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 지부경 제5강 - 3
하나는 3극으로 나누어진다고 하였고, 바로 이어서 ‘天一一地一二人一三’이라고 한 것이 확실한 근거입니다. 천지인 3계도 역시 3극으로 나누어지면 3 × 3 = 9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바탕 수 1은 항상 있는 법이니 그것까지 합하면 숫자는 열 개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일적십거’가 1이 쌓여서 10으로 커진다는 단순한 풀이라고 하는 건 너무 무미건조하지 않나요? 이때의 一은 그냥 단순한 ‘1’이 아니라 天一, 地一, 人一이란 세 개의 一을 모두 가리킨 겁니다. 즉 3극을 가리킨 겁니다. 벌어지면 반드시 다시 한데로 모이려는 대자연의 속성에 따라 3극도 역시 다시 하나로 모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天一과 地一이 합한 十과, 人一과 地一이 합한 十과, 人一과 天一이 합한 十이라는 세 개의 十이 생깁니다. ‘일적십거‘의 十은 이와 같은 세 개의 十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야만 바로 다음에 나오는 ’무궤화삼’이 제대로 풀리게 됩니다.
이런 연결이 없으면 그냥 ‘하나가 열로 커지는데, 그건 궤가 없이 된 셋’이라는 알쏭달쏭한 해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궤가 없이 된 셋‘을 ’틀이 없는 셋‘이라고 하면서 앞의 무진본과 연결하여 ’본래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하나에서 갈라졌으니 3극도 아무런 틀이 없다‘는 식의 풀이가 될 건 너무도 뻔하지 않나요? 이처럼 틀이 없으니 무한해서 좋다는 말인가요? 그런데 틀이 있어야 할 때가 있고, 반드시 있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건 다 상대성이 있기 때문에 무궤화삼이 있으면 반드시 유궤화삼도 있는 법입니다. 그 둘 중에 어느 것이 좋고, 나쁜 가하는 것은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라서 다르게 마련입니다.
이런 걸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 무궤가 영원한 대자유를 상징하니까 좋다고 한다면 한 면만 보는 셈입니다. 틀이 없으면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즐거움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질서가 되어 혼돈에 직면합니다. 반대로 틀이 있으면 다소 규제나 제약이 따를 수는 있지만 질서와 정돈된 상태를 누일 수 있습니다. 틀이 없는 건 하늘이요, 틀이 있는 건 땅입니다. 하늘만 있고, 땅이 없거나, 땅만 있고 하늘이 없다면 어찌 될까요? 이런 건 기본적인 상식인데도 무궤화삼을 찬양만 하고 있으니 갑갑한 노릇이지요.
이런 생각은 아마 十이란 숫자와도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十은 완성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十은 본래 0처럼 무한, 틀이 없는 상태 등을 가리키니까 무궤라고 여기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천부경에서 말하는 무궤화삼은 아직 절화삼삼으로 묶이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했을 따름이지, 만약 절화삼삼으로 모든 숫자가 11귀체가 된다면 당연히 유궤화삼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럼, 櫃의 정체를 밝히도록 합시다.
櫃는 ‘상자 궤, 함 궤’라고 합니다. 櫃는 匱라고도 쓰는데, 匚(상자 방) 속에 貴한 것을 담아 두는 그릇이라고 보면 좋겠군요. 원래 貴는 申과 乙이 합한 臾(만류할 유, 잠깐 유)와 貝를 합한 문자입니다. 貝는 돈을 가리키는 것으로, 돈은 함부로 쓰지 않는 귀한 것이라는 뜻에서 ‘귀할 귀‘라고 합니다. 여하튼 櫃는 귀한 물건을 담아 두는 그릇입니다. 一이 쌓여서 이루어진 걸 十鉅라고 하였으니 혹시 十을 櫃라고 한 건 아닐까요? 그래도 이상하지 않나요? 왜냐하면 十鉅라고 했으면서 그걸 무궤라고 하였으니 말입니다. 十이 櫃라면 당연히 유궤라고 해야지 궤가 없다고 하면 이상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궤의 정체는 十입니다. 그럼 ’무궤‘라고 하면 十이 없다는 말인데, 궤의 정체가 十이라면? 도대체 앞뒤가 안 맞는 말이 되는군요.
