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주
사람은 누구나 다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법인데도, 대부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사정을 모르기 때문이지.
모르기 때문에 아예 믿으려고도 하지 않고, 믿음이 없으니 하려는 시도(試圖)도 없고 그러니 당연히 그런 능력과는 담을 쌓게 되는 거야.
수운 선생도 애초부터 이런 ’至氣‘를 믿지 않았다면 용담정으로 들어가 기도와 수련을 할 염두조차 없었을 거야.
수운 선생이 확고하게 믿었기 때문에 신선의 말씀이 들리고 영부와 주문을 받을 수 있었던 거지.
이처럼 기극한 정성과 공경, 믿음은 그 어떤 지식보다도 절대적인 것임을 잊으면 안 되지.
이런 것은 그 후에 수운 선생이 소축하고 난 영부의 재를 물에 타서 마셔 본 결과, 도골선풍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도 먹여보니 효과를 보는 사람도 있고, 효과가 없는 사람도 있는 걸 알게 됐고, 그 원인은 오직 一心 여하에 달렸다고 한 것으로 충분히 알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법사님.
우리가 현무경에서 배울 적에는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13자는 癸巳에서 乙巳까지 천유 13도로 用符頭가 나오는 이치를 가리킨 것이라고 하였는데, 정작 수운선생께서는 ‘內有神靈 外有氣化하는 천주님을 부모처럼 섬기며 무위이화의 덕에 합하여 그 맘을 정하라고 하는 게 시천주조화정이며, 그것을 평생토록 잊지 않고 보존하여 만사를 알아야 한다는 게 영세불망만사지라는 식으로 기록을 남기면서 기도주의 요체(要諦)를 ’明明其德念念不忘則至化至氣至於至聖‘이라고 간단명료하게 정리를 하셨습니다.
수운선생께서도 도수를 중시하셨다면 당연히 용부두가 나오는 이치라고 했어야 할 텐데, 어찌하여 문자를 풀이하는 정도로 그쳤는지 궁금합니다.”
“그것이 바로 수운과 증산의 차이야.
수운선생이나 개벽주나 다 같이 개벽의 사명을 담당하신 건 맞지만, 한 분은 동학을 통해 동적인 면을 맡았고, 한 분은 현무경을 통해 정적인 면을 맡았기 때문이지. 동적인 면은 외적인 환경을 개벽하고, 정적인 면은 내적인 면을 개벽하는 일을 해야 할 건 당연한 일이겠지.
외적인 면은 그릇을 가리키고, 내적인 면은 그 안에 담기는 내용물을 가리킨다고 보면 어떤 게 먼저 나오고 어떤 게 나중에 나와야 할까?”
“그릇이 먼저 있은 다음에 내용물을 담아야 합니다.”
“그렇지. 이사를 갈 적에도 먼저 잡다한 쓰레기를 청소한 후에 집기들을 들여 놓는 것처럼, 선천에서 후천으로 넘어가려면 먼저 거대한 청소를 해야겠지.
그걸 맡은 게 바로 동학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을 걸세.
그래서 동학은 갑오년에 동학혁명을 일으키고, 기미년에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지.
이처럼 동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기운이 필요하거든.
하늘은 수운 선생께 영부와 주문 두 가지를 내려주셨지만, 수운선생은 영부가 아닌 주문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지.
주문은 동적인 기를 발생하고, 영부는 정적인 리(理)를 깨닫게 하는 법이라는 걸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야.
같은 13자 주문이라고 하여도 수운 선생은 기를 기, 즉 지기(至氣)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그렇게 풀이한 것이요, 개벽주께서는 이(理)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용부두가 나오는 이치를 일러주는 도수를 일러준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