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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정리 4

영부, 精山 2010. 2. 21. 08:47

6. 역학과 천부경

 

천부경이나 지부경은 우주의 근원과 변화의 원리를 가르쳐준다. 그것은 곧 모든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는 도수를 가리킨다. 선천의 경전들이 절대자에 대한 맹목적이고 막연한 믿음을 강조한 것과는 달리, 우리민족의 천부경이나 지부경은 도수(度數)를 일러주었다. 믿음이나 신앙은 깨달음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깨달음이 없는 신앙은 맹목적이기 일쑤다. 그런 면에서 천부경과 지부경의 도수는 위대한 문화유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주변화의 도수를 일러 주는 것으로는 역(易)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천부경을 해설한 글들 중에는 역학을 인용한 경우가 많다. 특히 숫자를 거론한다면 역을 빼놓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대부분 하도나 낙서만 인용하였기에 용두사미가 되고 만 것이 아쉽다. 1석3극의 원리대로 역에도 天 = 河圖, 地 = 洛書, 인 = 龍潭이 있다. 용담이 없이 하도와 낙서를 거론한 것은, 마치 열매를 맺지 못한 나무와 같아서 미사여구(美辭麗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천부경을 易과 연계해서는 안 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용담은 현무경을 요약한 도표다. 현무경은 선천의 천지인을 개벽하여 내어 놓은 새로운 후천 5만 년의 기틀을 가리킨다. 사실 알고 보면 천부겨이나 지부경은 지상선경의 지침이다. 그러기에 현무경이나 용담을 모른 채, 해설한다면 이현령비현령으로 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하도, 낙서, 용담이라는 3대 상서를 통해 천부경과 지부경을 살피는 게 가장 정확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천부경의 첫 머리 ‘一始無始一’은 十이 없다는 뜻이므로 당연히 낙서를 가리킨다. 낙서는 1감수로 시작해서 2곤지, 3진뢰, 4손풍, 5중앙, 6건천, 7태택, 8간산, 9리화로 끝나기 때문에 十이 없다. 十이 없다 함은 음(一)과 양(丨)이 十으로 하나 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걸 격암선생은 ‘나를 죽이는 小頭無足’이라고 했다. 小頭는 작은 머리이니 1을 가리키고, 無足은 발판이 없다는 말이니 모든 수의 발판인 十이 없다는 말이다. 낙서에 등장하는 아홉 개의 숫자는 9변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만물이 변하는 상태를 도수로 나타낸다. 예를 들면, 낙서의 시작은 1坎水라고 하는데 그것은 만물의 시작은 물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서문명에서는 시간의 시작을 1子時라고 한다. 만물에는 크게 유형적인 면과 무형적인 면이 있는데, 낙서는 유형적인 면이 변하는 도수를 일러주기 때문에 子時를 時頭로 삼았다. 시간이란 것은 만물의 변화를 나타내는 도수다. 水에도 음수와 양수 두 가지가 있는데, 낙서는 양을 위주로 변하는 도수를 나타내기 때문에 陰水인 亥를 시두로 삼지 않고, 陽水인 子를 시두로 하였다. 이처럼 음이 아닌 양을 위주로 하는 걸 가리켜 억음존양(抑陰尊陽)이라고 한다. 천부경의 ‘일석삼극’이나 무궤화삼‘은 억음존양을 가리킨 표현이며, 지부경의 ‘절화삼삼’은 음양합일을 가리킨 표현이다. 十이 없다는 천부경의 첫머리는 ‘물질문명에서는 十을 못 찾는다’는 선언이다. 이때의 十은 ‘大三合六’을 이룬 大十字다. 즉, 천지의 음양만 합한 十이 아니라 천지인이 모두 하나 된 十이다. 그러기에 ‘一析三極’이라고 했다. 셋으로 갈라진 건 본래 셋이 하나였기 때문이다. 만약 천지의 음양만 합한 十이라면 大三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사실 大三은 하도, 낙서, 용담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므로 '大三合六‘은 하도, 낙서, 용담의 음양이 합일한다는 걸 가리킨다. 낙서의 중심에 5가 들어간 것은 천지의 음양이 합하여 4상을 이룬 중심을 의미한다. 이는 곧 낙서는 천지의 음양만 합했을 뿐, 아직 인간의 자성에서 음양이 밝아진 것은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천지의 음양이 합했다는 것은 사물을 상생과 상극을 위주로 대한다는 얘기다. 그것이 후천 용담에 이르면 상생도 아니요, 상극도 아닌 합덕으로 보게 된다. 이것이 용담도의 중심을 6으로 삼게 된 이치다. 천부경의 중심에 六을 집어넣은 것은, 용담도가 등장할 것을 암시한다. 숫자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6은 완전수‘라고 한다. 그 이유는 6이야말로 天1, 地2, 人3을 더하거나, 곱하거나 같은 셈이 되는 유일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는 전체적으로나 개체적으로나 천지인이 동일한 결과를 빚어내는 수는 6 이외에는 없다는 뜻이다. 이른바 個全双全은 바로 6을 두고 한 말이다.

이처럼 6에는 신비한 면이 있기에 천부경에는 6에서 ‘生七八九’를 한다고 했으며, 지부경에는 ‘六六大化 十十理機 三十六宮’이라고 했다. 六六大化는 36이 되고 十十理機는 100을 이룬다. 그러면 둘 사이에는 64만큼 차이가 벌어지는데, 그것은 64괘다. 6은 상하, 전후, 좌우를 가리키는 六合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천지인의 음양이 담긴 그릇, 즉 허공이다. 그걸 수리로 말한다면 2 + 2 + 2다. 따라서 ‘六六大化’는 허공 자체가 최대한으로 불어난 셈이다. 이에 비해 8은 2진법으로 형상이 불어나는 걸 가리킨다. 하늘의 음양이 땅에서 두 배로 불어나면 4상이요, 그것이 인간의 음양과 곱하면 8괘(혹은 8상)가 된다. 즉 6은 허공이요, 8은 그 속에 들어 있는 형상이다. 따라서 36이라는 허공 속에 64괘가 충만해지면 ‘十十理機’로 100이 된다(36 + 64 = 100). 이럴 적에 비로소 36은 宮이 된다. 36이 천지의 음양이 합한 4상으로 벌어지면 4 × 36 = 144(坤策數)요, 천지인의 음양이 합한 6합으로 벌어지면 6 × 36 = 216(乾策數)다. 건책수와 곤책수를 합한 360은 일원수가 되어 일월이 운행하는 그릇이 된다.

이와 같은 역의 이치를 우리민족은 천부경과 지부경이라는 경전으로 만들어서 후손에게 전했으니 어찌 역을 모르고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이치를 철학, 역사, 정치, 의학, 경제 등의 여러 방면으로 풀이를 한다면 방대한 분량의 글이 나올 것이다. 그런 것은 차츰 하기로 하고 이만 천부경과 지부경의 총정리를 마치기로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천지개벽의 원리를 제시한 현무경과 용담도를 모르고서는 감히 천부경을 운운하거나, 진리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