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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지부경 제5강 - 2

영부, 精山 2012. 10. 29. 09:20

그러니까 복희 8괘를 잘 살펴보면 만물의 형체에 대한 의미가 들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걸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하늘은 순양의 집합체요, 땅은 순음의 집합체입니다. 하늘을 허공이라고 생각하거나 땅을 흙의 집합체라고 본다면 짐승의 眼目(안목)과 별로 다를 게 없지요. 사람은 당연히 사람의 안목으로 사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하늘은 순양의 모임이요, 땅은 순음의 모임이라는 식으로 보는 겁니다.

 

天之四象은 1건천, 2태택, 3리화, 4진뢰라고 하죠? 2태택은 못(澤)이라고 하는데 하늘에 못이 있다는 게 말이 되나요? 그러나 그 괘상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괘상은 ☱의 모습이니, 하늘에서 음이 막 생기기 시작한 상태입니다. 하늘에서 보면 갓 생기기 시작한 음이지만, 땅에서 보면 제일 높이 올라간 음입니다. 그게 바로 수증기입니다. 수증기의 집합이 바로 못입니다. 그러니까 태괘는 수증기로 상징되는 여러 이미지, 예를 들면 포근함, 부드러움, 거만함, 나태함, 안개, 여유로움, 속을 안 보이는 사람 등등으로 聯想(연상)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머지 괘상도 연구를 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희도에서 제시한 8괘의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복희 8괘는 사물의 변화를 가리킨 건 아닙니다. 즉 4상은 변화를 가리킨 게 아니라는 말이지요. 변화는 무형이기 때문에 형상의 내부로 들어가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4상의 내부에 있는 5에서 변화를 주도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걸 5행이라고 부르지요. 또한 4상이 음양으로 벌어진 8괘의 중심에 있는 9수에서 역시 변화의 마지막을 이룬다고 보아 九變(구변)이라고 하였습니다. 9는 3극이 천지인 3계로 벌어진 상태인데 그걸 9변이라 하고, 그 중심을 5행이라고 부르게 된 겁니다. 5행이 9변을 하면 45변을 하게 마련인데, 그것이 바로 낙서(문왕도)의 수를 종합한 셈입니다. 이처럼 복희도가 형체를 위주로 했다면 문왕도는 9변을 위주로 한다는 게 다릅니다.

 

복희도에는 1에서 8까지만 나와 있지만, 사실 그 속에는 네 개의 9가 들어 있어서 그 합이 36입니다. 36에는 9궁이 밖에 있는 4상으로 드러나 있다는 걸 가리킨다는 것도 쉽게 잊더군요. 이렇게 8괘와 9궁 등을 얘기하는 이유는 천부경과 지부경과 불가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박을 세 번 갈라 생긴 여덟 조각은 8괘라 하고, 천지인 세 개의 선이 각기 시 - 중 - 종으로 벌어진 걸 9변이라고 합니다. 복희도는 건천과 태택을 같은 상(태양)으로 보았기 때문에 1과 2라 하였고, 리화와 진뢰를 같은 상(소음)으로 보았기에 3과 4라고 하였으며, 손풍과 감수를 같은 상(소양)으로 보았기에 5와 6으로 같이 묶었고, 간산과 곤지도 역시 같은 상(태음)으로 보았기 때문에 7과 8이라는 수로 같이 묶어 놓은 겁니다. 이에 반해 문왕도는 사물의 변화를 위주로 했기 때문에 밑에는 1, 6수, 서방에는 2, 7화, 남방에는 4, 9금, 동방에는 3, 8목, 중심에는 5토라는 5행으로 표기를 하였습니다.

 

복희도에는 8괘 속에 네 개의 9를 품고 있으며, 문왕도에는 1감수 + 9리화 = 十, 2곤지 + 8간산 = 十, 3진뢰 + 7태택 = 十, 4손풍 + 6건천 = 十에서 보는 것처럼 활동하는 숫자는 1에서 9까지 아홉 개이고, 그 속에는 네 개나 되는 十을 품고 있습니다. 에 네 개의 十을 품고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합니다. 이건 도대체 무얼 의미할까요? 그것은 9변을 하는 목적은 4상으로 하여금 十에 도달하게 하려는 데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럼, 용담도에는 2에서 10까지의 숫자가 붙어 있는데, 그건 왜 그럴까요? 복희도는 8까지요, 문왕도는 9까지의 수가 있었다면, 문왕도에서는 10까지 숫자가 드러났습니다. 즉, 8상이라는 형체를 먼저 깨달은 후에 땅의 9변을 깨달아야 하고, 맨 마지막으로 사람 속에서 十을 이루어야 한다는 깨달음의 순서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복희도의 텅 빈 중심에는 8괘에 둘러 싸여 9와 10이 그 모습을 숨기고 있었던 겁니다. 그걸 문왕도에서 먼저 9를 찾은 것이고, 마지막으로 용담도에서 十을 찾아 낸 겁니다. 지부경의 動十生一은 바로 용담도의 十이 그 모습을 드러내어 움직이기 시작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動九는 문왕도의 1감수에 9리화까지의 괘상을 가리킨 것이고, 靜九는 용담도의 8괘와 구궁을 가리킨 것입니다. 抱一은 천부경의 3극으로 나누어진 一(一始의 一)을 용담도의 8괘와 9궁이 다 품고 있는 형국을 가리킨 겁니다. 용담도는 3역의 완성이기 때문에 그 속에 복희(天極), 문왕(地極)도 동시에 다 들어 있게 마련입니다.