하지만 그건 아직 十에 대한 파악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전에 말하기를 十에는 두 가지가 합한 十과 세 가지가 합한 大十이 있다고 한 기억이 나지 않나요? 궤는 일정한 틀이 다 짜여 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냥 十은 두 선이 합한 상태이기 때문에 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세 개의 선이 합해질 적에 비로소 온전한 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태백일사(太白逸史)」,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 마한세가에 있는 문구를 인용하는 게 좋겠군요.
<일적이음립 십거이양작 무궤이충생 一積而陰立 十鉅而陽作 無櫃而衷生>
이 문구는 천부경을 풀이하는 데에 매우 귀중한 것인데도 대부분의 천부경 풀이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이 문구는 ‘一이 쌓이면 음이 서게 되고, 十이 鉅하면 양을 지으면 궤가 없으면 충생한다’는 뜻입니다. 一은 양이므로 양이 다하면 음이 된다는 말입니다. 또한 十은 음이므로 음이 다하면 양이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궤가 없으면 충생 한다고 하였는데, 衷은 ‘속마음 충’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속에서 무언가 새롭게 나오는 상태’를 가리킨 것으로 보입니다. 그건 아마도 음과 양 속에서 새로 태어난 자녀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겁니다. 그럼, 그것은 두 개의 선이 합한 十字가 아니라 세 개의 선이 합한 大十字라고 보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요?
一이 쌓여서 음이 선다고 할 적의 음은 바로 十이며, 十이 鉅하여 양을 짓는다고 할 적의 양은 바로 一입니다. 그럼, 이 둘이 한데 합쳐서 새로 태어나는 존재라면? 그건 당연히 11이겠지요. 따라서 일적으로 나타난 십거는 11귀체라고 해야 합니다. 그것은 鉅라는 문자를 쓴 것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鉅는 金과 巨(클 거)를 합한 글자입니다. 巨는 커다란 잣대(工)를 손(コ)에 들고 있는 모습을 본뜬 상형문자이므로 예전에는 ‘자, 재다’라는 의미로 사용하다가 근래에 ‘크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金이 붙으면 크다는 뜻 위에 ‘단단하다, 높다, 존귀하다, 낚시 바늘’ 등의 의미가 주어집니다. 즉, 十은 十이로되 매우 단단하고 높아진 상태를 가리켜 十鉅라고 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두 개의 막대기가 합친 十字가 아닌 세 개의 막대기가 합친 大十字라고 하는 게 훨씬 설득력이 있습니다.
( 두 개의 막대기가 합친 十字) (세 개의 막대기가 합친 大十字)
상식적으로 생각할 적에 一이 쌓이면 十字보다 大十字를 만들려고 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요? 즉 천지인 셋을 다 합한 큰 櫃를 만들기 위해서 3극으로 우주는 나누어져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셋이 나누어지면 三極이라 하지만 셋이 하나로 합하면 化三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천부경의 용어 하나하나는 매우 신경을 써서 보아야 합니다.
천지인이 化三이 되면 거대한 궤가 되는데 왜 無櫃化三이라고 했을까요? 거기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一이라는 양이 음을 세우고, 十이라는 음이 양을 지으면서 十을 하면 음도 아니요, 양도 아닌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음의 틀도 깨지고, 양의 틀도 깨지는데 어찌 무궤 한 상태라고 하지 않을 수 있나요? 그 속에서 태어난 새로운 자녀도 역시 자신만의 고유한 틀이 있으니 이 세 개의 틀 중에서 어느 것을 有라고 할 수 있나요? 그러니 무궤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일시무시일을 이룬 세 개의 一중에서 어느 것을 有始라고 할 수 없어서 無始一이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化三에도 두 가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천극 + 지극, 인극 + 지극, 인극 + 천극이라는 두 개의 극이 합한 세 개의 十도 化三이요, 천극, 지극, 인극이라는 세 개의 극이 합한 大十도 化三입니다. 이 두 개의 화삼 중에서 천부경에서 말하는 무궤화삼은 전자에 속합니다. 十鉅는 본래 후자의 화삼을 가리킨 것인데, 그것은 천부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부경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것을 지부경에서는 <動十生一折化三三>이라고 했습니다.