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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경을 무시할 수 있을까?

영부, 精山 2012. 9. 25. 09:54

요즘 천부경 토론회가 비로소 본래의 취지대로 정착한 듯한 느낌입니다. 코쿤님이나 참향기님 같은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겠죠. 처음에 열심히 견해를 피력해 주시던 분들이 지금은 아주 조용해진 게 조금은 아쉽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이렇게 하건, 저렇게 하건 천부경과 지부경의 바른 의미를 터득하면 그만이겠죠.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오는 법! 코쿤님 같은 분이 마주하시니 절로 생기가 나는군요.

 

천부경을 해설한 책까지 내신 어느 분이 메일로 ‘지부경이 언제 나온 것이며 무슨 근거가 있기에 천부경은 지부경과 연계해서 풀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냐?’는 질문인지, 힐난인지 애매한 글을 보내셨네요. 아마 내가 풀이한 글 중에 못마땅한 게 있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듯한데, 당당히 공개 게시판에서 토론을 하시는 게 좋다고 봅니다.

 

이렇게 매일 천부경에 관한 글을 올리는 것은, 내 개인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부경이 어디 개인적인 건가요?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가슴을 열고 함께 최고, 최상, 최선의 뜻을 찾아내어 이 민족의 교시(敎示)로 삼아야 하는 게 아닌가요? 그것이 학문이나 도를 탐구하는 기본이라고 봅니다.

 

지부경이 언제 나온 건지, 누구에 의해 쓰여진 것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나 역시 현무경을 연구하다가 순천도의 자료에서 나왔다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순천도인들 역시 아무 것도 모르더군요.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것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천부경도 누가 지은 것인지 근거가 확실한 건 아닙니다. 구전지서로 전해 내려오던 것을 고운 선생께서 묘향산 석굴에 새기셨다고 하는 게 전부입니다. 그러니 그것도 역시 고운 선생의 작품은 아닙니다.

 

물론 지은 분도 중요하고, 시기나 장소도 다 중요하겠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과연 천리에 맞느냐 하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100자 지부경은 천부경에 비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나는 이 자리를 빌어서 세상에 외칩니다.

 

<천부경을 통한 사람은 어느 경전이건 다 통해야 한다. 그런 사람은 당연히 처음 보는 지부경이라고 해도 능히 풀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지부경이 하늘의 것인지, 아니면 세상의 것인지 능히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괜히 자신들의 부족한 실력과 무능함은 탓하지 않고 지부경의 근거나 따지는 게 옳은 일일까요? 비단, 지부경 뿐만 그런 게 아니라, 어느 경전이건, 어느 비결서건 능히 풀 수 있어야 합니다.

 

며칠 전 어느 모임에서 이런 말을 하는 분이 있더군요. 그분은 한민족의 역사와 홍익인간에 관한 책을 출판도 하신 분인데 ‘예수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혼돈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술좌석에서 하더군요. 대꾸할 가치도 없어 가만히 있었지만, 과연 그럴까요? 물론 현재 기독교의 현실을 보면 당연한 말씀이지요. 그렇다고 해도 그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 한 그루만 보고 하는 소리입니다. 성경이나 불경이나, 천부경 등등, 모든 경전에는 바탕이 있습니다. 그 바탕을 보는 눈이 열렸다면 그런 소리를 할 수 없습니다.

 

지부경의 의미를 제대로 안다면 감히 <지부경이 없어도 천부경을 풀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천부경 자체만으로도 그 풀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천지인을 다 볼 수 있는 상태에 도달했을 적에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당연히 처음 대하는 지부경이라고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지부경을 풀어내는 실력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실력도 없으면서 지부경을 폄하하거나 무시한다면 그야말로 오불관언(吾不關焉)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설이 길어졌군요. 오늘은 복희 8괘도에 붙인 숫자와 문왕 8괘도에 붙인 숫자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한 생각을 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