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제 14장 (第十三章)
제 14장 (第十四章)
於是에 移黃穹氏之裔六萬이 守之하고 乃割木作?八萬하여 刻信符流放於天池之水하여 招四海諸族하니
諸族이 得見信?하고 次第來潗하여 大開神市於朴達之林하고 修?淨心察干天象하여
修麻姑之譜하여 明其族屬하고 準天符之音하여 整其語文이러라.
어시에 이황궁씨지예육만이 수지하고 내할목작부팔만하여 각신부류방어천지지수하여 초사해제족하니
제족이 득견신부하고 차제래집하여 대개신시어박달지림하고 수계정심찰간천상하여
수마고지보하여 명기족속하고 준천부지음하여 정기어문이러라.
이에 황궁씨의 후예 6만이 (부도에) 이주하여 지키고,
곧 나무를 베어 뗏목 8만을 만들어서, 신부(信符)를 새겨, 천지(天池)의 물에 흘려 보내, 사해의 제족을 초청하였다.
* 황궁씨의 후예 : 마고성에서 천산주로 옮겨 유인씨 → 한인씨 → 한웅씨 → 임검씨의 계보로 이어진다.
제족이 그 신부가 새겨진 뗏목을 얻어서 보고, 차례로 모여들어,
박달나무 숲에 신시를 크게 열고, 계불로 마음을 깨끗이 하여(수계정심:修?淨心)하여,
하늘의 움직이는 모습(천상:天象)을 살핀 후,
* 신시 : 위치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정확한 위치는 어딜까 ? 배달국 14대 치우한웅은 산동성 청구에 도읍하였다.
마고의 계보(系譜)를 살펴 그 족속(族屬)을 밝히고, 천부의 음에 준하여 그 말과 글을(어문:語文)을 정리 하였다.
* 3세 가륵 단군시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었는데 이를 가림토라고 한다.
又奠定北辰七耀之位하여 燔贖於盤石之上하고 會歌而奉天雄之樂이러라.
諸族이 ?七寶之玉於方丈方壺之堀하여 刻天符而謂之方丈海印하여 ?除七難而歸라.
우전정북진칠요지위하여 번속어반석지상하고 회가이봉천웅지악이러라.
제족이 채칠보지옥어방장방호지굴하여 각천부이위지방장해인하여 벽제칠난이귀라.
또 북극성(북진:北辰)과 칠요(七耀)의 위치를 정하여 반석의 위에서 속죄의 희생물을 구워 제사(전:奠)를 올리고,
모여서 노래하며 천웅(天雄)의 악(樂)을 연주하였다.
* 칠요(七耀) : 일월(日月)과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제족이 방장산(方丈山) 방호의 굴(方壺之堀)에서 칠보의 옥을 채굴하여 천부를 새기고
그것을 방장해인(方丈海印)이라 하여 칠난(七難)을 없애고 돌아갔다.
* 산동성에 봉래라는 지역이 있으며(현재 등주) 봉래 앞바다에 삼산이라는 섬이 있는데 삼신산으로 추정되고 있다.
봉래, 삼(신)산, 방장산 등은 발해만 인근을 지칭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영주라는 지명도 산동성 위쪽에 존재한다.
* 아니면 성스러운 땅이었던 한반도를 의미하는 것인가 ?
自此로 每十歲必開神市하니 於是에 語文同軌하여 一準天下하니 人世太和러라.
仍而(仍以)築城於海隅하여 奉奠天符하고 使駐留諸族으로 ?(館)而居之하니 爾來千年之間에 城隍이 遍滿於全域이라.
자차로 매십세필개신시하니 어시에 어문동궤하여 일준천하하니 인세태화러라.
잉이(잉이)축성어해우하여 봉전천부하고 사주류제족으로 관(관)이거지하니 이래천년지간에 성황이 편만어전역이라.
이로부터 매 10년마다 반드시 신시를 여니,
이에 말과 글(어문:語文)이 같아지고, 천하가 하나로 되어 사람들이 크게 화합(태화:太和)하였다.
인하여 바닷가에 성황(城隍)을 지어 천부에 제사를 올리고,
제족으로 하여금 머물러, 집을 지어 살게 하니, 그 뒤에 천년 사이에 성황이 전역에 널리 퍼졌다.
* 성황당의 의미를 짐작케하는 부분이다. 성황당은 아시아 전체에 널려져 있다. 저 멀리 몽골 바이칼호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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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서복의 활동지역 추정으로 본 봉래, 그리고 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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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봉 래 : 산동성 봉래 (출발지)
(2) 삼신산 : 산동성 삼산(작은섬) (도착지)
(3) 서복도 : 산동성 아래 작은섬 (이동지)
(4) 공유현 : 서복촌 (정착지)
→ 제주를 거쳐 일본으로 갔다는 것은 후대의 날조된 사실이다.
→ 일본의 서복관련 유적지는 18세기 이후의 날조다.
→ 기원전 210년대에 산동성에서 해류를 가로질러 제주도를 거쳐 일본으로 갔다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현실이다.
→ 진시황의 장성이 황하(섬서성)를 건너지 못하였는데 산동성 낭야성을 순시했다는 것은 망상에 근거한 소설에 불과하다.
→ 산동성은 고대로 장안중심의 서토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고 바로 공자가 가서 살고싶었던 구이(동이)의 땅이 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