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 精山 2012. 1. 2. 08:56

용(龍)

 

임진년이 밝았다. 아직 음력이 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온통 임진년이 시작했다고 말들을 한다. 용은 아홉 가지의 동물들의 모양을 취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문헌인 ≪광아 廣雅≫ 익조(翼條)에 용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해놓았다.

 

<용은 인충(鱗蟲 : 비늘 있는 짐승) 중의 우두머리[長]로서 그 모양은 다른 짐승들과 아홉 가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즉, 머리[頭]는 낙타[駝]와 비슷하고, 뿔[角]은 사슴[鹿], 눈[眼]은 토끼[兎], 귀[耳]는 소[牛], 목덜미[項]는 뱀[蛇], 배[腹]는 큰 조개[蜃], 비늘[鱗]은 잉어[鯉], 발톱[爪]은 매[鷹], 주먹[掌]은 호랑이[虎]와 비슷하다. 아홉 가지 모습 중에는 9·9 양수(陽數)인 81개의 비늘이 있고, 그 소리는 구리로 만든 쟁반[銅盤]을 울리는 소리와 같고, 입 주위에는 긴 수염이 있고, 턱 밑에는 명주(明珠)가 있고, 목 아래에는 거꾸로 박힌 비늘(逆鱗)이 있으며, 머리 위에는 박산(博山 : 공작꼬리무늬같이 생긴 용이 지닌 보물)이 있다.>

 

위 기록에서 한 가지 빠진 게 있는데, 다 괜찮은데 돼지코를 닮았기에 용은 자신의 잘 생긴 얼굴을 망쳤다고 하여 돼지만 보면 미워한다고 한다. 이것을 가리켜 ‘용과 돼지는 원진(元嗔, 혹은 怨嗔)살이 있다’고 한다. 지금도 돼지띠와 용띠는 서로 결혼을 꺼리는 습속이 있는데, 과학이라는 잣대로 보면 우스갯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매우 깊은 뜻이 있는데, 그것은 이 자리에서 거론할 성질이 못 된다.

 

다만, 여기서는 龍이라는 글자를 통하여 용의 뜻을 새겨보도록 하겠다. 옥편에는 ‘머리에 뿔이 있고, 입을 벌린 기다란 몸뚱이를 가진 용의 모양을 본뜬 글자’라고 풀이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오늘날과 같이 龍이라는 문자로 정착하였는데, 중요한 것은 왼편에 立과 月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달을 세우다, 달이 뜨다’는 말인데, 용과 달이 무슨 관계라도 있을까?

 

예부터 용은 水神이라고 하여 물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물은 달이 관장을 하는 것이니 立月이라고 하여 이상할 일은 없다. 하지만, 용은 본래 달이 아니라 태양을 상징한다. 용이 입에 물고 있는 여의주(如意珠)는 본래 태양을 가리킨다. 반대로 호랑이는 달을 보고 밤에 울부짖는다. 즉 호랑이는 인월(寅月)이라는 정월을 가리킨다. 열 두 달의 첫 달을 물고 나와야 하기 때문에 밤하늘의 달을 보고 울부짖는다. 용호상박(龍虎相搏)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태양과 달이 숨바꼭질을 하면서 천지를 운행하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즉, 용은 태양을, 호랑이는 달을 가리켰던 셈이다.

 

그런데 왜 용에 立月이 들어갔을까? 그 답은 간단하다. 태양이 지는 곳에 달이 뜨기 때문이다. 낮을 주관했던 태양이 지면, 그 자리에서 달이 뜬다. 태양은 모든 사물의 형상(겉)을 밝게 비친다. 그러므로 낮에는 형상에 관한 일을 주로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밤이 되면 모든 게 어둠에 묻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 그래서 형상에 관한 일은 휴식을 취하게 마련이다. 반대로 정신에 관한 일을 찾는 게 밤이다. 물질문명은 낮에 벌어지고, 정신문명은 밤에 벌어진다. 낮을 가리켜 선천이라 하고, 밤을 가리켜 후천이라 한다. 선천은 몸과 정신이 동시에 고달프지만, 후천은 편안하게 휴식을 취한다. 그래서 선인들은 태양보다 달을 더 많이 노래했다. 이태백이 그 대표적인 시인이다.

 

立月이 천지개벽의 소식임을 눈치 챈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