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그걸 여러분들이 얼마나 실감을 하느냐에 따라 영혼의 완성도가 달라집니다.
그걸 수리로 말한다면 하도와 낙서 때에는 아직 十이 없었고, 용담에 이르러 비로소 十이 등장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 말도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복희도나 문왕도에는 十이 없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十이 없을 수 있나요?
또한 一이 복희도와 문왕도에 등장하였다고는 하여도 그것이 과연 참다운 一이었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복희도나 문왕도의 바탕에는 이미 十이 존재합니다.
十은 어느 곳에나 있습니다.
다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태일 따름이죠.
엄밀히 말한다면 그것은 十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0이라고 하는 게 나을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게 출발하는 북방에 8곤지로 그 형상을 새겨 놓았습니다.
8곤지의 형상은 3효가 모두 텅 빈 음이므로 0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지요.
0에서 맨 처음에 나온 걸 가리켜 一이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낙서의 1감수입니다.
그러나 이때의 1감수는 물질의 시작, 즉 형상의 시작을 가리키는 것일 뿐, 결코 만물의 근원인 태극을 가리키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모양은 0인 ☷(곤괘)에서 중심에 양효가 하나 들어갔으니 이는 곧 태극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러나 그것은 아직 허상에 지나지 않으므로 허태극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실태극으로 화하는 것은 3효가 모두 양으로 되는 용담의 10건천이 되는 때라고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천지인 셋이 모두 실한 빛으로 충만하였으니 태극의 완성이 아닌가요?
'十'이라는 글자를 보면 두 개의 一이 경위로 온전해진 상태임을 알 수 있는데, 한 개는 복희도의 0이고, 또 다른 한 개는 문왕도의 一입니다.
이를 합하면 10이 되고, 한자로 쓰면 十이 된 겁니다.
이처럼 十이라는 숫자에는 0과 1과 10이 한꺼번에 등장하는데, 이를 가리켜 11귀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낙서와 문왕도의 중심에 있는 5는 허5라 하고, 용담도의 중앙에 있는 6은 실5라 부릅니다.
이것이 바로 허태극과 실태극입니다.
11귀체가 되어 十이 一을 머금고 있는 걸 가리켜 동학에서는 무극대도라고 부릅니다.
용담도의 중심에서 1, 6이 주인공이 되고 5와 10으로 用事를 하게 됐으니 이를 가리켜 포교 50년 공부라고 하였습니다.
50에 대해서는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50이 되는 경우를 전부 나열해 보세요.
우선 2 × 25가 있고, 5 × 10이 있습니다.
2 × 25는 음양이 25곱으로 벌어진 상태입니다.
25는 5 × 5인데, 5방에 있는 5행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5방에 있는 5행이 온전하게 나타나야 하는데, 선천낙서에서는 49수에 머물고 말았지요.
대순전경 4장 천지공사 편 173절에는 “개벽주께서 천지공사를 마치신 뒤에 오십년에 사십 구년 동안 그름을 깨달았다 하나니 이제 그 도수를 썼노라 내가 천지운로를 뜯어고쳐 물샐 틈 없이 도수를 굳게 짜놓았으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라 너희들은 삼가 타락치 말고 오직 일심으로 믿어 나가라“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본래 商나라(殷나라)의 초대 재상인 伊尹의 고사에서 나온 얘기인데, 우임금이 세운 하王朝가 말기에 이르러 폭군으로 유명한 傑王을 쳐서 멸하고 湯王 으로 하여금 상나라를 세우게 하는 역사를 인용한 것입니다.
이윤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上國인 하나라를 섬기는 일이 도리에 맞는 줄로 알고 49년을 지내 오다 50년 만에 그 판단이 그릇 됐음을 깨닫고 파사현정(破邪顯正)의 깃발을 들어 혁명을 했다는 고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