 

그걸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먼저 기본 바탕은 복희도의 8괘라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그 8괘의 숫자와 문왕도와 용담도의 숫자를 합하여 나타난 게 3극의 온전한 합일인 十鉅입니다.

 

복희도

문왕도

용담도

3극의 합

비고

1건천

9리화

2곤지

12

1 + 11

2태택

4손풍

7손풍

13

2 + 11

3리화

3진뢰

8간산

14

3 + 11

4진뢰

8간산

3감수

15

4 + 11

5중앙

6중앙

11

0 + 11

5손풍

2곤지

9리화

16

5 + 11

6감수

7태택

4태택

17

6 + 11

7간산

6건천

5진뢰

18

7 + 11

8곤지

1감수

10건천

19

8 + 11

합 36

합 45

합 54

135

36 + 99 = 135

 

이 도표에서 보는 것처럼 1에서 8로 시작한 3역의 숫자는 모든 것이 11귀체를 이루어 19로 끝을 맺습니다. 즉, 텅 빈 복희도의 중심 수(9와 10)를 마침내 찾아낸 셈이 아닌가요? 이처럼 3역의 완성은 결국 11귀체의 등장을 의미하는데, 이 11귀체를 가리켜 ‘折化三三’이라고 합니다. 절화삼삼은 천부경의 ‘無櫃化三‘과 상대적인 것입니다.

 

무궤화삼은 따로 언급을 할 것이므로 일단 여기서는 생략을 할 수밖에 없고, ’절화’라는 용어부터 살펴볼까요? 천부경의 一析(가를 석)이나 지부경의 折化(꺾을 절)는 얼핏 보면 같은 것처럼 보입니다. 가른다는 말이나 꺾는다는 말이나 그게 그거인 것처럼 보이지만, 둘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가르다, 쪼개다는 1에서 2, 3 등으로 나누어지는 걸 가리키지만, ‘꺾다‘는 말에는 상대방의 기세를 꺾어 버린다는 뜻입니다. 절충(折衝, 折衷 : 적의 창끝을 꺾는다는 뜻으로, 이해관계가 다른 상대와 교섭하거나 담판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서로 다른 의견이나 생각 따위가 조절되어 알맞게 됨)이라는 단어에서 보는 것처럼, 折化에는 상대방과 적당히 조화를한다는 뜻이 강합니다. 즉, 일석삼극은 일방적으로 쪼개거나 나누지만, 절화삼삼은 다른 것과 적당히 조화하여 나타난 현상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천부경의 일석삼극과 지부경의 절화삼삼은 대조적인 상황을 가리키는데, 위의 도표는 절화삼삼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절화삼삼은 1에서 9까지의 숫자가 모두 복희, 문왕, 용담이란 세 단계로 조화를 이룬 상태를 가리킵니다. 1건천은 9리화와 2곤지가 11귀체 하는 바탕이 되고, 2태택은 4손풍과 7손풍이 11귀체 하는 바탕이 되며, 3리화는 3진뢰가 8간산과 11귀체 하는 바탕이 되고, 4진뢰는 8간산과 3감수가 11귀체 하는 바탕을 이루고, 5손풍은 2곤지와 9리화가 11귀체 하는 바탕이며, 6감수는 7태택과 4태택이 11귀체 하는 바탕이 되고, 7간산은 6건천이 5진뢰와 11귀체 하는 바탕이요, 8곤지는 1감수와 10건천이 11귀체 하는 바탕이고, 중앙은 양수의 중심 5와 음수의 중심 6이 11귀체를 이루는 바탕입니다. 이처럼 아홉 개의 수가 모두 三三으로 절화를 이루니 ‘절화삼삼’이라고 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여기서 절화를 이룬다 함은 곧 ‘절충을 이룬다’라고 보면 무리가 없을 겁니다.

 

이번에는 천부경의 ‘일적십거무궤화삼(一積十鉅無櫃化三)’에 대한 풀이를 해볼까요? 一積은 ‘一을 쌓다’, 혹은 ‘一이 겹치다’는 말입니다. 앞에서 一析하면 三極이 된다고 했던 것과 대구(對句)라고 보면 될 겁니다. 一이 벌어지면 3극이지만, 쌓이면 十이 된다고 하는 게 十鉅입니다. 벌어진 3극이 다시 하나로 쌓이면 一이라고 해야 하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요? 즉 一에서 나갔으면 다시 一로 복귀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그런데 여기서는 十으로 쌓인다고 했군요.

 

이걸 많은 사람들이 ‘1이 쌓이면 2가 되고, 다시 1이 쌓이면 3이 되고 … 하는 식으로 10까지 간다고 풀이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렇게 쌓여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나 설명도 없이 막연하게 본래 숫자는 10개가 있으니까 당연히 그런 것이라는 정도로 믿고 있더군요. 그러나 그런 건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기존의 의식에 짜깁기하는 식으로 맞춘 것이지, 근원적인 답은 아닙니다. 천부경이 나올 당시에 숫자가 과연 지금처럼 열 개를 기본으로 하였는지 하는 것도 의문입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필시 그렇게 알고 있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확신하는 근거라도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그것은 천부경의 ’일석삼극‘이라는 말 속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