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해 1
토끼(卯)
다사다난했던 경인년도 며칠 안 남았다. 매스컴에서는 마치 신묘년이 벌써 시작한 것처럼 떠들고 있지만 立春(입춘)이 와야 비로소 새해로 본 것이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였다. 서양의 물질문명에 밀리다보니 이제는 우리의 미풍양속마저 실종된 것 같아 씁쓸하다. 도대체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 있고, 샘 없는 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좋지만, 내 것을 잃지 않는 주체성이 확고하지 않으면 ‘얼빠진 민족’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얼빠진 사람이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을까? 얼굴은 ‘얼 곬 = 얼의 골짜기’, ‘얼굴 = 얼이 있는 굴’ 이라는 뜻이니, 얼이 빠져 버린 우리의 모습은 도대체 어떤 얼굴일까?
庚寅(경인)년은 白虎(백호)가 蠢動(준동)하였다. 60년 전인 1,950년 경인 년에는 6. 25동란이라는 민족 최대의 비극이 벌어졌고, 2010년에는 북한의 서해 연평도 도발로 인해 50여 명에 이르는 사상자가 있었다. 경인의 庚은 만물이 열매를 맺는 모양을 본 뜬 상형문자라고 한다. 그러나 그 모양이 열매를 가리킨다고 보기에는 소전을 비롯한 고문자 어디에도 명쾌한 모습은 찾기 힘들다. 그보다는 방부관일(方夫貫日 : 방부가 태양을 꿰뚫음)로 보는 게 더 명쾌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우선 전체적인 뜻을 먼저 알아보자.
方夫라니 그건 무슨 말일까? 농사를 지으면 農夫요, 고기를 잡으면 漁夫라고 한다.그럼 방부는? 방위를 다루는 존재다. 方은 흔히 ‘모 방’이라고 한다. ‘모가 나다’, ‘모서리’ 등과 같이 그때까지 진행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꺾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게 ‘모’다. 자전에는 ‘두 척의 조각배를 나란히 하여 놓고 이물을 서로 묶어 놓은 모양’이라고 나와 있다. ‘이물’은 뱃머리를 가리키고, 그 반대는 ‘고물’이라 한다. 이처럼 方에는 두 개의 다른 것을 한데 묶어서 평평하게 이어지게 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방향이 서로 머리를 맞대는 지점을 가리켜 ‘方位’라고 한다. 이런 까닭에 하늘에서는 방위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늘은 텅 빈 허공이기에 서로 다른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방위는 땅에서 성립한다.
이런 이치를 알면 왜 庚을 方夫라 하며, 유독 우리나라는 庚자가 들어가는 해에 유독 큰 시련을 겪었는가 하는 걸 알 수 있다. 일제에게 나라를 뺏긴 1910년은 庚戌國恥(경술국치)라고 하며, 6. 25동족상잔이 벌어진 庚寅 1950년, 5. 16쿠데타가 벌어진 庚子 1960년, 광주사태가 벌어진 庚申 1980년, 연평해전이 벌어진 庚寅 2010년 등등. 사실 이런 얘기를 하자면 ‘개벽’과 동학, 증산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으나, 그런 건 쓸 데 없는 오해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으니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천지의 운행과 그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기초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그것은 국어사전에서의 뜻풀이를 보면 ‘1. 몹시 호된 꾸지람. 2. 지난 날 도둑을 다스리던 호된 형벌의 한 가지.’라고 되어 있다. 이때의 ‘경‘은 컴퓨터에 입력되지 않은 한자인데 ’묵형 경‘이라고 한다. 그것은 黑(검을 흑)과 京(서울 경)을 합한 글자이니, 이는 곧 검은 먹물로 죄인의 얼굴에 죄명을 자자한 데서 유래한다. 刺字(자자)란 고대 중국에서부터 행해졌던 형벌의 하나로, 얼굴이나 팔뚝의 살을 따고 흠을 내어 먹물(墨 묵)로 죄명을 찍어 넣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조선 영조 때까지 행해졌다. '경을 치다'는 것은 곧 도둑이 관아에 끌려가서 '경'이란 형벌을 받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오늘 날에는 호되게 꾸중을 듣거나 심하나 벌을 받는 것을 이르는 말로 널리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