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五와 十 : 6
이런 이치는 3과 4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면 저절로 수긍(首肯)을 하게 된다. 1과 2는 각기 동지와 하지를 상징하여 극(極)으로 치우쳤으나, 3과 4는 둘 다 조화와 균형을 취한 춘분과 추분을 상징한다. 1이라는 물과 2라는 불은 서로 극과 극을 이루는데, 이 둘의 기운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 거기에도 역시 음과 양으로 갈라지게 마련이어서 음적인 기운이 강하면 가을이요, 양적인 기운이 강하면 봄으로 나타난다.
5행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물과 불이 만나면 水克火가 되어 불이 꺼지는 걸로만 믿는다. 하지만 불의 기운이 강하면 오히려 물이 말라서 없어진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화모수(火侮水 ; 불이 물을 업신여김)라고 한다. 금극목(金克木)이 있는가 하면 목모금(木侮金) 도 있고, 火克金이 있는가 하면 금모화(金侮火)도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기 때문에 틀에 박힌 공식만 외우고 있다면 평생 앵무새 신세를 면치 못한다.
3과 4는 불과 물의 화합에서 나온다. 1을 가리켜 天이라 하면, 2는 地가 되며, 이 둘이 합한 3은 人이요, 4는 物이다. 천지인물은 바로 이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 넷(1, 2, 3, 4)이 합한 것이 10이다. 따라서 5는 4상 중에서 음과 양을 갈라서 합해 놓은 상태이고, 10은 4상을 모두 합한 상태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즉, 5는 有極이지만, 10은 無極이 되는 셈이므로 예부터 ‘십무극’이라는 용어가 나왔던 것이다.
물과 불이 일방적으로 세력이 강해지거나 약해지면 3과 4는 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둘의 기운이 조화를 이룬다면 3과 4가 나오는데, 3은 2 + 1이요, 4는 2 + 2가 된다. 즉, 물과 불이라는 2를 바탕으로 하여 1이라는 홀수(양)의 속성이 더 강하면 봄의 木이 되고, 짝수(음)의 속성이 더 강하면 가을의 金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봄은 겨울의 水氣가 아직 강한 편이므로 수생목(水生木)이라 하고, 가을은 여름의 火氣가 강한 편이므로 화극금(火克金)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즉, 3木은 상생을 통해서 나오며, 4金은 상극을 통해서 나오는 게 자연의 철칙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주역에 ‘기동북이고수 이서남이교통(氣東北而固守 理西南而交通)’이라고 한 성인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대자연의 운행은 추호(秋毫)도 어긋남이 있으면 큰 재앙이 벌어진다. 추호는 가을에 짐승들이 털갈이를 하는 것에서 따 온 말인데, 그 무수한 중의 털 하나는 매우 자그만 것인데, 그것 하나 세울 여지가 없다는 말을 ‘추호의 여지도 없다’라고 한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다음에 여름, 가을로 이어지지 않으면 큰 재앙이 벌어진다. 겨울은 1이요, 봄은 3이며, 여름은 2요, 가을은 4다. 숫자의 순서대로 한다면 당연히 1겨울 다음에 2여름이 와야 하는데, 1겨울 다음에 3봄으로 이어지고, 2여름 다음에 4가을로 이어지고 있으니 이는 또 무슨 연고일까?
홀수(양)는 홀수로 이어지며, 짝수(음)는 짝수로 이어진다고 하는 것이 바로 1 → 3과 2 → 4다. 왜 1겨울은 바로 2여름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3봄을 통과해야 하며, 2여름은 1겨울로 바로 가지 못하고 4가을을 통해야 할까? 그 답은 물이 바로 불로 될 수 없고, 불 또한 바로 물로 되지 못하는 게 자연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물은 차가운 것이요, 불은 뜨거운 것이다. 차가운 것이 갑자기 뜨거운 것과 만나면 폭발하게 마련이다. 펄펄 끓는 가마솥에 물을 부으면 물이 4방으로 튕긴다. 그럴 때는 가만히 솥을 식히는 것이 상책이다. 사람이 한창 열을 받았을 적에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하면 더 시끄러워지는 것과 같다. 그럴 적에는 가만히 제풀에 지칠 때를 노리는 것이 현명하다.
이처럼 극한적인 물과 불 사이에는 적당한 중재(仲裁)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3木이라는 봄과 4金이라는 가을이다. 즉 1과 2 사이에는 3과 4가 있다는 말인데, 3과 4는 1과 2의 성질을 다 가지고 있다. 3과 4도 역시 1과 2의 성질만 있다면 1과 2를 중재하는 기능이 있을 리가 없다. 1도 있고 2도 있기 때문에 1과 2를 중재한다. 그중에서도 3은 1의 성질을 더 많이 받아서 水生木이라고 하게 된 것이며, 4는 2의 성질을 더 많이 받아서 火克金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을 좀 더 알기 쉽게 언급한다면, 한 겨울의 냉기는 봄의 약동(躍動)하는 기운을 타고 마침내 훨훨 모든 정열을 불태우고(3 - 1 = 2), 한 여름의 열기는 서늘한 가을의 서릿발 같은 기운에 의해 마침내 차가운 냉기로 변한다(4 - 2 = 2)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