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산과 득도의 도수
내 생각에는 동학 이전의 종교나 학문에서는 대자연의 운행을 천주의 흔적으로 보지 않았다는 걸 강조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강하네. 그
것은 곧 앞에서 말한 것처럼 대자연의 운행에 대한 이치를 동학 이전의 종교, 즉 선천 종교에서는 간과(看過) 했다는 말씀이지.
기껏 가르친 것이라고 하면 홍익인간, 사랑, 자비, 인, 효, 충, 예 등 현란한 미사여구로 도배를 했다고 볼 수 있지.
하지만 그 속에는 알맹이가 없어 허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지.
그래서 수운 선생에게 하늘은 주문과 영부를 내려주었다는 게 아주 중요한 사실일세. 수운선생은 철이 들면서 당시 사회상을 돌아보기 위하여 주유천하를 한 적이 있었는데, 백성들은 천주를 모른 채, 하루하루 연명하기가 벅찼고, 관리들은 벼슬에 혈안이 되어 매관매직(賣官賣職)으로 나라가 온통 부패했지.
이런 현실을 목도한 수운선생은 천지부모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심정을 동경대전과 논학문에 토로한 걸세.
그러던 중, 1860경신년에 이르러 천주교의 세력이 날로 거세지는 걸 보게 되었는데, 그들은 말하기를 부귀는 하나님 앞에서 한낱 뜬구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남의 나라를 쳐서 빼앗아 식민지로 삼고, 교당을 세우는 걸 보게 되었지.
그런데도 그들이 잘 나가는 걸 보면서 수운 선생은 혹시 그들이 믿는 하나님의 능력이 정말로 있는 게 아닌가?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도 어찌 남의 나라를 쳐서 뺏고, 사랑을 외칠 수 있단 말인가, 이거야말로 앞과 뒤가 서로 맞지 않는 모순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는 진실한 고백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하다가 수운 선생은 1859 기미년 乙亥 10월에 처자를 거느리고 입산하여 6개월이 지난 경신년 辛巳 4월 5일에 득도를 하게 되었지.
그렇다면 하필이면 왜 己未년과 庚申 년 사이 6개월을 경과하면서 득도를 하게 됐을까?“
“ … ”
“수운선생께서 자신이 입산한 날과 득도한 날을 굳이 기록으로 남긴 이유는, 그것이 바로 천도와 천덕을 성립케 하는 天理이기 때문이었지.
천리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에서 사랑이나 자비 같은 인륜도덕이나 계율을 떠 올리지만 수운선생이 생각한 천도는 天時를 아는 일이었네.
선천과 후천을 60갑자를 기준으로 해서 구분한다면 절반씩 나누어야 한다는 건 상식이지.
그럼 수운 선생이 입산한 기미년을 기준으로 보면 60갑자 중에서 己丑년이 절반에 해당하지 않나?
그러나 기축년은 陰年이기에 선천을 주도할 수가 없었지. 그래서 기축년 바로 전 해인 戊子년으로부터 계산해서 60갑자의 절반은 己未년이라고 볼 수밖에.
戊子년에서 30년을 가면 戊午년이지만, 그것은 陽年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다음 해인 기미년으로부터 절반이 시작하는 셈이지.
戊子년의 戊는 공간의 시작을 가리키고, 子는 시간의 시작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즉 지구의 중심문을 열고 우주만물이 변화하기 시작한다는 상징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