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의 종류 4
봄이 가면 ‘여름’이 오는데, 여름은 ‘여리다’에서 왔다. 여름의 볕은 매우 강렬하다. 볕이 강렬하면 빛이 밝게 마련이다. 밝음은 여림과 상통한다. 그러기 때문에 여름의 색은 매우 밝은 편이다. 겨울은 색이 어두운데, 이를 가리켜 ‘우중충하다’고 한다. 우중충하다는 것은 두텁다는 말과 상통하는 것으로, 이에 상대적인 것이 바로 ‘여리다’이다. 겨울에 깊숙이 숨어있던 만물의 형상은 여름이 되면 하나도 숨김이 없이 낱낱이 그 모습을 나타낸다. 이것을 가리켜 여리다고 한 것이며, 여름이란 말이 나왔다.
여름을 한자로는 夏(하)라고 하는데, 夊(천천히 걸을 쇠)를 부수로 삼는다. 예전에는 昰를 ‘여름 하’로 썼는데, 태양이 똑바로 떠서 모든 걸 바르게 비치는 때가 여름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昰는 ‘옳을 시’로 사용하고, 夏를 ‘여름 하’로 사용한다. 夏는 크게(一) 스스로 움직여(自) 천천히 걷는다(夊)는 말인데, 이는 곧 태양이 강렬하게 비치는 기간이 오래 지속되는 때가 여름이라는 말이다. 역사상 聖君(성군)으로 추앙하는 禹임금을 ‘하우 씨 우’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우임금이 세운 나라가 ‘夏’이기 때문이다. 요임금이나 순임금 시절에도 나라는 있었으나, 정식 國號(국호)는 없었다. 요임금은 아들 단주가 어리석어서 혈족이 아닌 순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순임금도 역시 아들 상균이 있었으나 治水(치수)에 큰 공을 세운 우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그러나 그들이 물려받은 나라는 국호도 없었으며, 국법도 없었다. 임금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태평성대를 누렸는데, 율려와 예악으로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우임금 때에 비로소 왕위세습제도가 생겼고, 국호도 생겼으니 중국 역사상(사실은 동이족임) 최초의 국호인 夏가 바로 그것이다. 그때로부터 왕위는 혈통으로 세습되었으며, 국법이 엄해지기 시작하였고, 분쟁과 전쟁이 본격적으로 발동하기 시작하였다. 여하튼, 우임금이 국호를 여름을 가리키는 ‘夏(하)’로 정한 것은, 우주의 계절로 치면 그 당시는 여름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는 우주의 가을로 접어든지 이미 60여년이 지났다.
여름의 색은 赤色(적색)인데, 赤이라는 글자는 大와 火(灬)를 합한 것이다. 또는 十무극과 一태극을 한데 깨달아 밑의 세상을 밝히기 위하여 힘차게 기운을 내려 보내는(灬) 형국이라고도 할 수 있다. 큰 불이 사물을 태우면 밝은 색, 혹은 붉은 색이 나온다. 사물이 타고 나면 맨 손과 같다고 하여 赤手空拳(적수공권)이라는 말이 나온 것처럼, 불은 모든 걸 속까지 까 보이는 속성이 있다.
붉은 색을 가리키는 것으로는 紅色(홍색)도 있다. 紅은 糸와 工을 합한 글자이므로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 가지가 늘어질 정도로 熟成(숙성)한 상태를 가리킨다. 나무가 숙성하면 그 속의 양기도 농익게 마련이고(工), 농익은 색은 붉은 색이다. 赤色이 강렬한 열기를 隨伴(수반)하는 陽(양)에 속한 색이라면, 紅色(홍색)은 차분한 陰(음)에 속한 색이다. 그래서 보기 좋게 혈색이 맑고 붉은 얼굴을 가리켜 赤顔(적안)이라 하지 않고 紅顔(홍안)이라고 하였다. 적안은 양기가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이 내라막길로 접어든 상태를 가리킨다. 적안백발이라는 말은 없어도 홍안백발(紅顔白髮)이라는 말은 있으니, 비록 백발이 됐어도 양기가 비교적 맑은 상태를 가리킨다.
여름의 태양은 사계를 통하여 가장 강렬하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만물을 지치게 한다. 하나도 남김이 없이 속까지 다 밝게 비치려고 하니 태양도 힘들고, 만물도 마찬가지다. 彼此(피차) 있는 힘을 다 써 버리니 그야말로 ‘쓴 맛’을 보게 마련이다. 이처럼 여름에는 기운을 다 썼다고 하여 여름의 맛을 ‘쓴 맛’이라고 한다. 여름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야위게 되는 까닭은 이와 같이 기운을 消盡(소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겨울에 기운을 備蓄(비축)하는 것과 정반대의 현상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주에 丙, 丁의 천간이나 巳, 午 같은 지지가 많이 있거나, 寅午戌 3합이 있거나, 戊癸合火를 이루는 경우에는 그 성격이 열정적이다. 너무 열렬한 나머지 어떤 비밀이든지 속에 품고 있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火는 본래 태양처럼 밝고 명랑한 영혼의 소유자이지만 과도한 경우에는 오히려 모자람만 같지 못하다. 이처럼 여름에는 모든 생물의 기운을 다 드러나게 하는데, 이것은 마치 옷을 발가벗기는 것과 같다. 하긴 여름에는 최소한의 것만 걸친 채, 발가벗기를 좋아한다. 여름의 색을 ‘붉은 색’이라고 하는 것도, 실은 ‘발가벗기다’와 맥락을 같이 한다. ‘발가벗김’ 혹은 벌거벗김‘은 ’발감 - 발갬 - 발가짐 - 발개짐 - 빨가짐 - 빨강‘으로 변했을 공산이 크다.
쓴 맛을 가리켜 ‘苦味(고미)’라고 하는데, 艹와 古를 합한 글자다. 古는 十과 口가 합하였으니, 음양의 이상적인 합일체인 十을 사방(口)에 세우려고 한 것은, 옛날, 옛적부터 우주의 설계였다는 의미에서 ‘옛 고’라고 한다. 艹는 싹이 난 상태를 가리킨다. 艹와 古가 합하면 ‘십무극을 사방에 펼쳐 싹이 난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지막 기운까지 다 써야 하기 때문에 ‘쓸 고’라고 하였다.
여름의 기운은 뜨겁기 때문에 속에 열이 있는 생물들은 견딜 수가 없다. 여름에 번성하는 식물이나 동물은 사실 속이 냉한 것들이다. 여름에 맺는 과일들은 시원한 성질을 지닐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데에 기인한다. 대부분 여름에는 날이 덥기 때문에 사람들은 찬 음료나 식품을 즐겨 찾지만, 이것은 크게 잘못 된 일이다. 인체에 있는 더운 양기는 안에 남아 있지 못하고, 밖으로 다 날아가 버리는 게 여름인데, 거기에 찬 걸 집어넣으면 어찌 되겠는가? 양기가 없으면 사람이 단단하게 여물지 못한다. 본래 陽(양)은 따스하다는 뜻 외에도 단단하다(剛)는 뜻이 있다. 속에 양기가 없으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약하게 되어서 온갖 질병에 시달린다. 겨울보다도 여름에 더 질병이 많아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