은 무고한 신명들을 해원시키지 않고서는 후천의 정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석이 12제국에 첩을 하나씩 거느리기를 원한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와 같은 동학신명들을 대신해서 한 소리다. 그의 아비 차치구도 동학도라는 이유만으로 죽어야 했고, 그 자신도 동학의 총대 노릇을 했었으므로 억울한 신명들이 경석을 통해 해원하려는 처사였다. 차경석이 세운 보천교는 동학 신도보다 훨씬 더 많은 신도들이 몰려들어 개벽주의 말씀대로 되었다. 차경석에게 포정도수를 붙인 결과 이런 현상들이 벌어졌지만, 이는 모두 허상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억울한 동학신명들을 해원시켜야 비로소 진정한 포정도수가 나오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