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秘資金)
비자금(秘資金)
2000억이 넘는 비자금을 숨겨두었다고 하여 세간에 널리 회자(膾炙)되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통하여 그 실상을 밝혔다. 그 기록에 의하면 1992년 대통령 선거 때에 당시 민자당 김영삼 후보에게 3000억원을 지원했다고 한다. 당시에 주고 받은 대화를 녹음한 테이프를 지금도 가지고 있다 하니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비자금 문제로 구속될 적에 그 테이프의 공개를 검토했으나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하지 못했다고 한다. 자신이 퇴임 후에도 수 천 억원의 비자금을 갖고 있었던 것에 대해선 “김영삼 당선자가 청와대에 오려 하지 않는 등 후임자에게 자금을 전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은 비자금 사건 당시 총액이 “원금만 2757억원”이었다며 “대선에서 모두 사용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큰돈이 남아 깜짝 놀랐다. 그런데 김영삼 당선자가 청와대에 오지 않아 자금을 전해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정치인들의 말을 과연 어느 정도까지 믿을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들지만, 적어도 검은 돈이 왔다 갔다 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인격과 경륜, 실력과 능력으로 되어야 하건만, 돈으로 처바르고 당선 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그것이 어디 ‘돈(돌아버린) 대통령’이지 정상적인 대통령인가? 그러면서 입으로는 허구한 날 ‘정의’를 외치고, ‘국가와 민족’을 외쳐대고 있으니 가히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하루 빨리 도적놈들이 사라지고 사람다운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세상이 오길 기대한다.
비자금(秘資金)의 秘는 ‘숨길 비’라고 하는데, 벼를 가리키는 禾(화)와 必(반드시 필)이 합한 문자다. 禾는 곡식이 튼실한 열매를 맺은 모습을 가리키고, 必은 八과 弋(주살 익)을 합한 글자다. 어떤 표적으로 말뚝(弋)을 박아 확실하게 그 경계를 갈라 놓는다는 데서 ‘단정하다’라는 뜻을 나타내며, 거기에서 ‘반드시’라는 의미가 생겼다. 資(재물 자)는 貝(조개 패, 돈을 가리킴)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제일 좋은 것이 아니라 次(다음 차, 버금 차) 순위에 속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