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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해방 선언

영부, 精山 2011. 10. 24. 04:50

리비아 해방 선언

 

리비아의 오랜 독재자 카다피가 마침내 10월 20일 사살되었다고 한다. 그의 죽음이 시민군에 의한 사살인지, 아니면 친위대의 사살인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리비아 국민들은 만세를 부르며 환호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리비아 재건을 위해 잘 된 일이라면서, 그렇게 고통 없이 보낼 것이 아니라 거리에 매달아 놓고 서서히 고통을 당하면서 죽였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 기자들에게 자신들은 북한으로 보내주면 김정일 정권을 축출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들이 얼마나 카다피의 독재를 증오했는지 충분이 알 수 있다. 불쌍한 것은 카다피 옆예서 무참하게 죽은 시체들 중에는 적지 않은 외국의 용병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카다피가 돈을 많이 준다는 바람에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그야말로 개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들은 목숨보다 돈을 선택한 대가를 치룬 셈이다.

 

인간이건, 자연이건 집착에서 모든 불행이 시작한다. 집착은 기의 흐름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니, 결국 탈이 나게 마련이다. 물이 한 곳에 고이면 썩는 것처럼, 권력이나 돈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럽게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게 물이다. 돈이나 권력도 낮은 곳을 향하여 흘러야 한다. 그런데 카다피는 자신이 있는 높은 곳으로 모이게 하였으니, 어찌 온전할 수 있었겠는가?

 

집착(執着)은 ‘잡을 집’과 ‘붙을 착’이 합한 글자다. 執의 왼 편 글자는 본래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이고, 오른 편 글자는 두 손이 형틀에 묶여 있는 모습을 본뜬 글자였으니 ‘죄인을 체포하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을 집행하다’는 말은 이에서 유래한다. 着은 본래 著(분명할 저, 붙일 착)의 변형된 글자다. 著는 艹(풀 초)와 者(놈 자)가 합하였다. 者는 본래 풍로 위에 장작을 잔뜩 쌓아놓고 불을 때우는 모양을 본뜬 글자다. 즉, 집착은 불을 때는 것처럼 모든 걸 분명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욕심을 가리킨다. 불교에서는 ‘放下着’을 하라고 가르친다. 모든 것은 그저 스쳐가는 바람이요, 흘러가는 구름이고 물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