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정리 3
4. 終一과 始十
천무경의 始一과 終一은 차이가 있다. 시일은 人中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지만, 終一은 人中에서 벌어진다. 즉 시일은 천지 대자연속의 一이지만, 종일은 사람의 자성을 밝힌 一이다. 대자연속의 一이 아무리 좋다고 하나, 자성에서 밝아지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자성을 밝혀야 하고, 그래야만 우아일여(宇我一如)의 神人으로 화한다. ‘始一’이 없다고 하는 것과 상대적인 것이 ‘十終有終十’이다. 즉 천부경에서는 찾을 수 없던 十을 지부경인 땅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十이 있다고 하려면 九가 완성돼야 한다. ‘십종유종십’은 ‘十이 끝나려면 끝나는 十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며, 끝나는 十은 곧 아홉 개의 수다. 그걸 가리켜 지부경에서는 靜九라고 하였다. 아홉 개의 수가 온전하지 않으면 十은 결코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아홉 개의 수는 사실 一이 석삼극을 하여 아홉 개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十은 음(一)과 양(丨)이 합한 모양이다. 따라서 아홉 개의 숫자도 음과 양이 하나로 합한 상태가 되지 않으면 十은 없다.
아홉 개의 숫자가 음양이 합한 상태는 어떤 걸까? 1에서 9까지 석삼극을 하면 9변이다. 9변은 물상의 변화를 가리킨다. 물상의 변화는 양을 위주로 한다. 양의 변화는 반드시 음을 위주로 변화하는 9복을 해야 온전해진다. 9변과 9복! 이 두 개를 합하면 18도수가 생기는데 그 중심을 일러 19적멸수라 한다. 그리고 19적멸수의 중심에는 十이 있다. 이 十은 始十인 동시에 終十이다. 또한 中十도 된다.
< 1 → 2 → 3 → 4 → 5 → 6 → 7 → 8 → 9 → ⊕ ← 9 ← 8 ← 7 ← 6 ← 5 ← 4 ← 3 ← 2 ← 1 >
선천 물질계 1 → 2 → 3 → 4 → 5 → 6 → 7 → 8 → 9
후천 정신계 10 ← 9 ← 8 ← 7 ← 6 ← 5 ← 4 ← 3 ← 2
조화 11 11 11 11 11 11 11 11 11
이처럼 시종이 일여한 十을 가리켜 ‘十十行道大紳機’라고 한다. 천부경은 九九八十一로 이루어졌으나 19적멸수가 부족하였다. 그것을 채워서 十十 百字 지부경으로 行道하니 大神機다. 물질계에서는 아홉 개의 수가 짝을 만나지 못해 動九였으나 후천 정신계에서는 음양이 베합하여 11귀체를 이루니 靜九다. 靜九는 11귀체한 상태요, 11귀체는 十이 一을 안고 있으니 ‘靜九抱一’이다. 그렇게 되면 그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지내던 靜十이 활발하게 움직이므로 ‘動十生一‘을 한다.
9변과 9복이 합한 18도수가 상하, 전후, 좌우 6虛에 충만한 상태를 가리켜 ‘108’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人中天地一한 상태이므로 ‘神人百八’이다. 이것은 6이 천지인 3계로 벌어진 36궁이라고도 한다.
5. 運三四成環五七一妙衍
‘運三四’는 많은 분들의 견해처럼 ‘3 × 4 = 12’로 보는 게 무난할 듯하다. 12는 12地支, 12經絡, 12개월, 12시간 등으로 나타난다. 12시간은 천지인 셋이 교대로 맞물려가면서 동, 서, 남, 북 4방을 순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의 상태를 알려주는 척도(尺度)다. 12경락은 ‘大三合六‘이 음기와 양기로 벌어져 인체의 리듬을 조율하는 척도다. 12개월은 태양과 달이 숨바꼭질을 하면서 역시 ‘大三合六‘을 드러내는 척도다. 이와 같은 척도를 구체적인 숫자로 나타낸 것을 가리켜 도수(度數)라고 한다. 지금까지의 천부경 해설서들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식으로 또렷한 구심점이 없었던 것은, 사실 이와 같은 도수를 명료하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긴 그게 어디 천부경 해설에만 국한 된 것이랴! 선천의 모든 종교와 경전이 그랬으니 그걸 가리켜 ’판 안 문명‘이라고 한다.
