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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가 2

영부, 精山 2010. 9. 14. 07:24

3절의 내용은 수운 선생이 큰 것은 아니었으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나 잘 관리해서 윤산(潤産)이라도 할 걸 괜히 무슨 경륜이라도 있는 것처럼 세상을 떠돌다가 가산을 탕진하였음을 후회한다.

그러나 모든 만민은 하늘이 내었으니(天生萬民) 반드시 먹고 살 길이 있는 법이다(必授之職).

 사람이 태어날 적에는 반드시 천록(天祿)이 있게 마련인데, 무슨 팔자가 이리도 기험(崎險)하냐고 팔자 한탄을 하고 있다.

부(富)하고 귀(貴)한사람은 이전 시절(以前時節)에는 빈천(貧賤)했던 것이요, 빈(貧)하고 천(賤)한 사람은 오는 시절(時節)에 부귀(富貴)를 누린다는 말씀을 남긴 것으로 보아 수운선생은 모든 게 돌고 도는 순환지리에 따르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이라는 말을 믿고 안빈낙도(安貧樂道)하면서 수신제가(修身齊家)를 해보자고 스스로 다짐을 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비방(誹謗)하고 원망(怨望)하는 말을 한다 해도, 들어도 못 들은 척(聽而不聞), 옳지 못한 일(不義之事)과 흉(兇)한 빛을 보아도 못 본 척(視之不見) 하기를 마치 어린자식을 효유(曉諭)해서 매매사사(每每事事)에 교훈(敎訓)하여 어진 일을 본을 받아 가정지업(家庭之業) 지켜내면 그 자체가 낙(樂)이라고 교훈하시는 말씀이다.

 

세상에서는 남의 일이라고 하여 말들이 무성하다.

평판을 하려면 자세한 사연을 알고 난 연후에 해야 하는데도 대부분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인민재판식으로 남을 비방한다.

수운선생도 사실 이런 피해를 많이 보신 분이다.

그러나 일반인들과 달랐던 점은 그런 데에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고 대응을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청이불문(聽而不聞)하고 시지불견(視之不見)하라고 한 문구는 바로 그걸 말해준다.

물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굳이 이런 문구를 남긴 것은, 불필요한 데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라는 외에 더 깊은 뜻이 들어 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법칙을 수운선생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은 기(氣)를 통해 자신의 실체를 형상으로 화하는데, 기는 마치 방송사에서 발신하는 전자파(電磁波)와 같다.

전자파는 자신의 의도대로 티브이나 라디오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발신하는 자의 의도대로 그 모양을 나타낸다.

오락프로그램을 보내면 오락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드라마를 보내면 드라마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처럼 기는 발신자의 의도를 충실히 이행할 따름이지, 결코 스스로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사에 나타나는 각종 현상들은 티브이에 비치는 화상(畵像)과 같아서 그걸 발신하는 자의 의도대로 보이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걸 발신하는 자는 누굴까? 그건 바로 ‘마음’이다.

즉 자신의 마음에서 의도하는 대로 기가 움직이며 마침내는 현실로 나타난다.

방송국에서 전자파를 강력하게 하면 할수록 더욱 또렷하게 더 멀리 송출이 되는 것처럼, 마음의 생각도 강력하게 하면 할수록 그것이 무엇이 됐건, 반드시 형상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도 그것이 자꾸 쌓이다보면 어느새 강력한 파장을 일으키게 되어 마침내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는 걸 수운 선생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남의 말을 무조건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릇 된 말이나 사물을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무조건 남의 것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라고 했다면 어찌 동학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행여 조금이라도 부정적이거나 불건전한 생각이라면 아예 그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

만약 수운선생이 일반인들처럼 ‘제 가정 하나도 못 꾸리고, 처자식 고생을 시키면서 무슨 수도냐?’는 비방에 신경을 쓰고, 그 속에 부정적인 생각이나, 불안한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면 결코 4절과 같은 득도를 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