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五와 十 : 10
10은 5가 두 개 모인 셈이니 이는 곧 ‘짝을 만난 5’다. 아무리 5가 조화와 중재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여도 그 역시 짝을 만나지 못하면 공허한 상태를 면치 못한다. 공허한 상태라 함은 수고는 많이 하였으되, 열매가 없다는 말이다. 이를 문장으로 만들면 ‘노이무공(勞而無功)’이라고 한다. 이런 문구를 본 기억이 있는가? 그것은 동학을 창도(唱導)한 수운 대신사의 동경대전에 기록된 문구다.
하느님(上帝)은 수운 대신사에게 ‘내가 세상에 창조된 이래 노력을 많이 하였지만 공이 없었다’고 하면서 ‘너를 세상에 내어 내 뜻도 이루고 너도 장생하게 하리라’고 하면서 ‘너는 동방에서 태어났으니 그 이름을 동학이라 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그 방편으로 ‘영부(靈符)와 주문(呪文)’을 내려준다. 영부는 숫자와 천간, 지지, 팔괘 등을 합한 깨달음과 능력의 상징적인 부호를 가리킨다. 사실, 알고 보면 인체처럼 위대하면서 신비한 영부도 없다. 이것을 여러 장의 부호로 그린 것이 영부인데, 이에 대해서는 ‘현무경 해설’을 참고하기 바란다.
여기에서는 10에 대한 것만 중점적으로 다루도록 하겠다. 수운 대신사가 하늘로부터 받은 영부의 모양은 궁궁(弓弓)이요 태극(太極)이라고 하였다. 그것도 그냥 태극이 아니라 ‘만고 없는 ’무극대도(無極大道)‘라고 하였다. 이때의 무극대도는 십무극을 의미한다. 십무극이라면 수운 대신사 이전에도 유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인데, 굳이 동학이 그것을 드러냈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동학 이전에는 십무극이 나타날 것을 가리킨 것이고, 막상 그 실물이 나타난 것은 동학으로부터이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인 언급을 하자면 동학 이전의 낙서와 그것을 풀이한 문왕도는 1감수(坎水 ☵)에서 9리화(離火 ☲)까지의 사물이 9변하는 원리만 있었으나, 동학의 용담에서 드디어 2곤지(坤地 ☷)에서 10건천(乾天 ☰)까지 사물의 체와 용이 온전하게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인류는 마침내 자신의 형상이 하느님의 형상임을 알게 되고, 그것을 활용하는 지혜와 능력까지 겸비하게 되었다.
10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짝인 5와 비교하면서 생각하는 게 요령이다. 5와 10은 다 같이 하도의 중심에 자리를 잡았다. 이는 곧 인간의 마음 한 복판에 5와 10이 본래 같이 자리를 잡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를 성경에 비유한다면 ‘에덴동산에 있는 두 나무, 즉 선악과와 생명과’라고 할 수 있다. 선악과는 매사를 선과 악으로 비교하는 비교심(比較心)이나 분별지(分別智)를 가리키는 것으로 5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서 생명과는 한 마음과 한 몸이 되어 사랑을 나누는 온전한 짝을 만난 상태이니, 이는 곧 10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