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서 4. 五와 十
시공(時空)이라는 말은 있어도, 공시(空時)라는 말은 없는데 그 이유는 뭘까? 그 답은 음보다 양을 우선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즉, 눈에 보이는 물질세상에서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으니, 그런 시각에서 나온 것이 바로 ‘시공’이란 용어다. 여자와 남자를 말할 때에도 남자를 우선으로 하면 ‘남녀(男女)’라 하고 여자를 우선으로 하면 ‘여남(女南)’이라고 하는데, 현실은 여남이라는 말은 없다. 이 역시 음보다 양을 우선으로 삼던 문명의 산물(産物)이다.
여하튼, 사람은 ‘넷’을 볼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다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나를 중심으로 4방을 보는 눈을 뜨고, 4방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 적에 비로소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전인적(全人的)인 상태에 달하는데 이를 가리켜 사람이라고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과 가까운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을 도와 비평하는 소리에는 귀를 막으려고 한다.
하긴, 사람의 눈은 뒤는 볼 수 없게 지어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고 자위(自慰)할 수도 있겠지만, 눈이 앞으로 달린 이유는 앞날의 희망을 높고 굳건히 바라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이목구비 중에서 가장 높이 달린 것이 눈이라는 사실은 무언가 목적(目的)이나 목표(目標)를 세울 적에는 될 수 있으면 원대(遠大)해야 한다는 걸 말해준다. 만약 눈이 발바닥에 붙어 있다면 어두운 땅만 보일 것이 아닌가?
사람은 넷을 보는 존재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앞에서 말하기를 시간으로는 4시이며, 공간으로는 4방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아직 확실하면서도 구체적인 것이 잡히지는 않는다. 그것은 <4. 중심 수 五와 十>에서 계속 하기로 한다.
4. 중심 수 五와 十
사람은 넷을 보는 존재라고 하였다. 그러나 ‘넷’ 자체가 사람은 아니다. 그것은 보이는 네 개의 대상을 가리킨 것이지, 결코 그것을 보는 주체는 아니다. 그 주체는 4방(四方)이나 4시(四時)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중심에 있는 법이다. 즉, 시공이 우주의 주체가 아니라 그 중심에 있는 존재가 주인공이라는 말이 된다. 중심에서 4방을 두루 보는 존재! 그것이 바로 나다.
이처럼 사방이나 사시라는 시공은 내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들이라면, 그 중심에 있는 주인공의 정체는 뭘까?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위에서 인용한 하도다. 하도를 숫자로 표기하면 다음과 같다.
남 2 火 7
3 5 4 동 木 土 金 서 8 10 9
1 水 6 북 |
하도의 4방에는 동방 3, 8목, 남방 2, 7화, 서방 4, 9금, 북방 1, 6수가 있으며, 중앙에는 5, 10토가 있다. 즉, 4방에 자리 잡은 水火木金은 시공을 가리키며 5, 10土는 시공을 바라보고 활용하는 주인공이다. 즉, 나는 중심에 있는 土이며, 내가 바라보는 넷은 주위에 둘러싸인 木火金水를 가리킨다. 이 네 개를 가리켜 우리 조상들은 ‘사상(四象)’이라고 하였다. 이 사상에 대한 것을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