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불선 3도를 정리함
172절
<6월 22일 약방 마당에 자리를 깔고 개벽주 그 위에 누워서 치복을 명하여 새 자리를 그 앞에 펴라 하시더니 문득 공자를 부르시며 가라사대 소정묘를 죽였으니 어찌 성인이 되며 三代出妻를 하였으니 어찌 齊家하였다 하리요 그대는 이곳에서 쓸데없으니 딴 세상으로 갈 지어다 하시고 또 석가모니를 부르사 가라사대 樹陰 속에 깊이 앉아 남의 子侄을 유인하여 부모의 倫氣와 음양을 끊게 하여 인종을 절멸시키려 하니 그대가 국가를 아느냐 선영을 아느냐 창생을 아느냐 그대는 이곳에서 쓸데없으니 딴 세상으로 나갈 지어다 하시고 또 노자를 부르사 가라사대 세속에 産母가 열 달이 차면 신 벗고 침실에 들어앉을 때마다 신을 다시 신게 될까하여 死地에 들어가는 생각이 든다 하거늘 81년을 어미 뱃속에 있었다하니 그런 불효가 어디 있으며 그 대가 異端 80권을 지었다하나 세상에서도 본 자가 없고 나도 못 보았노라 그대도 이 세상에서 쓸데없으니 딴 세상으로 나갈 지어다 하시니라>
해설
마지막 화천을 앞두고 유불선 삼도를 정리하는 공사를 보는 장면이다. 묘(卯)가 이름이며, 소정(少正)은 관직명이다. 공자에게 주살당한 인물로 중국 공산정권의 반공자운동(反孔子運動: 批孔) 때 주목을 받았다. 이 주살사건은 《사기(史記)》의 <공자세가편(孔子世家篇)>,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시주편(始誅篇)>, 《순자(荀子)》의 <유좌편(宥坐篇)> 등에 기록되어 있는데, 기록에 의하면 노나라 정공(定公) 14년(BC 496)에 공자는 사구(大司寇: 司法長官)가 된 지 7일째 되는 날 정치를 문란시킨 소정묘를 죽여 그 시체를 3일간 궁정에 내걸었다고 한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은 소정묘를 인망이 높은 사람으로 생각하였으므로 공자의 행위를 힐난한즉, 공자는 도둑 이외의 대악(大惡) 다섯 가지를 들어 소정묘는 5대악을 겸하고 더구나 도당(徒黨)을 짜서 대중을 현혹시켜 체제에 반항하는 조직을 만든 ‘소인(小人)의 걸웅(桀雄)’이므로 주살함이 당연하다고 대답하였다. 仁을 처세의 기준으로 내세운 공자가 사람을 죽이고, 3대에 걸쳐 처를 내쫓았다고 하면 그야말로 위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석가도 마찬가지여서 해탈을 목표로 한다고 하면서 남의 집 귀한 자녀들을 출가하게 하여 결혼도 못하게 하여 가문을 멸절시키고 있으니 어찌 세상에 인종이 남을 수 있겠는가? 노자가 실제로 태중에서 81년을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아마 81性理를 상징하는 숫자가 아닐까? 공자의 유도는 인과 의가 어울리지 못한 판 안의 것이요, 석가의 불도도 남녀 간의 음양이 단절된 판 안의 것이며, 노자의 선도도 역시 도와 덕이 하나 되지 못한 판 안의 것이므로 모두 딴 세상으로 가라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