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宅配)
택배(宅配)
어제 오후에 택배(宅配)가 왔다. 울산에 있는 약산님이 내 신체 사이즈에 맞추어 하얀 윗도리와 검은 색 아랫도리를 보내왔다. 땀 흡수가 잘 되고 가벼운 것이 맘에 든다. 집사람과 아이들도 ‘예쁘다’고 박수를 친다. 어려운 처지인데도 나한테 신경을 써 준 약산님께 감사를 드린다.
요즘은 택배가 발달되어서 여러모로 편리하다. 택배라는 말을 어느 한글 학자는 ‘집 배달’로 바꾸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宅은 ‘집 택’이니까 아마 그런 주장을 한 모양인데, 그렇다면 配達은 한자가 아닌가? 그것도 다 바꾸어서 부르자고 하는 게 사리에 맞는 일이리라. 그 학자는 말하기를 ‘배달’은 굳이 ‘한자로 쓰지 않아도 뜻이 통하기 때문에 한자로 표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그런 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택배라고 해도 뜻이 다 통하는데, 굳이 새롭게 바꾸어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한글을 사랑하자는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동조하기 어렵다. 그것은 마치 티브이나 컴퓨터를 만든 건 서양이니까 남의 것은 사용하지 말자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국회에서 공문서를 한글과 한자를 병기(倂記)하자는 법안을 발의하려고 하는 모양인데, 그걸 결사(決死) 반대한다는 한글학회와 국어학자들의 기사(記事)를 보았다. 해방되면서 남북한은 동시에 한글전용론을 외치면서 한자를 아예 폐지하려고 하였었다. 지금도 북한은 그렇게 하는 모양이다. 남한은 적지 않은 부작용과 비효율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고, 요즘은 각급 학교에서도 한자급수인정을 받으려는 시험이 활발하다.
우리 것을 지키는 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오랜 세월 조상들이 사용해온 문자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소중한 조상들의 생각과 뜻을 오늘에 되살리려면 한자를 해석할 수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자가 왜 남의 것인가? 그것은 엄연히 우리 동이족이 만든 것이 아닌가?
宅은 宀(집 면)과 乇(부탁할 탁)을 합한 글자다. 乇은 丿(비침 별)을 부수로 하여 七과 함께 쓰는 글자인데, 7을 비치게 하는 것이 ‘부탁’이라는 말이다. 7은 1에서 10까지의 숫자 중에서 유일하게 ‘빛’을 발하는 상징수다. 그래서 七星이라는 용어도 생겼다. 어두운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7성이나, 어두운 의식을 밝은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얼굴의 7규(七竅 : 얼굴의 7구멍)는 다 같이 ‘빛’을 의미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宅은 ‘빛을 보호하는 집’이라는 뜻이 있다. 配는 ‘아내 배, 짝 배’라고 하는데, 酉와 己가 합한 글자다. 酉는 술을 담는 그릇을 본떴으며, 己는 본래 활의 모양을 본뜬 글자다. 술은 물과 불의 적당한 조화를 의미하며, 그렇게 할 수 있는 바탕을 가리키는 게 己다. 즉 配는 음양이 서로 짝을 만나는 바탕을 의미한다. 택배를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집 배달’이라고 하겠지만, 그 속에는 7성을 통해 온갖 사물의 짝을 만나게 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藥山님이 하얀 윗도리와 검은 아랫도리를 보내왔으니 음양과 7성, 즉 음양과 5행으로 빛을 발하는 칠성님을 보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