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간장 - 13
또 다른 간의 기능을 살펴보자.
* 호르몬대사기능 *
간은 몸의 여러 장기 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호르몬을 분해하는 기능이 있어 호르몬 수급의 전반적인 감시 역할을 한다. 간경변증 환자 중에서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나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대사에 이상이 생기게 되면 겨드랑이나 치부(恥部)의 털이 빠지거나 성욕이 감퇴되기도 한다. 여성의 경우 생리 불순이 나타나며 남성의 경우 고환위축이나 여성 형 유방이 발생하는 등 성기능 장애가 생길 수 있다.
* 해독 작용과 살균 작용기능 *
우리 몸에서 생성되거나 약물 등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수많은 물질 중 그대로 체외로 배출되지 못하는 물질은 모두 간에서 대사과정, 즉 해독 작용을 거쳐 소변 또는 쓸개즙을 통해 배설돼 되는데, 알콜도 간에서 분해된다. 이러한 해독과정이 없다면 약물과 해로운 물질이 체내에 쌓여 극심한 부작용을 일으키게 되므로 생명이 위험하게 된다. 이 때문에 간 질환 환자가 의사의 처방 없이 약이나 녹즙 등 건강식품을 먹으면 오히려 큰 부담 될 수 있다. 간은 신체에서 군사역할을 담당하는 백혈구와 살균 작용에 중요한 보조역할을 하는 보체라는 단백질을 만들어 살균작용을 돕는다. 간 기능이 저하되면 각종 감염의 위험성이 증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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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에서만 해독작용을 하는 건 아니다. 간의 해독작용은 항상 수동적이라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같은 해독작용이라고 하여도 적을 파괴하거나 몰살시키는 양적인 것이 있는가하면, 자신이 살기 위한 방어를 목적으로 하는 음적인 것이 있는데 간은 족궐음이므로 후자에 속한다.
그런데, 간에 대한 황제내경의 글을 읽다 보니 ‘간은 왼편에 달려 있다’고 하였으며, 의학입문에도 그렇게 쓴 걸 보았다. 아마 현대의학에서 보면 그야말로 무지하기 짝이 없는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다. 다 알고 있다시피 간은 오른쪽 갈비 쪽에 붙어 있는 게 아닌가? 그건 굳이 해부를 하거나 엑스레이로 투시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옛 어른들이 이런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왜 그런 기록을 남겼을까?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전해지는 ‘좌간우폐(左肝右肺)’를 이해하기 힘들다. 그것은 간이 비록 오른 편에 넓게 분포하였지만, 그 실마리는 왼 편 횡격막 밑에서 왼 편 갈비와 갈비뼈 위에서 시작하여 오른 편의 폐 속으로 들어가 횡격막과 연락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인체에서 왼 편은 동방을 가리키고, 오른 편은 서방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동방은 태양이 솟는 것처럼 힘 찬 기운이 나오는데 간은 장군과 같은 기운이 힘찬 상징물이다. 폐는 두 개가 있어 좌우 어느 한 곳에 치우친 것이 아니지만, 그 실마리는 왼 편에서 넘어 온 간의 기운을 받아서 나오는 법이기 때문에 좌간우폐라고 하였다.
서양의 의학에서는 앞에서 이미 소개한 것처럼 매우 복잡다단한 양상으로 간을 설명하고 있지만, 동양에서는 ‘간은 血을 간직하고 血은 혼(魂)을 보호하는데, 간이 허하면 공구(恐懼 : 두렵고 무서움)하고, 실하면 노(怒 성낼 노)한다’고 하였다. 간은 왜 피를 간직한다고 할까? 실제로 간에는 많은 피가 몰리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낮잠을 자고 나면 어지럼증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잠을 자는 동안에 피가 간으로 몰려 있다가 갑자기 몸을 움직이게 되면 간에 있던 피가 미처 온 몸으로 도는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런 증상은 온 몸에 피가 제대로 돌게 되면 저절로 사라진다.
간에서 피를 만드는 건 아니지만, 피를 간직하거나 저장하는 일을 하는 이유는 간이 족궐음의 기운이 강하기 때문이다. 궐음은 풍(風)이며, 바람은 물결을 흐르게 한다. 인체에서 바람은 기(氣)가 되며 물은 피가 된다. 피가 저절로 혈관을 흐르는 게 아니라 반드시 기를 따라 흐른다. 즉, 궐음풍의 기운을 따라 피가 흐르기 때문에 인체가 낮잠을 자는 휴식을 취하면 간도 저절로 휴식을 하게 되고, 간이 휴식을 취하면 피도 그 곳에서 휴식을 취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무리 소중한 피라고 하여도 너무 많으면 화를 잘 내게 변하고, 모자라면 두려움이 심해진다. 피가 부족하다는 말은 곧 간의 풍기(風氣)가 약하다는 말인데, 풍기는 용기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결국 피가 부족하면 매사에 용기가 없어져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마련이다. 간에 피가 부족하면 눈이 침침해지고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되며 누군가 자신을 잡으러 오는 공포에 시달린다고 내경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