‘運三四’는 말 그대로 ‘3과 4가 움직인다’는 뜻이다. 3은 수박을 가른 절대 기준, 析三極이다. 이걸 달리 표현한다면 ‘3大軸’이다. 축(軸)은 세 가지가 있는데 ‘상 - 중 - 하‘, ’좌 - 중 - 우‘, ’전 - 중 - 후‘를 지나기 때문이다. 이때 ’상하’, ‘전후’, ‘좌우’는 표면에 나타난 형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반드시 상대적인 관계에 있으므로 ‘음양‘이라고 한다. 음양은 항상 ’짝수‘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수박의 표면에 나타나는 숫자는 전부 짝수다. 짝수라는 말 자체에는 ’안정‘이라는 의미가 있다. 짝을 갗추면 더 이상 돌아다니지 않고 한 곳에 안주하려는 게 속성이다. 그런데 짝을 만나려면 어쩔 수 없이 중심을 지나야 한다. 물론 중심을 거치지 않고 먼 길을 우회(迂廻)하여 짝을 찾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도 많이 걸릴뿐더러, 결정적으로 자신들의 고향, 즉 ’참 나‘를 찾지 못한다는 결함이 있다. 여기서 혹시 수박의 중심을 ’참 나‘로 여긴다면 그 또한 큰 착각이다. 왜냐하면 중심은 중심일 뿐, 그것이 결코 표면까지 섭렵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중심과 표면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중심 = 표면‘은 아니다. 중심과 표면의 본질은 같으나, 그 형태는 엄연히 다르다. 즉 0과 十은 같은 듯하나, 전혀 다른 형태를 취한다. 중심과 연결된 음양의 조화와 그렇지 못한 음양의 조화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다. 오늘날 천부경이나 각종 경전을 해설한 글들이 중구난방으로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도 실은 중심과 연결시키지 못한 채, 그저 변죽만 울렸기 때문이다. 물론 중심을 연결한 것은 단연코 천지개벽을 단행하고 그 증거물로 인류에게 남긴 ’현무경‘이요, 그걸 한 장의 도표로 만든 ’용담도‘다.
천부경의 ‘運三四’를 지부경에서는 ‘行三八政’이라고 했다. ‘운삼사’는 3극이 4방에서 움직인다는 말이고, ‘행삼팔정’은 3극이 8괘로 정사를 한다는 말이다. 4방과 8괘의 차이는 무얼까? 4방은 수박을 두 번 갈라서 생긴 조각이요, 8괘는 세 번 갈라서 생긴 조각이다. 수박을 두 번 가른 건, 천지의 움직임을 가리키고, 세 번 가른 건, 인간의 등장을 가리킨다. 인간이 등장하기 전의 천지에는 동서남북이라는 공간과 춘하추동이라는 시간이 움직일 따름이다. 그러나 인간이 장성하여 어엿한 인축(人軸)을 세우게 되면 8괘의 이치가 자성에서 밝아진다. 즉 천지의 음양이 표면에서 조화를 이루다가 마침내 수박의 중심과 연결된 조화를 부린다. 인체로 비유하자면 머리(하늘)의 생각과 몸통(땅)의 기운이 마침내 마음(인간)에서 하나 된 것과 같다. 아무리 생각이 뛰어나고 기운이 넘친다 해도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천부경의 ‘運三四’가 마침내 지부경의 ‘ ‘行三八政’으로 온전해진다. 하늘이 한 번 돌면 36이요, 땅이 한 번 돌면 36이니 이 둘을 합한 72는 천지의 음양둔갑수다. 그러나 이것은 ‘運三四’요, 여기에 인간의 36을 합해야 비로소 ‘神人百八’인데 이것이 ‘行三八政’의 결과다. 四는 본래 음양으로 벌어진 숫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천지의 음양이 벌어진 것이다(2 × 2). 인간은 남녀이므로 그 자체가 2 × 2 = 4다. 천지의 4와 인간의 4를 합하면 8이 되는데, 이것을 상징한 것이 바로 8괘다. 그러므로 가장 온전한 언어라면 8괘라고 해야 한다.
