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천간 - 12
甲申은 甲寅에 상응하는 것이므로 가장 강력한 자극과 시련에 봉착(逢着)한 木이다. 땅에 있는 申金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木의 성질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강력하게 제지를 하는 형국이니 그 성격이 사납게 마련이다. 甲寅이 세상을 밝고 따스하게 만들기 위한 강력한 힘이라면, 甲申은 그와는 정반대로 세상의 부조리나 비리, 불법을 응징하기 위한 강력한 힘이다. 비유하자면 갑신은 추수 때의 낫과 칼이라고 할 수있다. 그러므로 그 성질이 6甲 중에서 가장 신랄하고 예리한 편이다. 동방에서 뜬 태양의 볕을 다 저문 저녁때에 거둬들여서 오래 보관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거기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가차없이 베어내는 결단성을 자랑한다. 갑신을 계절로 치면 입추에 해당하는데, 서릿발처럼 날카로운 명석함과 판단력이 돋보인다.
甲戌은 立冬에 해당하는 것으로, 잎사귀가 다 떨어져 쓸쓸한 나무를 가리킨다. 부귀, 영화, 명예 등 외부로 나타나는 모든 것들을 다 털어버린 속세를 벗어난 도인과 같은 모습이다. 갑술은 서북방인데 대체적으로 그곳은 사막이 많아 사람이 살지 못한다. 따라서 그 성격도 지극히 은둔적이면서 신비스럽다.
이런 식으로 60갑자를 설명하려면 그것도 적잖은 분량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독자 여러분의 몫으로 남기기로 하고, 다만 여기서는 ‘나를 찾는 일’에 있어 그것이 어떤 역할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이런 간지론은 사주나 명리학에서 전통적인 학문으로 사용한다. 그런 것도 자신을 제대로 분별하여 분수에 맞는 처신을 하고, 앞으로 다가 올 재난에 미리 대응 하려는 지혜의 산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팔자대로 모든 것이 되는 건 아니다. 만약 팔자대로 모든 것이 된다면 한 날, 한 시, 한 장소에서 태어난 쌍둥이들의 운명은 똑 같아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인생복사기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왕 그런 사주팔자를 보려고 한다면 왜 인간의 것만 보아야 할까? 이 우주는 인간들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들의 것이다. 동물과 식물, 심지어 광물 까지도 엄연한 우주의 구성원들이다. 물론, 인간이 그 모든 것중에서 가강 귀한 존재라고 하는 건 당연한 사실이지만, 다른 구성원들의 존재도 무시해선 안 된다. 즉, 다른 구성원들의 사주팔자도 볼 수 있는 혜안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정도가 된다면 그야말로 신중의 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인물들이 흔하지는 않지만 예로부터 기인, 혹은 이인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사명당 같은 분이나 토정 이지함 선생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이리라, 하지만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그들이 남긴 기적이나 이적들이 과연 우리 인류에게 남긴 공적이 바람직한 일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