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상생
맞습니다.
마음은 영원한 밭이지요.
밭에 어떤 씨앗을 심고, 가꾸느냐에 따라 언행이 결정되고,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갈라지게 마련이지요.
우리는 그간 현무경을 비교적 진지하게 공부했다고 자부합니다.
도대체 우리는 왜 그토록 현무경을 공부했을까요?
솔직히 지금처럼 치열한 생존경쟁의 사회에서 현무경이 얼마나 도움을 줄까요?
한 푼이라도 돈이 되는 일에 매달려도 먹고 살기 힘든 현실에서 어쩌면 우리는 공상이나 망상을 하는 게 아닐까요?
이런 의문은 그간 스쳐간 무수한 사람들을 통해서 신물이 나게 했던 겁니다.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은 어디에 있을까요? 좀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바로 나 자신이 답입니다.
여러분이 그간 나와 생활하면서 보고 느낀 게 있을 겁니다.
보다시피 나는 이미 나이가 많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내 손자뻘 되는 분도 많습니다.
그러나 나를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육신 뿐 아니라, 마음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나는 역동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늙는 것은 마음이 늙어서 그런 겁니다.
몸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마음이 맑으면 몸도 맑고, 마음이 탁하면 몸도 탁하게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저 사람은 맘이 착하고 맑은데, 왜 병이 들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특히 고승이나 성직에 종사하는 분들이 암이나 지병으로 죽은 것을 가리켜 그런 말을 많이 하더군요.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병이 없어야 합니다.
맘이 착하고 맑은데, 병이 생긴다는 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나는 봅니다.
맑다고 하려면 탁기가 없어야 하고, 탁기는 곧 집착의 소산입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무소유로 유명한 고 법정스님도 무소유에 집착한 게 아니냐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고 물으니까, ‘그렇게 평생을 무소유로 지냈는데, 폐암으로 돌아가시느냐? 더욱이 공기 좋은 산에서만 지내신 분인데’라고 하더군요.
나 역시 언제 어떤 병이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남의 질병에 대해서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원론적인 면에서 그런 질문이나 의문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병이 있어야 건방지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는 말씀도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수행의 과정을 얘기한 것이지, 어느 경지에 이른 상태를 가리킨 건 아닙니다.
현무경을 제대로 깨닫는다는 것은, 한 마디로 ‘천지개벽’을 하는 일입니다.
천지개벽을 사람에 국한시킨다면 몸과 맘을 개벽하는 일이겠지요.
쉽게 말하자면 몸과 맘이 서로 상통하게 하는 상태입니다.
현무경의 중요한 가르침 중에 하나를 들라고 한다면 ‘해원상생’입니다.
해원상생은 도대체 어떻게 하나요?
증산을 상제라고 하면서 숭봉하는 종단들은 ‘영가천도’를 하라고 하던데, 그렇게 해서 해결 될 일인가요?
영가천도는 오랜 세월 행해져 온 전통입니다.
그런데도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어수선한 세상이 되고, 원한과 상극의 골이 깊어지는 까닭은 무얼까요?
해원상생은 그렇게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해원상생은 한 마디로 ‘맘먹은 대로 해야’ 해결됩니다.
맘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제자들의 믿음을 나무란 예수의 말씀처럼 맘은 천하를 주무르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게 한이 되는 게 아닌가요?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이 온전히 일치한다면 누가 한을 품겠나요?
현무경은 그와 같은 경지에 도달하는 지침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