‘成環五七一妙衍’은 무엇을 말할까? 5는 수박을 두 번 가른 중심점, 곧 4방의 중심을 가리킨다. 4방의 중심이라 함은 아직 인간의 중심이 서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때의 十字는 수박의 표면에 두 개가 생긴다. 이에 비해 7은 수박을 세 번 가른 중심이므로, 천지의 중심과 인간의 중심까지 합한 수다. 천지의 중심이라 함은 빈 껍데기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우주가 아무리 넓다고 해도, 인간이 없으면 공각(空殼)이다. 공각이라고 해도 천지는 엄연한 대자연이다. 그러나 그것은 형상을 가리킨다. 형상의 중심은 인간의 마음이다. 인간의 마음에서 모든 것이 비롯하는 법이므로 형상의 중심은 반드시 인간의 마음과 연결되어야 한다. 이를 가리켜 ‘成環五七’이라 한 것이며, 그것이 하나 되면 필경 ‘一妙衍’을 하게 된다. 5는 평면의 중심이요, 7은 입체의 중심이라고 한 것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5와 7 사이에 6이 있으니, 6은 평면도 아니요, 7도 아니다. 5는 1에서 9의 중심수요, 7은 1에서 13의 중심수라면 6은 1에서 11의 중심수다. 즉 5는 9변의 중심이요, 6은 11귀체의 중심이고, 7은 천유 13의 중심이다. 5는 4방으로 상징되는 공간의 중심이요, 7은 12로 상징되는 시간의 중심이다. 따라서 ‘成環五七’은 시공의 순환이 서로 맞물린 상태를 가리킨다. 시공을 주관하는 것은 하늘이므로 지부경에서는 ‘天一貫五七’이라고 하였다. 이에 비해 땅은 물질을 주관하는데, 천지의 물질은 4상이라 하고, 천지인이 합한 물질은 8괘라 한다. 5와 7이 홀수로만 이루어져 하늘의 陽을 가리킨데 반해, 4와 8은 짝수로만 이루어져 땅의 陰을 가리킨다. 인간은 천지의 합작품인데 하늘의 양을 모아 놓은 乾9와 땅의 음을 모아 놓은 坤6을 조화하는 법이므로 ‘人一貫六九’라고 하였다.
또 하나, 주의할 것은 천부경의 3과 지부경의 3의 차이점이다. 천부경의 3은 ‘析三極‘과 ’無櫃化三‘ 이 있고, 지부경의 3은 ‘折化三三’이다. ‘析三極‘은 ’쪼개는 주체가 셋‘이라는 말이니 천지인 3신을 가리킨다. ’無櫃化三‘은 ’틀이 없이 이루어진 셋‘을 가리키는데, 天極 속의 1, 2, 3과, 地極 속의 4, 5, 6과, 人極 속의 7, 8, 9를 가리킨다. 틀이 없다고 한 것은, 아직 음양이 짝을 만나지 못한 채, 홀로 9변하기 때문이다. 지부경의 ‘折化三三’의 ‘折’은 ‘꺾이다’라는 뜻이다. 쉽게 말하자면 ‘석삼극’의 ‘석‘은 ’꺾는 주체‘요, 절화삼삼의 ’절‘은 ’꺾인 객체‘다. ’석삼극‘은 ’무궤화삼‘이요, ’절화삼삼‘은 ’유궤화삼‘이다. 유궤화삼은 음양이 짝을 만나 이루어진 천지인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9복을 의미한다.
석삼극, 무궤화삼 |
1 2 3 |
4 5 6 |
7 8 9 |
절화삼삼 |
10 9 8 |
7 6 5 |
4 3 2 |
動十生一 |
11 11 11 11 11 11 11 11 11 |
이처럼 천부경의 3은 아직 짝을 만나지 못한 아홉 개의 숫자였으나, 지부경의 3은 음양이 서로 짝을 만나 모두 11귀체로 평등세상을 이루었으니 이를 가리켜 지상선경이라 한다. 이걸 동학에서는 弓乙村이라 하고, 세간에서는 ‘지상선경’ 혹은 ‘유토피아’라 하며, 이곳에서는 ‘天符洞’이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