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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는 중국인의 것인가? 1

영부, 精山 2010. 9. 6. 06:22

3. 과연 한자는 중국인의 것인가?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문화는 하늘의 뜻을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만든 것이며, 그렇게 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등장한 것이 문자였다. 따라서 훌륭한 문자나 언어일수록 하늘에 가깝다. 하늘에 가깝다 함은 곧 ‘마음의 실체’를 보았다는 것이며, 참 자신을 깨달았다는 의미다. 그런 면에서 문자를 깨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우리 민족이 타민족보다 유독 ‘교육열(敎育熱)’이 높은 이유는 예부터 이런 이치가 은연 중 배어 있는 까닭이다.

 

우리 민족은 한자와 한글을 병용한다. 특히 한글은 전 세계의 학자들이 가장 우수한 문자로 인정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그만큼 우리 민족은 진리에 근접했다는 얘기이며, 이는 곧 인류의 염원인 지상낙원을 현실화 하는 것도 우리 민족의 몫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인터넷이 등장하고, 핸드폰이 진화할수록 한글의 우수함과 위대함이 속속 입증되고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 한자를 마치 중국인의 작품인 것처럼 오도하여 민족문화를 말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과연 한자는 중국인이 만들었을까? 한자를 만든 이는 예로부터 ‘창힐(蒼頡)‘로 알려졌다. 그에 대한 글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창힐

 

중국 전설상 한자의 창조자로 일컬어지는 인물. ‘황힐‘, ‘힐황‘이라고도 한다. 일설에는 황제(黃帝)의 사관(史官) 또는 고대의 제왕이라고도 한다. 그는 머리에 눈이 4개 있고 신명(神明)과 통하며, 위로는 괴성(魁星:북두칠성의 方形을 이룬 네 별)의 둥글고 굽은 형세를 관찰하고 아래로는 거북의 등껍데기 모양과 새 발자국의 형상을 살펴, 아름다운 것들을 널리 모아 글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천지·귀신이 그것을 보고 감동하여 하늘에서는 곡식을 내리고 귀신은 밤에 곡을 했다고 한다. 문자가 세상에 전해지자 '이사(李斯)는 창힐이 쓴 28자를 보고 단지 8자만을 알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후한의 환제(桓帝) 때인 162년(延熹 5)에 세운 창힐묘비가 산시 성[陝西省] 시안[西安]에 있다. 묘비문은 예서(隸書) 24행으로 되어 있으나 이미 마모되어 판독이 불가능하다. 순자(筍子)는 〈해폐편 解蔽篇〉에서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창힐만이 홀로 그 글을 전한 사람이다"라고 했다. 현대 학자들은 문자를 인류사회의 집단적 창작이라고 여기는데, 창힐은 중국 고대에 최초로 문자를 수집정리하고 창조한 인물로서 오랜 기간에 걸쳐 그에 관한 많은 신화와 전설이 생겨났다.

 

출처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